투명한 불완전

사물의 관계-옷의 기억

by 윤담

아버지는 늘 같은 셔츠를 입으셨다.
어깨가 조금 늘어나고, 소매 끝이 닳은 셔츠였다.
어머니는 그것을 세탁기에 넣기 전,
손으로 먼저 문지르곤 했다.
비누 냄새와 햇빛이 섞인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세탁기의 둔한 진동을 들으며 자랐다.

어릴 땐 몰랐다.
옷이란 그저 갈아입는 것이고,
닳으면 버리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옷은 사람의 모양을 닮아간다는 걸.
아버지의 셔츠에는 그가 견뎌 온 세월이,
어머니의 앞치마에는 그가 지켜 온 하루가
조용히 스며 있었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의 나이를 닮아간다.
아침마다 와이셔츠를 고르고,
구겨진 소매를 펴며 문득 생각한다.
아버지는 이 주름을 얼마나 많이 폈을까.
그 손끝의 온기가 아직 내 손에도 남아 있는 듯하다.
옷은 그렇게 세대를 이어 준다.
살과 살이 닿지 않아도,
천 한 겹으로 마음이 이어진다.

어머니는 아직도 내 옷을 본다.
“얇은 걸 입고 나가지 마라.”
그 말에는 계절보다 더 깊은 마음이 있다.
내 옷의 두께를 걱정하는 그 손길이
아직도 나를 사람으로 만든다.
그 손은 이제 조금 느려졌고,
나는 그 느림이 좋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옷감을 쥐고 있다.

가끔 낡은 옷을 버리려다 망설인다.
소매 끝에 스친 세월의 냄새,
어깨에 남은 따뜻한 체온,
그 모든 것이 버려지기엔 아깝다.
어쩌면 옷은 사람보다 오래 기억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잊은 말, 사소한 웃음,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까지
그 모든 것이 옷감 속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이제 나는 내 아들의 셔츠를 접는다.
작은 옷을 개며 문득 생각한다.
언젠가 이 옷도 닳겠지.
하지만 닳는다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랑이 그만큼 오래 머물렀다는 뜻일 것이다.

이 옷이 낡아갈수록,
시간은 아버지에게서 나로,
나에게서 다시 아들에게로 스민다.
비누 냄새와 햇빛, 그리고 손끝의 온기가
세대를 건너며 이어진다.

오늘도 나는 다림질된 셔츠를 입는다.
살짝 남은 비누 향과 햇빛의 온기를 품고,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