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불완전

사물의 관계-구두

by 윤담

아침은 늘 구두에서 시작된다.
문을 나서기 전, 바닥에 놓인 검은 구두 한 켤레.
광이 약간은 벗겨진 그 표면을 손수건으로 한 번 닦는다.
그 행위는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세상과 다시 부딪히기 위한 의식(儀式) 같다.

나는 구두를 신는다.
가죽이 발을 감싸며 서서히 온도가 맞춰진다.
딱딱한 구두는 아직 내 발을 거부하지만,
몇 걸음 걷다 보면 체념하듯 나를 받아들인다.
삶이란 늘 이런 식이다.
처음엔 낯설고 불편하지만,
조금씩 체온이 묻으면 그제야 길이 된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서 나는 내 발끝을 본다.
구두는 번들거리고,
그 안의 나는 이미 피로해 보인다.
구두는 단정함의 상징이지만,
단정하게 살기 위해선 언제나 조금씩 무너져야 했다.
나는 매일 그 무너짐의 흔적을 밑창에 남긴다.

회사 복도를 걸을 때,
구두 굽이 바닥에 닿으며 일정한 리듬을 만든다.
그 리듬이 하루를 움직인다.
누군가의 보고서가, 누군가의 결재가,
누군가의 야근이 그 리듬 위에 얹혀 돌아간다.
구두는 말이 없지만,
그 밑창은 매일 삶의 문장을 써 내려간다.

점심시간,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우산을 펴 들고뛰었다.
젖은 바닥 위로 구두 굽 소리가 흩어졌다.
그 소리는 서두름의 합창 같았다.
누군가는 출세를 향해,
누군가는 빚을 갚기 위해,
누군가는 그저 오늘을 버티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발자국의 무게는 같았다.
살아 있다는 무게.

퇴근길의 구두는 다르다.
광택은 사라지고,
굽은 미세하게 기울어 있다.
하루 동안 쌓인 먼지와 피로가 가죽에 스며 있다.
그때마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인간의 피로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구두의 피로는 언제나 발밑에서 조용히 울고 있다.

집에 도착하면 구두를 벗는다.
그 순간 발끝에서 가벼운 해방감이 밀려온다.
바닥에 닿는 맨발의 감촉은
하루 종일 누르던 체중이 빠져나가는 감정과 닮아 있다.
구두 안에 남은 습기와 땀 냄새,
그건 세상에 내보이지 못한 한숨의 냄새다.
그러나 나는 그 냄새가 미웠지 않다.
그건 하루를 버텨낸 증거의 냄새였으니까.

밤이 되면,
나는 구두를 문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다음 날을 준비하는 일은 언제나
그 구두를 닦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닳은 밑창, 미세하게 벌어진 꿰맴 자국.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인간의 얼굴을 본다.

삶은 언제나 비슷한 길을 걷게 한다.
새 신발로도, 낡은 신발로도,
우리는 결국 같은 길 위를 돈다.
다만 누군가는 그 길 위에서 도망치고,
누군가는 그 길 위에 자국을 남긴다.
구두는 그 차이를 안다.
도망친 발에는 흙이 묻지 않는다.
남은 발에는 흙이 묻고, 그래서 기억이 된다.

밤이 깊어질수록 구두의 그림자가 길어진다.
나는 잠시 그 그림자를 바라본다.
구두는 하루의 끝에서도
여전히 ‘내일’을 향한 자세로 서 있다.
비틀리며 버텨온 굽 하나,
그 안에는 나의 수많은 망설임과 욕망이 들어 있다.

가끔은 구두를 신기 싫을 때도 있다.
그건 아마 세상과 맞서는 힘이 다한 날이다.
그래도 나는 다시 신는다.
밑창이 닳을수록,
나는 내 삶의 바닥을 더 확실히 알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