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것들

내가 나를 다시 불러주는 날

by 윤담

사람들은 생일을 축하라고 부르지만,
나는 종종 생일이 조용한 기억의 날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이 갑자기 바뀌는 것도 아닌데,
그날만큼은 마음 어딘가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다.

누군가는 케이크 위에 촛불을 꽂고,
누군가는 작은 선물을 건네지만,
실은 그 모든 것 너머에서
생일은 사람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까지 잘 견뎌왔니?”

그 질문 앞에서
대답은 누구도 크게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삶은 완고하고,
그 완고함 속에서 우리는
종종 너무 오래 침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일은 묘하게도 말하지 못한 연약함을
살짝 들어 올려 빛에 비춰보는 날이다.

어릴 적 생일은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주는 순간이었고,
자라면서는
바라봐주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으며,
마흔이 넘어서부터는
‘누가 기억해주는가’보다
‘내가 누구를 떠올리는가’가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생일은 축하보다 기억에 더 가깝다.

뜨거웠던 사랑들,
차갑게 식어버린 인연들,
잘 견딘 날들,
무너졌던 순간들.
이 모든 층위가
생일이라는 작은 원 위에 겹겹이 쌓인다.

그러다 문득
아무것도 받지 않은 생일이 떠오른다.
그날은 조용했고,
조용해서 오히려 마음이 시끄러웠다.
누군가의 메시지보다
부재가 더 크게 다가오던 날.
그런 날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생일이 더 오래 남는다.

기대가 없었기에
상처도 덜했고,
상처가 덜했기에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여백이 있었다.

생일이란 결국
자신의 지층을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나온 시간의 틈 사이에서
아직 따뜻한 조각이 남아 있는지,
아직 버릴 수 없는 어떤 순간이 있는지를
천천히 확인하는 시간.

그리고 그 조각들은
언제나 이상할 만큼 투명하다.
행복했던 날도,
쓰라린 날도,
그 기억의 결은 모두 비슷하게 빛난다.
익숙함과 멀어짐 사이에서
한 번 더 숨을 고르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쩌면 생일은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불러주는 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괜찮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건네는 그 말이
생일의 가장 조용한 선물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말 하나가 한 해를 더 버티게 한다.

촛불은 결국 꺼지고
선물은 언젠가 잊혀지지만,
그날 새벽,
내가 내게 남겨둔 조용한 온기만은
아주 오래 남는다.

생일은 그렇게
내 삶의 어딘가에서 천천히 스며들며
또 하나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되어간다.

11월 19일.
윤담, 생일 축하한다.
정말 고생했다.
정말 많이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