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살아있다.
아침의 정장은 늘 약간의 무게를 가진다.
천이 어깨를 감싸는 순간,
마치 나보다 먼저 깨어 있던 세계가
내게 어떤 역할을 건네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회의실로 들어서면
조명이 천장을 타고 내려와
테이블 위 문서의 결을 밝힌다.
나는 시계를 한 번 만지작거리고,
손끝에서 차가운 금속의 온도를 느끼며
잠시 내 호흡을 조정한다.
질문을 한다.
대답이 돌아온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메모를 하며,
누군가는 침묵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
그 모든 사람들이
정해진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날의 기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작은 파동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업무를 마친 뒤
저녁이 되면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향한다.
잔을 기울이고,
지나가는 말들을 주고받고,
하루의 피로가 목으로 내려가는 소리,
사람들의 웃음이 잔 표면에서 가볍게 흔들린다.
우리는 서로의 표정에서
내일의 무게를 예상하고,
그래도 괜찮다는 듯 얼음을 굴린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대개 조용하다.
조명의 그림자가 벽에 붙었다가
천천히 뒤로 미끄러지고,
나는 그 더딘 움직임 속에서
갑자기 하루의 실루엣을 바라보게 된다.
편안한 침대 위,
넥타이를 풀고 나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을 이렇게 살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본능인가?
이성인가?
아니면 이미 몸에 새겨진 숙련된 메커니즘일까?
본능이라면,
우리는 왜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리듬으로 하루를 쌓아올리는 걸까?
본능은 반복을 싫어한다고 나는 믿는다.
본능은 더 자유롭고,
더 혼란스러우며,
더 충동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하루는
충동보다는 조율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성일까?
이성이 우리를 움직이고,
이성이 사회를 굴리고,
이성이 삶의 궤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하지만 이성은 늘 뒤늦게 도착한다.
이미 지나간 순간을 설명할 뿐,
지금 이 순간을 움직이는 힘은 아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숙련된 메커니즘.
수십 년 동안 우리가 반복해온 행동의 축적.
정장을 입는 방식,
회의실에 앉는 자세,
질문을 던지는 톤,
잔을 들어 올리는 각도,
숙소로 돌아오는 걸음.
이 모든 것은
생각보다 더 오래된 연습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메커니즘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질문을 잊게 만든다.
의식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아는 몸은
그 길의 의미를 묻지 않는다.
그러나
의미를 묻지 않는 삶이
결코 비어 있는 삶은 아니다.
사람은 반복 속에서도
아주 작은 결심을 숨기고 산다.
오늘의 질문 하나,
오늘의 웃음 하나,
오늘의 침묵 하나.
이 작은 결들은
겉으론 숙련된 메커니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일 조금씩 방향을 달리한다.
그걸 미세하게 조정하는 건
본능도, 이성도 아닌
우리 안의 투명한 불완전이다.
불완전함이 우리를 흔들고,
흔들림이 아주 작은 변화를 만든다.
그 변화들이 차곡히 쌓여
마침내 어느 날,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삶을 밀어 올린다.
정장을 입고,
시계를 만지고,
질문을 던지고,
웃으며 술을 마시고,
내일을 생각하는 밤.
이 모든 반복은
우리의 삶을 지루하게 만드는 대신
그 안에 아주 작은 여백을 남겨둔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낯선 질문을 던진다.
“나는 오늘, 정말 살아 있었나?”
“그냥 움직인 건 아니었나?”
그리고 바로 그 질문 하나가,
우리의 내일을 조금 더 다르게 만든다.
사람을 이렇게 살게 만드는 건
본능도, 이성도 아니다.
사람을 이렇게 살게 만드는 것은
매일 자신을 조금씩 새로 발굴하려는
불완전한 존재의 아주 조용한 의지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계속 걷게 한다.
멈추지 않게 하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