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기원
외로움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누군가를 잃었을 때일까,
혼자가 되었을 때일까,
아니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무언가일까.
아마 외로움은
‘없음’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있었음’에서 태어난다.
누군가의 체온,
어떤 목소리,
한 번 스쳤던 손끝의 방향 같은 것.
그 사소한 존재감이 사라졌을 때,
사라진 자리에 남는 빈 결이
외로움이라는 형태를 갖기 시작한다.
외로움은 그래서
결핍의 감정이 아니라
‘기억의 감각’에 가깝다.
내 안에 한때 있었던 빛의 잔여,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었던 숨결의 흔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누군가에게 닿고 싶었던 문장들.
그 모든 것이 사라진 뒤,
우리는 그것이 머물던 공간만 쓰다듬는다.
그 조용한 쓰다듬음이
바로 외로움이다.
밤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유난히 고요해진다.
누군가는 불을 끄고 누운 자리에서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오래 바라본다.
누군가는 텅 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고,
누군가는 잊혀진 사람의 이름을
입술 안쪽에서 아주 조용히 불러본다.
그 모든 동작에는 목적이 없다.
그저 ‘확인’하려는 마음만 있다.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는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감정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아직도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는지를.
외로움은 그 확인의 순간에 깃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어둠의 양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 외로움은 어둠의 양과 상관이 없다.
빛이 지나간 자리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빛은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들이고,
내어주었던 마음들이고,
돌아오지 않을 것들을 붙잡으려 했던 손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외로움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동시에 사람을 정확하게 만든다.
우리는 외로울 때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바랐는지,
무엇을 놓아주지 못했는지를
정확하게 보게 된다.
외로움은 잔혹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투명한 감정이다.
그 투명함이 너무 선명해서
우리는 그것을 견디기 어려울 뿐이다.
하지만 그 투명함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법을 배운다.
사람의 마음에는 모두
작은 웅덩이 하나가 있다고 한다.
그 웅덩이는 낮 동안 아무 일도 없는 척하지만
밤이 되면 아주 천천히 물이 찬다.
그 물이 바로 외로움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
한때 웃었던 순간을 떠올리는 마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장소를 더듬는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
그 작은 웅덩이에 물을 채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웅덩이는 흘러넘친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외로움이 자신을 파괴하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을 떠받치는 감정이었다는 것을.
흘러넘친 그 물이
자신을 앞으로 한 발 밀어내는 힘이 된다는 것을.
외로움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가만히 알려주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외로움의 기원을 이렇게 생각한다.
외로움은 ‘사람이 사람을 향했던 시간’에서 태어난다.
우리가 사랑한 순간,
우리가 스쳤던 온기,
우리가 한 번이라도 전부였던 그 시간.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는 외롭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야말로
우리가 여전히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살아가려는 존재라는 증거다.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온기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흔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
외로움의 기원은 아픔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남긴 흔적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남긴 빛이다.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다.
그리고 그 사실이
우리 존재를 끝내 따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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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는 말>
문득 글에 몰두해 있다가 그런 순간이 스쳤습니다.
외롭고, 힘겹고, 왜 이 길을 계속 써 내려가야 하는지조차 모호해지는 순간들.
그런데 여러분이 제 글을 읽어주시고
그 자리에서 숨결처럼 생각을 건네주시니
그 온기가 저를 다시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오래도록
고맙습니다.
윤담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