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이세계

침묵이 필요한 도시

by 윤담

도시는 늘 투명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의 빛은 유리처럼 얇고, 건물의 표면은 그 빛을 받아 아무 말 없이 반사한다.
모든 것이 쉽게 드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무엇 하나 선명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사람도 그렇다.
겉으로는 다 보이는 얼굴로 서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말이 쌓이고, 어떤 말이 서서히 썩어가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사람의 입.
그것은 도시 곳곳에 박힌 수많은 창문 중 하나처럼
열려 있기도 하고, 때로는 굳게 닫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형태를 잃은 채 안개처럼 먼 곳까지 번진다.
안개는 거의 투명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투명한 도시에서는 그 움직임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람 사이를 오가는 말들도 그렇다.
그 말들은 안갯속에 숨겨진 비수처럼
날이 보이지 않은 채 이동한다.
회의실의 유리벽 너머로 새어 나오는 소리,
복도에서 스치듯 던져진 한 문장,
메신저 창에 남겨진 짧은 문장들.
그 말들은 크지도, 거칠지도 않지만
도시의 공기처럼
서서히 존재의 안으로 스며든다.
모두가 알다시피
쓸데없는 말은 대개 악의 없이 태어난다.
가볍게 던진 농담, 의미 없는 평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 그러나 이 투명한 세계에서는
그 모든 것이 거울에 비친 그림자처럼 또렷해진다.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의미가 증발한 뒤에도 표면에 얇은 막처럼 남아
사람의 내부에 미세한 흔적을 남긴다.
그 말을 듣는 일은 도시를 걸어 다니는 일과 닮아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리에서
괜히 피로해지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쓸데없는 말을 들은 뒤의 마음도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짚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은 이 투명한 세계 속에서
조금씩 고립된다.
누군가에게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 발짝 물러난다.
말의 밀도가 너무 높은 공간에서
존재의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서.
삶은 그렇게 꼬여간다.
큰 사건 없이도, 선명한 갈등 없이도.
투명한 도시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듯
관계 역시 소리 없이 어긋난다.
우리는 묻는다.
이 엉킨 삶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설명하려 애쓰는 입술,
정당함을 주장하는 목소리,
진심을 증명하려는 말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오히려 유리의 금을 더 또렷하게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한 걸음 더 멀어진다.
거리와 간격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조용히 벌어진다.
우리는 입에서 나온 독을 그 자리에서 되돌려주지 않고 다시 삼킨다.
삼킨 말은 몸 안에서 무겁게 가라앉아
쉽게 소화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웃음은 남는다. 웃음은 그 무게를 감추는
가장 얇은 막이다.
진심과 거짓의 경계에 놓인 웃음.
투명한 도시에서는 그 얇음마저 드러나지만,
그 웃음 덕분에 사람은 하루를 더 버틴다.
모든 말을 바로잡지 않고, 모든 오해를 해소하지 않으며, 오늘의 공기를 무사히 건너는 것.
말하지 않음은 선택이다.
침묵은 이 도시에서 가장 깊은 그늘이 된다.
그 그늘 아래에서 사람은 잠시 숨을 고른다.
도시는 여전히 투명하다.
사람들의 말은 여전히 떠다닌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 말들을
붙잡아 당기지 않는다.
매듭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더 조여지지도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다.
유리 같은 하루를 조심히 건너며
입을 닫고 도시를 통과한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