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자리의 우물
어느 날, 세상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 보면 문득 공기가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소리가 조금 멀어지고, 빛이 조금 투명해지는 순간.
그곳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장소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전해지던 곳이 있다.
그곳은 마치 우물 같은 세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그러나 어둡다기보다 이상하게 맑다.
물을 들여다보면 바닥이 보이지 않지만, 대신 어떤 흐름이 보인다.
지나간 것들이 천천히 가라앉고,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 아주 희미한 빛으로 떠오르는 흐름.
그 우물 가장자리에는 오래된 돌들이 둘러앉아 있다.
시간에 닳아 둥글어진 돌들.
누군가는 그 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갔고,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을 얹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생과 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생은 위로만 향하지 않고, 죽음은 아래로만 가라앉지 않는다.
둘은 이곳에서 아주 조용히 서로의 자리를 바꾼다.
마치 물속에서 기포가 올라오듯
어떤 기억은 떠오르고
어떤 숨결은 다시 물속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이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사람은 이상한 감각을 느낀다.
잃어버린 것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감각.
아직 만나지 못한 것들이 이미 어딘가에서 준비되고 있다는 감각.
우물 속의 물은 늘 고요하지만
가끔 아주 미세한 파문이 생긴다.
바람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갈 때 생기는 파문이다.
그 파문이 돌벽을 따라 번질 때면
어쩐지 오래전에 떠나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슬프지 않다.
오히려 어떤 안심에 가까운 울림이다.
“여기까지는 잘 왔다.”
“이제 조금 더 걸어가면 된다.”
그 말을 누가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무도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우물 곁에 서 있으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세계가 완전히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딘가에서
조용히 이어져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곳을 떠날 때 사람들은
대개 우물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깊이를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직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작고 분명한 깨달음이 마음속에 내려앉는다.
우물은 죽음을 보여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물은 다시 올라오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다시 그곳을 지나게 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그 물은 여전히 투명하며
그 깊이 속에서는
이미 다음 순간의 빛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