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불완전

사물의 관계-안경, 보이지만 닿지 못하는 것

by 윤담


안경은 작고 가벼운 물건이다.
두 개의 투명한 렌즈와 그것을 잇는 가느다란 다리.
렌즈 위에는 먼지가 쉽게 앉고,
숨이 닿으면 하얀 김이 일었다.
닦을 때마다 세상은 한순간 또렷해졌다가,
이내 다시 흐려졌다.
세상을 본다는 건 언제나
그 한 겹의 김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아홉 살의 여름, 나는 그 김을 걷어내고 싶었다.
세상이 조금 더 선명해지길 바랐고,
그게 어른이 되는 일이라 믿었다.
책상 위 글자에 코를 묻고, 형광등을 오래 바라봤다.
눈이 따갑고 시릴수록
세상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이러다 진짜 안경을 쓰게 되겠지.’
그건 어린 나에게 자랑이자 꿈이었다.
안경을 쓰면,
세상과 나 사이의 모든 흐림이 사라질 줄 알았다.

며칠 뒤, 처음 맞춘 안경을 받았다.
코받침의 차가움이 콧등에 닿았고,
가느다란 다리가 귀 뒤를 눌렀다.
렌즈 위로 형광등의 빛이 번졌다.
칠판의 글씨가 반듯했고,
멀리 있는 나뭇잎의 결까지 또렷했다.
세상은 새것처럼 빛났고,
나는 그 속에서 잠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선명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렌즈는 깨끗했지만, 그 안의 세상은 금세 식어 있었다.
교실의 웃음소리에는 순서가 있었고,
운동장에는 이름이 불리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였다.

공을 들고 나갔지만
아무도 내 쪽을 보지 않았다.
안경 너머의 세상은 또렷했지만,
그 안에 나를 비추는 눈은 없었다.
노을이 운동장 끝으로 번질 때까지
나는 공을 발끝으로 굴리며 서 있었다.
하늘은 붉었고,
그 붉음이 안경알 속에서 천천히 흔들렸다.

어느 날, 아이들이 내 안경을 부러뜨렸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테가 갈라지고,
렌즈 한쪽이 바닥에 굴러 빛을 흩뿌렸다.
순간 세상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한쪽은 또렷했지만 차갑고,
다른 한쪽은 흐렸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다만 금이 간 테를 손에 쥔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손끝의 금속이 서늘했고,
그 서늘함이 오래 남았다.

집으로 돌아와 말했다.
“친구들이랑 놀다가 부러졌어.”
엄마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그래, 괜찮아. 다음엔 조심해.”
그 웃음이 따뜻해서, 오히려 더 아팠다.

그날 이후, 나는 안경을 벗는 시간을 배웠다.
벗으면 세상이 사라졌고,
그 사라짐 속에서 마음이 잠시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표정도, 말소리도
모서리가 부드럽게 깎여 있었다.
그 흐림은 나를 숨 쉬게 했다.
세상을 또렷이 본다는 건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다.
다른 안경을 쓰고, 다른 세상을 본다.
회의실의 형광등은 여전히 눈부시고,
사람들의 말은 종종 서로를 비껴간다.
렌즈는 깨끗하지만, 마음은 자주 흐려진다.
나는 그럴 때마다 렌즈를 닦는다.
닦을수록 세상은 잠시 맑아지고,
곧 다시 숨의 온도가 번져온다.
세상은 여전히 선명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자주 흐릿하다.

가끔은 일부러 안경을 벗는다.
렌즈가 사라진 자리로 공기가 스며들고,
흐릿한 빛이 벽을 따라 번진다.
아이들의 웃음이 들리고,
부엌에서는 국이 끓는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지만,
그 불분명 속에는 온기가 있다.
완벽히 보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흐림 속에서야 비로소
세상은 다시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안경은 세상을 또렷이 보여주는 도구이지만,
그 또렷함 속에서
언제나 무언가가 사라진다.
렌즈는 식어가고,
눈 속의 열은 여전히 남는다.
그 미세한 온도차 속에서
나는 매일의 세상을 버티듯 바라본다.

그리고 그때마다 느낀다.
세상을 똑바로 보는 일보다
세상을 잃지 않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렌즈에 남은 김을 닦을 때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조용히 더듬는다.
그것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