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불완전

존재의 잔열 V

by 윤담

바다는 오늘도 아무 말이 없었다.
햇빛은 수면 위에서 부서졌고,
파도는 마치 오래된 숨처럼 고르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부둣가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모래를 만지고 있었고,
아내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바다는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는 듯,
묵묵히 자신의 호흡만 이어가고 있었다.

“아빠, 물고기 있어?”
막내가 물었다.
“있겠지. 우리 눈에만 안 보일 뿐이야.”
나는 대답했다.
아이의 손끝에서 반짝이는 조개껍질이 햇빛을 받아 빛났다.
그 작은 반짝임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데웠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낚시를 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말보다 바람을 더 자주 주고받았다.
누군가는 고기를 낚기 위해 왔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앉아 있기 위해 온 사람들 같았다.

“오늘은 입질이 없네.”
한 남자가 말했다.
그 말엔 기대도, 실망도 없었다.
그저 오후의 일부처럼 흘러갔다.

“요즘은 애들이 커서 같이 안 와.”
옆의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예전엔 고기보다 애들이 더 요란했는데.”
둘은 웃었다.
그 웃음이 바람에 섞여 바다 위로 흩어졌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말이 나중의 우리 대화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가 더 늙었을 때,
오늘의 이 오후도 언젠가 그렇게 이야기 속의 ‘옛날’이 되겠지.

“당신, 저기 저 사람들 봐.”
아내가 말했다.
“뭐가 잡힐까?”
“모르겠어. 아마 아무것도 안 잡혀도 괜찮을걸.”
나는 대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이런 날은 그게 좋네.”

바람이 불었다.
파도가 발끝을 스쳤다.
바다 냄새와 젖은 흙의 냄새가 섞여 들었다.
아이는 파도에 다가가려다 물러섰다.
햇빛이 물 위에서 반사되어
우리 얼굴에 잔물결처럼 흔들렸다.

멀리서 기러기 한 마리가 지나갔다.
하늘의 색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낚시하던 남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꽝이네.”
“뭐,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들의 말이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가자.”
“응, 조금만 더 보자. 예쁘잖아.”
그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이 마치 오래전 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들렸다.

해가 기울자 바다는 금빛으로 물들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파도에 섞여 사라지고,
남자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나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봤다.

바다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의 발자국이 지워져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다만 우리 안에서만,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온도로 흐를 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마 인생도 저 바다 같을 것이다.
잡히지 않아도 괜찮고,
비워도 여전히 남는 것.
그건 잔열처럼 남아,
다시 한 번 우리를 데우는 어떤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 아이들은 숙소에서 곯아떨어졌다.
아내는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와 방 안을 천천히 식혔다.
바깥에선 여전히 파도 소리가 들렸다.
그 파도는 낮보다도 더 느리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오늘 우리가 낚은 건 고기가 아니라,
아마도 ‘시간의 한 조각’이었을 것이다.
그 조각이 식지 않은 채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존재의 잔열이었다.
잡히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
파도처럼 반복되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리듬처럼 이어지는 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