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투명하게 불완전한 인간이 겪는 경험과 모든 것
창문 위로 희미한 입김이 번진다.
손끝이 그 위를 쓸어내리자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금 흐릿하게 돌아온다.
숨이 남긴 흔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건 마치 인간이 남기는 모든 관계와 기억처럼,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꾸어 남는다.
식탁 위 머그잔에서는 미지근한 김이 피어오른다.
그 옆엔 반쯤 읽힌 책, 펜, 닳은 안경, 접힌 셔츠 한 벌.
사물들은 제각기 다른 시간대를 품고 있었다.
그 안엔 사람의 체온, 머물렀던 하루의 조각들이
조용히 눌려 있었다.
이 방 안은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사물마다 미세한 온도의 기억이 배어 있다.
밖에서는 매미가 울고,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며 빛을 살짝 비틀었다.
그 빛은 투명했으나 완전하지 않았다.
사물의 표면을 덮으며,
어딘가에 스며드는 중이었다.
빛조차 완전한 투명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완전하지 않다는 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완전한 세계를 꿈꾸지 않았다.
오히려 불완전함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이라고 믿었다.
빛은 그림자를 동반해야 존재하고,
소리는 침묵 속에서만 울린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투명한 불완전’이라는 말은
결국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투명함’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오랫동안 완벽한 세계를 그리려 애썼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관계를 다잡고,
모든 것을 정의하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모든 이해는 미완이었다.
그 미완의 틈 사이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의 질감을 느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어느 겨울 아침,
창문에 서린 입김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건 곧 사라지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구나.’
숨은 형태를 바꿔 방 안의 공기로 스며든다.
그렇게 또다시 내 폐로 돌아와, 새로운 숨이 된다.
그건 순환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형태를 달리하며 계속 존재하는 일이라는 것.
그때 나는 알았다.
삶은 소멸이 아니라 변환이라는 사실을.
이해받지 못한 감정들,
전하지 못한 말들,
사라진 사람들조차
다른 형태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을.
어느 날의 사물들
식탁 위의 찻잔, 창문에 맺힌 입김,
책상 위의 먼지, 낡은 셔츠 한 벌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하루를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물들을 바라보며 자주 생각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남긴 온도로 기억되는 존재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얼굴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목소리의 결, 손의 온도,
그리고 그 사람 곁의 공기다.
그 공기 속에는 체온이, 그 체온에는 감정이,
그 감정에는 ‘살아 있었다’는 흔적이 들어 있다.
그건 기록될 수 없지만 분명히 남는다.
이것이 ‘존재의 잔열’이다.
나는 지금 이 문장을 쓰며,
처음으로 완전함을 욕망하지 않는다.
대신 불완전함의 투명함 속에서 안도한다.
삶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호흡처럼 오르내린다.
그리고 그 호흡 사이,
짧은 침묵의 틈에 우리가 존재한다.
커튼 틈으로 들어온 빛이
방 안의 사물들을 다시 덮는다.
그 빛은 오후의 끝자락에 이르러 더 부드럽다.
사물들이 잠시 숨을 멈춘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생각한다.
언젠가 나의 입김도 이 공기 속에 섞이겠지.
그리고 누군가의 창문 위에 서리겠지.
그가 손끝으로 그것을 쓸어내릴 때,
나의 흔적은 사라지는 듯 보이겠지만
실은 그 순간, 완전히 다른 형태로 되살아날 것이다.
숨은 사라지지 않는다.
온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이동한다.
그래서 ‘입김 이후의 세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관계는 변하지만 끊어지지 않고,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모든 흐릿함 속에서
존재는 자신을 다시 자각한다.
그것이 투명해지는 불완전의 단계다.
이제 나는 안다.
완전함은 도달의 형태가 아니라,
이해와 오해, 만남과 이별,
그 모든 불완전한 관계들이 만들어낸 투명한 균형이다.
창문 위의 입김은 어느새 사라졌다.
대신 새로운 공기가 들어왔다.
그 공기 속에는
누군가의 숨, 지나간 계절,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냄새가 섞여 있다.
나는 그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그리고 천천히 내쉰다.
그 호흡이 또 다른 존재에게 닿을 거라 믿으며.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온도를 알아본다.
투명한 불완전의 세계는
이제 그렇게 계속된다.
빛처럼, 숨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며.
-에세이집 "투명한 불완전"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