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불완전

여름의 잔향-오래된 열기

by 윤담

복도식 아파트의 여름은 오래 남았다.
낮의 열기가 벽 안쪽까지 스며들어
밤이 되어도 쉽게 식지 않았다.
형광등 아래 작은 벌레들이 천천히 돌고,
벽에는 하루 종일 달궈진 온기가
아직도 희미하게 붙어 있었다.

복도의 끝, ㄱ자 모퉁이를 돌면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다.
이 건물에서 바람이 드나드는
거의 유일한 길목이었다.

그녀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벽을 따라
가볍게 되돌아왔다.
땀에 젖은 하얀 교복 셔츠 소매가
팔에 달라붙어 있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그 얇은 천이 눈에 보일 만큼 가볍게 떨렸다.

나는 문가에 서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셔츠의 깃이 흔들릴 때마다
저녁 노을이 천천히 그 위를 물들이고 있었다.

창문이 열리자
복도 안으로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커튼이 천천히 부풀고,
창틀 위에 얹혀 있던 먼지가
작게 흩어졌다.

그 바람에
어디선가 팝송 같은 멜로디가 섞여 들어왔다.
아래층 주차장 쪽에서 흘러오는 소리였지만
가사는 들리지 않았다.
낮게 깔린 리듬과
익숙한 듯 낯선 멜로디 한 줄만
공기 속에 오래 머물렀다.

“이 노래… 너도 들려? 우리 집까지 들리던데.”
그녀가 말했다.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고,
그냥 벽에 비친 빛을 바라보았다.
노을과 형광등이 섞여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색을 만들고 있었다.
여름의 끝에만 나타나는 색이었다.

멀리 운동장 쪽에서
야간 연습 종료 방송이 들려왔다.
그녀가 천천히 돌아봤다.
교복 자락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오늘… 진짜 덥지?”
“응… 그래도 지금은 좀 시원하지 않냐.”

그녀는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이
여름 저녁의 떨림처럼
복도에 잠시 머물렀다.

나는 괜히 교복 단추를 만졌다.
땀에 젖은 천이 손끝에 닿았다.
그 온기가
묘하게 또렷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나는 손을 들었다가
그냥 내렸다.
지금은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거리처럼 느껴졌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창밖을 올려다보았다.

“비… 올 것 같지?”
“내일은… 좀 괜찮으려나.”

짧은 대화가
고요하게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지금의 이 공기가
오래 기억될 것 같다는
묘한 예감이 스쳤다.

어디선가 음악이 바뀌었다.
희미한 팝송의 후렴이
잔향처럼 복도에 번졌다.
정확한 가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멜로디를 따라
입술을 살짝 움직였다.
그 작은 움직임이
가슴을 부드럽게 간질였다.

잠시 후
그녀는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조심해서 가라.”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슬리퍼 소리가
한 층씩 아래로 사라졌다.
나는 복도 끝에 혼자 남았다.
붉은 노을이
주차장의 차창 위로 번졌다.
바람이 지나가며
복도에 남은 열기를
조용히 데려갔다.

그 여름은
그렇게 멀어졌다.
그러나 그 향은
잠시 복도에 머물렀다가,
아주 천천히,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