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 한반도 비핵화
러시아와 북한이 가까워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서 러시아가 경제 제제등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중에 하나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북한으로 부터 무기를 공급받으려는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경제제제로 인한 고립을 그나마 혈맹인 중국에 의존하여 극복하고 있었다. 이번 러시아와의 접근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유엔의 븍한에 대한 경제 제제를 둔화 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한반도 분할의 역사는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이권경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남북관계가 답보상태에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가능하지 않은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남북교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원초적인 원인은 19세기 말 약육강식이 국제사회의 법칙이었던 제국주의 시절에 외세에 저항할 힘이 전혀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조선은 청나라에 의지하여 나라의 명맥을 유지 했는데 세계 최 강국이었던 청나라가 영국을 비롯한 구미 국가에게 무너지면서 조선도 무너졌다.
20세게 초에 허약한 조선의 멸망은 기정사실이었다. 문제는 누가 차지하나였다.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기득권을 지키려고 시도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 일본이 차지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러시아가 방해했다. 조선을 놓고 일본과 러시아가 한판 승부를 벌렸다. 당시에 세계 최강국이었던 영국은 러시아와 헤게모니 경쟁을 하고 있었다. 영국은 러시아가 태평양에 진출하는 것을 웜하지 않았다. 영국은 일본과 동맹을 맺어 일본으로 하여금 러시아의 동쪽으로의 팽창을 저지하게 했다. 미국 또한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원하지 않았고 영국과 같이 밀본에게 전비를 대출해 주었다. 일본은 영미의 도움으로 조선에 대한 마지막 경쟁자였던 러시아를 물리치고 조선을 차지했다.
그러나 4국의 한반도에 대한 이권 경쟁은 러일전쟁으로 끝나지 않았다. 중국은 청일전쟁을 제1차 중일전쟁이라고하고 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을 제2차 중일전쟁이라고 한다. 전쟁 도중 일본이 중국을 거의 다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중국인들은 국공합작으로 끝 까지 저항하여 영국, 미국, 소련(러시아)과 함께 4대 연합국의 하나로 1945년 9월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물론 거기까지는 한반도가 전리품은 아니었다.
1945년 8월8일 소련(러시아)은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천진에 상륙하여 북한에 진입했다. 소련은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에 대한 패배를 설욕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려하자 삼국간섭으로 이를 저지하고 일본과 협상을 한적이 있다. 이때 러시아는 일본에게 39도선에서 한반도를 분할하여 북쪽은 러시아가 남쪽은 일본이 차지하자고 제안했다. 이번에는 미국이 소련에게 한반도를 38도선에서 분할하여 북은 소련이 남은 미국이 점령하자고 제안했다. 39도선 보다 소련에게 이로운 제안이었다. 소련은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1945년에서 1948년 까지 미국과 소련은 각각 한반도에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를, 소련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했다. 냉전시대에 두 나라가 양보할 리가 없었다. 북에는 소련에 의해서 소련의 입맛에 맞는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남에는 미국에 의해서 미국의 입맛에 맞는 이승만을 수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건설되었다.
1950년 김일성은 소련의 도움을 얻어서 무력으로 통일을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은 애써 차지한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은 삽시간에 인공과 미국의 전투로 변했다. 1950년 9월28일 서울를 수복한 미군은 38선을 넘어 10월에는 평양을 점령했다. 미군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할 기세였다. 인공의 운명이 풍전등화였을 때 이번에는 중공이 나섰다. 갑자기 나타난 중공군에게 미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중공은 미군으로 부터 인공을 구했다. 중공군의 승리였다. 전쟁 후 소련의 인공에 대한 영향력은 계속되었으나 인공은 중공과 소련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할 수 있었다. 1990년 소련 패망 이후 중공은 인공의 유일한 혈맹으로 존재해 왔다.
그런데 이번 푸틴과 김정은 회담은 푸틴의 야망인 구 소련 연방 회복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직 푸틴이 시진핑의 비위를 건들만한 여유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푸틴은 인공을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넣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남북통일의 꿈은 깨지고 한미동맹에 국방을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새로 설정된 완충지대 이남을 영토로 하는 국가로 남아있다.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은 남한이 소련과 중공으로 부터 일본을 방어하기 위한 육지의 기지로 중요한 전략적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전쟁전에 한반도 방어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미국은 전쟁 후에 주한 미군 주둔 뿐만이 아니고 남한 전역에 핵 무기를 배치했다. 1950년 부터 하나 들 배치하기 시작한 남한의 핵무기는 1990년 러시아와 미국간의 핵무기 감축의 일환으로 남한에서 핵무기가 전면 철수하기 직전에 2000개에 가까운 핵탄두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알게된 인공은 소련과 중공에게 핵무기 배치를 요구했으나 거절 당했다. 결국 자체 핵개발을 시작해서 오늘날 불법 핵소유국으로 군림히게 되었다. 그리고 남한의 북한 핵에 대한 방어는 미국의 핵 우산에 의지하고있다.
국민의 힘 당대표에 출마한 나경원 의원이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하고 나섰다. 물론 국산 핵무기로의 무장이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종전협정, 남북교류 등 남한의 북한과의 유화적인 정책의 선제 조건으로 내 세우고 있다. 마치 북한과 남한이 접근하는 것 보다 대립하는 것을 원하는 것 처럼 보인다. 왜냐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도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공이 러시아와 중공과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게도 억매이지 않고 자국이 원하는 것을 달성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방과 경제가 튼튼해야한다. 인공은 핵을 보유하고 있어서 국방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느나 경제적으로 아주 취약하다. 그레서 인공의 독자 외교는 한계점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에 통일된 친미국가를 절대 반대할 것이다. 다시말하면 미국이 원하는 통일정부는 불가능에 가깝다. 한반도에 관한 동북 아시아의 지정학적 원칙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주한 미군과 미국의 핵에 의지하는 한국의 국방은 영원한 분단 국가를 자임하는 구조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강국이 되었다. 이제는 국방 강국이 되어야한다. 그 첫 수순이 한국의 국산 핵무장이다. 그래야 미국 눈치 보지 않고 불가능한 한반도 비핵화 전제 조건 없이 남북교류를 시작할 수 있다. 남과 북이 다 같이 등거리 외교를 할 때 우리민족 끼리 가까워 질 수 있다. 아무리 미국이 낳아준 한국이라고 하지만 이제 철든 한국이 제길 가겠다는 데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