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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Jul 28. 2021

이란과 아프카니스탄, 쉬아와 수니의 싸움

미군철수; 아프카니스탄과 한국


Nowar.net

이스탄물은 세상을 동서로 갈라놓는 분기점이다. 이곳에서 가까운 동쪽에 위치한 지역을 중동(Mid East)이라고 한다. 한국은 이곳에서 먼 동쪽 즉 극동(Far East)에 위치 한다. 나는 이스탄불의 서쪽인 서양이 흥하던 시절에 망해 버린 동양에서 태어 났다.  잘나가던 서양 사람들은 중동과 극동에 분쟁을 초래 했다. 중동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 전통, 종교, 문화 그리고 발달된 문명이 있었다. 서양사람들은 근대문명의 에너지원인 막대한 석유자원을 발견 했다. 그리고 중동사람들의 모든 것을 무시하고 지도를 펴놓고 석유자원과 자국의 이득을 중심으로 잣대를 대고 선을 그어 새나라를 만들 었다. 결국 이질적인 역사, 전통,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나라인에서 같이 살아야 했다. 이들은 덕분에 지금도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서양사람들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극동에 전파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극동의 국가들은 두 이념 국가로 갈라 섰다. 중국내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겪고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국가가 되었고 한반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20년 동안 아프카니스탄에서 탈리반과 싸우던 미군이 드디어 8월말 까지 완전히 철수 한다. 오늘 현재로 사실상 미군은 아프카니스탄에 존재하지 않는 다. 탈리반은 아프카니스탄의 80%를 점령 했다고 한다. 미국이 지지하는 아프칸 정부의 몰락은 시간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예측 한다. 2001년9월11일 뉴욕 월드 트레드 센터 테러 사건의 원흉 오사마 빈 라든을 비호 했던 사람들이 탈리반이다.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한 대의명분은 탈리반과 오 사마 빈 라든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이들을 척렬 하는 것 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리 탐탁치 않은 정당화 였다. 아프카니스탄에 친쏘 정권이 들어 섰다. 탈리반은 이에 반기를 들었다. 사우디 왕자인 오사마 빈 라든은 탈리반을 도왔다. 그는 1980년에 알퀴다라는 이슬람국제조직을 만들고 그 본부를 아프카니스탄에 두었다. 오사마와 일퀴다는 전 세계에서 이슬람 용사들을 모집해서 탈리반을 도왔다. 미국은 CIA를 통해서 오사마 빈 라든을 도와 탈리반을 원조 했다. 아프칸의 친쏘 사회주의 정권과 러시아는 탈리반에게 패퇴 했다. 쏘련군은 철수 했다. 탈리반이 정권을 잡 았다. 미국, 오사마 빈 라든, 탈리반이 힘을 합처서 친쏘 정권과 쏘련군을 몰아 냈다. 아프칸 전쟁은 쏘련 붕괴의 치명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후 공산주의는 몰락하고 미국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강대국이 되었다. 그런 데 왜 오사마 빈 라든은 2001년 9월11일에 같은 편이었던 미국을 공격 했을 까?


중동의 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쉬아수니가 어떻게 분포 되어 있는 가를 눈여겨 보며 사건의 진행을 따라가야 한다. 수 많은 생소한 구룹들의 이름과 얽히고 섥힌 사건들은 독자들을 피곤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들을 쉬아와 수니로 분리 하면서 따라가면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하메트가 사망하자  승계 문제로 무슬램들은  쉬아와 수니로 갈라 졌다. 쉬아는 무하메트의 사위인 알리가 승계해야 한다고 믿었고 수니는 무하메트와 같이 일 했던 사람이 승계할 것을 주장 했다. 현재 쉬아는 약 15%, 수니는 약 85%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적인 수니 중심 국가이고 이란이 쉬아파를 지배하고 있는나라 이다. 탈리반은 수니이고 오사마 빈 라든은 수니 국가 사우디의 왕자 였다. 


이란이 순수한 쉬아 국가인 반면에 이락은 다수가 쉬아이고 소수가 수니로 두 분파가 섞여 있는 국가 이다. 이락의 사담 후세인은 소수 수니였는 데 구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수니인 사담과 쉬아인 이란은 오랜동안 전쟁을 했는 데 미국은 사담의 이락을 지원 했다.  아프칸에서는 오사마 빈 라든 과 탈리반, 이락에서는 사담 후세인을 지원 했다. 다시 말 하자면 미국은 수니 편이었다. *이란은 1953년 미국이 CIA가 주도한 쿠테타로 민족주의 정권을 축출하고 친미 팔라비 정권을 만들어 놓은 이후로 이란 사람들에게 반미감정이 쌓여 왔다. 1979년 이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 으로 인해서 팔레비 정권이 몰락하고 현재의 아야톨라 이슬람 정부 체제가 만들어 졌다. 이란은 전세계의 쉬아파를 결집 시켜 이란의 국익을 신장 시키려고 총력을 기우리고 있다.이란의 적은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적성국가로 취급한다. 


그런데 사담이 쿠에트를 침공 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사담을 쳤다. 소위 갈프 워 이다. 미군은 쿠에이트에서 이락군(사담)을 몰아낸 후 일부가 사우디에 머물렀다. 오사마 빈 라든은 미국을 배반자(Infidel)로 규정 했다. 수니 편이던 미국은 수니인 사담을 공격해서 쉬아인 이란편을 들어 주어놓고 수니의 맹주인 조국 사우디에 군대를 주둔 시킨 것이다. 오사마 빈 라든은 배반자 미국에 대한 복수을 결심하고 용의주도 하게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9.11 이라는 전대미문의 미국 본토 타격에 성공 했다. 


 미국정부가 그동안에 같은 편이었던 사담과 탈리반을 배반했다고 세상에 공표 할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본질이 나쁜 이슬람 테러리스트(알 퀴다)들이 반미감정으로 저지른 악질 테러라고 미국민을 포함한  온세상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오사마 빈 라든을 비롯한 테러리스트의 근거지인 아프카니스탄을 침공 했다. 2001년, 딱 20년전 이야기 이다. 


2년후 2003년 미국은 사담 후세인의 이락을 침공 했다. 사담이 대량살상무기(원자무기)를 가지고 있고 테러리스트를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온세상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사담은 대량살상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테러리스트를 지원하지도 않았다. 미국 정보기관은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든 증거를 가짜로 만들어서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에게 주었다. 파월은 가짜증거를 가지고 유엔에서 미국이 이락을 침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 했다. 일단 온 세상이 다 속았다. 


아프카니스탄의 탈리반과 이락의 사담, 모두 망했다. 미국은 두 나라에 미국이 원하는 정부를 만들 었다. 즉 수니파의 몰락 이었다. 이락을 점령한 미국은 사담의 군대를 모조리 해산 시켰다. 그들은 먹고 살수 가 없게 되었다. 미국이 원수였다. 그들은 일퀴다가 되었다. 새로만들어 진 이락의 실세는 쉬아파 였다. 사담 시절에 소수 수니파에 억눌렸던 다수의 쉬아파가 정권을 잡은 것이다. 쉬아파 정부는 일퀴다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군은 싸울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이락 정부군 대신에 쉬아파 이란의 무장군대가 이락에 들어와서 이들을 북서쪽으로 몰아 냈다. 마침 시리아가 아싸드의 학정으로 인해서 내전 상태 였다. 이락 알퀴다, 즉 전 사담군대는 시리아에서 아이시스(ISIS)를 만들었다. 미국이 아이시스가 나쁜놈들이라고 떠들어 댔지만 알고보면 미국의 어리석은 정책의 산물이었다. 


아프카니스탄은 전인구의 약15%가 쉬아파이다. 이들은 수니파인 탈리반으로 부터 박해를 받아 왔다. 자국에서 살기가 어려워 지자 같은 쉬아파 국가인  이란으로 피난 했다. 무려 3백만명이 이란에서 피난민 신분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란 혁명 방위군은 이란에 있는 아프칸 피난민과 아프칸 내부에 있는 쉬아 이슬람중에서 쉬아파를 위해서 타국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여 Fatemiyoun Army라는 군대를 만들었다. 이란은 이들을 시리아에 투입하여 아싸드 정부를 위해서 싸우게 했다. 아싸드 정부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서 내란이 어느정도 진정이 돼가자 페테미윤은 이란으로 돌아 왔다. 미국이 아프칸에서 철수 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부터 이란은 이들을 점차적으로 아프칸에 투입하고 있다. 


2020년12월, 이란 외무장관 모하메드 자바드 자리프는 아프칸 정부에게 원한다면 페테미윤부대를 파견하여 탈리반과 싸울 의사가 있다고 전 했다. 시리아에서 페테미윤이 아싸드 정부군의 지휘를 받았듯이 아프칸에서도 아프칸정부군의 지휘를 받기를 원한다고 선의의 원조 임를 확인 했다. 물론 아프칸 정부는 이를 거절 했다. 그러나 이때는 아직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하자라스(Hazaras)는 아프칸에서 3번째로 많은 민족이다. 대부분의 하자라스는 쉬아이다. 미군이 아프칸을 침공하기 전에는 탈리반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수니파인 탈리반은 수천명의 하자라스를 학살 했다. 최근에도 하자라스 부족 지도자들을 죽였고 카불의 자살폭탄 테러도 하자라스 쉬아 마을에서 일어 났다. 이란에서 들어온 파테미윤이 이들과 연대하여 탈리반과 싸울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아프칸에서의 수니(탈리반)과 쉬아(하자라스)의 내전은 이미 시작 됐다. 탈리반은 허약한 아프칸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아마 아프칸 정부는 이란의 페테미윤의 도움을 받아드리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을 지도 모른다. 인도와 헤게모니 싸움을 벌리고 있는 파키스탄은 항상 탈리반편에 있었다. 미군이 철수 하면 파키스탄은 탈리반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이란과 파키스탄이 충돌 할 수 있는 양상 이다. 


1949년6월29일 미군은 칼빈총으로 무장한 국군 10만명과 미군 고문관 500명을 남기고 남한에서 철 수 했다. 일년 후 한국전쟁이 일어 났다. 전쟁은 둘로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적화통일의 일보직전에 미군이 다시 돌아와서 남한이 구제 되었다.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 일보 직전에 중공이 개입하여 북한이 살아 남았다. 그리고 현재의 휴전선에서 1953년7월27일 정전 협정이 맺어 졌다. 천만 다행이었다. 앞으로 선진 민주주의 국가로 통일 될 기반을  마련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년동안 탈리반의 전근대적인 풍습과 윤리관을 개혁하고 미국의 이상을 심으려고 노력 했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이 원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2021년8월31일에 아프칸에서 떠 난다. 미국은 아프칸에 이란이 원하는 쉬아파 정권이 들어서든 수니 탈리반이 정권을 잡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외세의 영향이 커도 결국 자 국민의 노력 없이는 국민이 원하는 나라가 만들어 지지 않는 다. 그 나라의 정부 형태는 그 나라의 민도의 척도라고 하지 않았던 가? 미국이 그동안에 뿌려놓은 씨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깨우친 아프칸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끝임없이 노력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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