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의 추억이 오랜 모범의 전형으로
이 이야기 들에 나오는 분들은 내게 문화적 영향을 준 사람들입니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내 코드가 맞는 사람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내 영혼의 팬?
그냥 쉽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들은 나의 십 대 말부터 지금까지 내 감성의 심연에 들어온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음악, 미술, 문학, 혁명가, 대중예술, 스포츠, 건축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글들입니다
그래서 깊이 없는 그저 내 감정, 내 마음대로 쓴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70년대 홍콩 영화의 전성기, 청소년기 때 홍콩 영화를 보지 않고 자란 우리 시대의 사람이 있을까 싶은
그 시절이 지나고 80년 중후반 홍콩영화 르네상스 기라 하는 홍콩영화의 황금기(?)가 다시 시작된 것으로
상징되는 그 시절, 큰 키의 그가 긴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검은 안경을 쓴 채 입엔 성냥개비를 물고 나타난 것이다.
내가 청소년 때는 이소룡에게 열광했고 당시 내 또래의 소년들은 이소룡의 쌍절곤을 수제로 만들어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고 청계천 헌책방을 뒤져 이소룡의 사진이 나온 잡지를 구했고 그걸 보물처럼 여기며 학교에 가져갔다가 소지품 검사 때(요즘은 학생 인권조례로 안 한다는) 걸려서 압수당하고 혼나고 했던....
그러나 그는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해 버려 안타깝게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몇 년 후 '성룡의 취권'이 국도 극장에서 장기 상영하며 엄청난 관람객을 끌어들였고 홍콩 영화의 저력(?)은 이렇게 아직도 발휘되고 있었다. 그땐 그런 표현이 없었지만 N차 관람하는 애들도 있었고 비틀거리며 동작을 흉내 내는 애들을 동네 골목이나 어디서든 볼 수도 있었다.
그렇게 70년대가 갔고 긴 세월 독재의 권좌에 있던 이도 떠났고 80년대가 왔지만 서울의 봄은 없었다.
그 암울했던 시기를 보내며 80년의 중반이 지나는 86년이 되었을 때 검은 바바리의 그가 온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중반쯤 까지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홍콩영화가 다시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까지 몰고 올 줄 당시는 몰랐겠지만 당시 그의 영화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은 엄청난 인기와 함께 홍콩영화가 다시 부활될 전조였다. 사실 그전 이소룡이나 성룡으로 대변되던 홍콩영화의 인기는 단지 그 스타의 인기였다면 80년대는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까지 생겨 날 정도로 홍콩영화가 전성기를 이룰 때였다. 누아르 장르뿐 아니라 멜로, 코믹, 무협 등도 홍콩영화의 르네상스라 할 정도로 덩달아 인기를 끌었고 주윤발뿐 아니라 장국영, 왕조현, 임청하 등도 엄청 인기를 끌었던 때였다. 왕조현 책받침이 남학생들 사이 인기였고 우리나라 광고에 외국인이 등장하기 시작한 게 바로 그때였다. 왕조현이 그랬고 주윤발이 그랬다.
그러다 1997년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되었고 그즈음 홍콩 반환에 따른 불안감은 영화에도 녹여 나와 불안한 청춘들을 그려냈던 왕가위영화가 빛이 나기도 했었다. 이 시기 왕가위영화가 주목을 받는 동안 주윤발은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액션누아르 영화에 출연하는 등 영어권 영화에 출연했으나 언어문제등으로 영화가 성공은 거두지 못했던 듯하고 2000년 개봉한 '와호장룡'이 영어권에서 대히트를 하며 서구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허리우드에서는 그다지 그의 활약이 빛나지 않은 것 같고 주로 악역으로 백인들과 싸우는 모습등으로 나온다니 그와 같은 동양인인 내 입장에선 안타깝기도 했었다. 또한 유명해지고 난 후에도 다작으로 그의 이미지를 소모한다는 소리도 있었으나 그는 인기만큼 의리도 있어 그가 무명시절부터 함께한 제작자, 감독들의 출연제의를 거절하지 못해 그랬다고 하며 또 당시 홍콩 영화계까지 손을 뻗친 삼합회의 돈벌이용 영화제작에 소모되기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80년대 말 주윤발의 등장과 함께 홍콩영화는 대성공을 거두며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때 주윤발... 당시 동양인으로는 꽤 큰 키의 그가 검은 바바리를 날리며 쌍권총을 들고 너무나 스타일리시하게 총을 쏴 대는 장면은 정말 모두를 반하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 외모만큼 그에 대한 인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작업을 했던 오우삼 감독은 '그는 따뜻한 마음씨와 현대적인 기사도의 풍모를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라고 회상하기도 하고 그 후 그에 대한 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미담 기사들이었다. 홍콩에서 그는 대중교통으로 다니며 옷차림도 그냥 동네 아저씨 같았고 경호원이나 수행원 없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그를 만났다는 기사였다. 이에 대해 어떤 인터뷰에서 왜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냐는 질문에 차는 있지만 운전사가 자신 때문에 기다리는 게 싫고 지하철이 편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뿐이다...라고 했으며
식당에서 팬들이 알아보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면 직접 팬들의 식탁으로 가서 사진을 찍어 준다고...
무엇보다 그가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건 그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한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지난 2023년
부산영화제에 참석한 그가 이것에 대해 질문이 나오자 유쾌하게 이건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아내가 한 것이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고 하고 그 돈은 자기가 잠깐 가지고 있던 것이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을 했다고 한다. 또한 유명한 스타임에도 한 달 용돈이 20만 원이 채 안된다는 것이고 핸드폰조차 최신 스마트폰이 아니라고 하고... 추정치라 언론마다 발표액이 다르지만 대략 8,000억 원이
넘는 돈을 기부했다고 한다. 전재산 8,100억원을 기부한 한 배우 - Daum 카페
그보다 더 내가 그를 좋아 한건... 홍콩 반환 이후 홍콩 영화가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우회적으로 중국당국의 검열과 같은 경직된 영화 시스템이 문제다라고 했고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일명 '우산시위'때 학생들을 지지한다는 포지션을 취하기도(그 후 중국당국과 불편한 관계 때문인 듯 한발 물러선 듯하며 정치에 관한 발언은 삼가고 있다)했고 같은 홍콩 배우인 성룡은 중국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과는 다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복면시위가 홍콩 전역에서 일자 그가 조깅을 하며 마스크를 쓰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우연인지... 는 본인이 입장을 밝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요즘은 홍콩 공익단체의 일원으로 유기견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니.... 한때의 대 스타가...
이런 인성을 가진 배우이니 "따거"소리를 들을만하지 않은가...
MBC에서 방영한 '신비한 TV서프라이즈'에서의 일화... 하나
홍콩배우 오맹달은 왕년 술과 여자, 도박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며 나락의 길로 떨어졌을 때 주윤발에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와달라고 했으나 주윤발은 알아서 해결하라며 일언지하에 거절... 이에 오맹달은 주윤발을 원망하며 돌아갔는데 그 후 나락으로 빠진 것 같은 그에게 기회가 와 영화 '천장지구'에 출연하여
다시 좋은 연기를 펼쳐 그해 홍콩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재기에 성공하였는데 이때 시상식에서 자신에게 축하를 건네는 주윤발을 무시하며 냉랭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한을 품은 오맹달은 주윤발을 욕하며 다녔는데 이를 보다 못한 영화관계자가 나중에 오맹달에게 그 영화에 당신을 추천한 건 주윤발이었다는 걸 들려주었다고... 당시 영화계에선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이미지 때문에 거절했는데 대스타 주윤발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가 출연하게 된 것이었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사람이 이던가...
나는 주윤발 같은 돈도 가지지 못했고 또 그만큼 착한 심성도 가지지 못했으니 그를 좋아하는 것만이라도
하자... 라며 내가 좋아한 사람의 목록에 그를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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