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무 살 무렵의 '회복기의 노래'는...
이 이야기 들에 나오는 분들은 내게 문화적 영향을 준 사람들입니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내 코드가 맞는 사람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내 영혼의 팬?
그냥 쉽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들은 나의 십 대 말부터 지금까지 내 감성의 심연에 들어온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음악, 미술, 문학, 혁명가, 대중예술, 스포츠, 건축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글들입니다
그래서 깊이 없는 그저 내 감정, 내 마음대로 쓴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내 스무 살 무렵의 감성은 너무나 나약하고 한심했었다. 이 시대에서 젊은이로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당위성, 그리고 이걸 뚫고 나가야 하는 전투적인 의지... 뭐 이런 것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점점 도망치고 숨고 했었다. 나는 방구석에서 소설나부랭이나 읽고 있었고 나는 불쌍했고 내 스무 살 근처의 청춘은 비겁했었다. 그때 송기원, 김승옥, 전상국 등을 만났다.
송기원은 1974년 신춘문예에 소설과 시가 동시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던 천재작가로 중앙일보에 신춘문예에 소설 '경외성서(經外聖書)'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는 시 '회복기의 노래'가 동시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리며 문단에 나왔는데 그는 이미 고교시절부터 능력을 발휘해 고려대학교 주최 전국 고교생백일장에서 당선(1963)되기도 했고 1966년에는 서라벌예대(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주최로 열린 백일장에서 시가 당선되어 장학생으로 동 대학에 입학(1968)을 했었다. 송기원을 알게 된 80년대 초반 나는 탐미주의인지 병약한 허무주의였는지 그의 글에 빠졌었고 그의 어둡고도 끝 모를 깊은 곳에 있을 것 같은, 뭔가 이상한 감정의 끌림 같은 게 있었었다. 그게 나중에 실제 만나게 될 줄은 그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가 서른 살이 되고 1990년 한길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문학학교에 수강생으로 문학강좌를 들었는데 그때 송기원은 우리 반 담임선생이었다. 세상에... 그를 실물영접하는 건 물론 그와 술도 마실 수 있다니.... 그때 나는 완전 독자로서 당시 기라성 같은 문인들의 강좌를 듣는 것 만으로 수업이 황홀했었는데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들과 강좌 후 뒤풀이로 새벽까지 술을 마실 수 있었으니.... 이렇게 죽도록 멋진 일이 또 있을까...
당시 문학계는 진보적인 문인들과 그런 사실주의 문학이 주류가 되던 때였고 군사독재와 싸우는 지식인으로 소설과 시, 희곡등에서 사실주의를 실천하며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기도 했던 때였다. 하지만 90년, 동구권의 몰락과 이념이 상실되는 이 시기는 반대로 변혁기 문학은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문학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90년, 나는 송기원과 함께 술을 마시며 시절을 이야기했고 그의 삶을 들었고 문학이 죽고 세월이 이겼다는 세상에서 수강생들과 어울려 엄청나게 술을 마셔댔다.
그렇게 송기원은 스무 살 무렵 문학으로 만나 나를 열병에 앓게 하더니 서른이 넘자 실제 같이 술을 마시고 밤새 토론하고 술을 마시는 현실의 인물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땐 수업보다 외려 여러 문인들이 강의를 끝내면 실제 이야기는 뒤풀이에서 늘 새벽까지 되곤 했는데 특히 송기원은 술자리에서 그의 기가 막힌 인생사를 이야기했었다. 그가 문학에서 병적 허무주의 같은 정서가 나타나는 게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또 그때기억으론 고은, 신경숙, 임헌영 등과 지금은 돌아가신 김남주, 고정희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 평론가들이 강의를 했었다. 그때 지리산으로 여름 수련회를 가서 1박 2일 동안 그 쟁쟁하고 유명한 문인들과 술을 마시고 하루를 보내며 일부 문인의 기이한 술버릇도 보았고 바로 곁에서 그렇게 술을 마셨다.
송기원은 개가한 어머니가 데리고 들어간 자식이었는데 어머니는 장터에서 장사를 했고 본인은 불우한 어린 시절이었고 그렇게 전남 어촌의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방황하는 10대를 보내며 퇴학을 당하기도 했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10대 시절을 보내고(그러면서도 대학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서 당선이 되기도 하고)그래서 1968년 서라벌 예대에 입학하였다. 1970년에는 월남전에 참전하였다가 말라리아로 귀국하였고 그때 베트남전에서 경험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쓴 소설 경외성서가 1974년 신춘문예에서 당선이 되었고 그해 1974년 '문학인의 시국선언' 참가 및 이듬해 '대학인의 선언'으로 제적되었다. 그러다 1980년 복학했으나 이번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구속되어 복역했고 그 후 그는 필화사건, 국보법 위반등 민주화 운동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렀고 무엇보다 이 작가에게 가장 충격을 준건 옥고를 치르는 도중 그만을 바라보고 그의 옥바라지를 하던 어머님이 자결을 한 것이었다. 인생에서 이 일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한 그는 그 후 술에 빠지기도 했고 명상수련이나 기수련 등으로 자신을 회복시키기도 했다. 그게 내가 그를 만나기 직전까지의 일들이었다. 그 후 명상, 요가, 기수련 등으로 몸을 회복하더니 인도 순례를 하고는 명상에 관한 글들을 써내기도 했다.
현재는 해남군 백련재 문학의 집 입주작가로 책을 쓰고 있으며 문학사에 기리 남을 잠언시집, 시선집, 소설선집등을 동시에 출간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으며 입주작가의 멘토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24년 현재도 아직도 글을 쓰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그는 최근까지도 활동을 했다.
나는 그런 그의 글을 90년대 후반 출간한 글들을 읽지 못하고 있다.(어쩌면 그가 구도 작가의 길로 들어선 후 글을 읽지 않게 된 것 같다)
작품
1974년 시 '회복기의 노래'가 동아일보 시부문 당선, 소설 '경외성서'가 중앙일보 소설부문 당선
1979년 열아홉 살의 시(소설), 소설집 '월행', 1983년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시집)
1984년 다시 월문리에서(소설집), 1987년 스물다섯 장의 엽서, 1990년 마음속 붉은 꽃잎(창비시선)
1990년 다섯 개의 겨울노트(성장기 소설선), 1990년 배소의 꽃(소설), 1993년 아름다운 얼굴(소설)
1994년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 된다(기독교에세이), 1994년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소설)
1995년 인도로 간 예수(소설), 1996년 여자에 관한 명상(소설), 1997년 청산(구도소설) 1999년 안으로의
여행(소설), 2000년 또 하나의 나(소설), 2003년 사람의 향기(소설), 2006년 송기원의 뒷골목 맛세상(맛집여행기), 2006년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시집), 2006년 아름다운 얼굴(소설집), 2010년 저녁(시집),
2011년 못난이 노자(도덕경해설), 2013년 별밭공원(소설집), 2013년 월행(영어번역), 2021년 숨
(명상소설), 2021년 누나(소설), 2023년 그대가 그대에게 절을 올리니(잠언시집), 2023년 늙은 창녀의 노래(소설집), 2023년 그대는 언제나 밖에(시선집) -이상 굵은 글씨체는 내가 읽었던 작품
94년 '출간된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는 영화화되었고 23년 출간한 '늙은 창녀의 노래'는 연극으로 상연됨
수상
1983년 제2회 신동엽 문학상, 1993년 제24회 동인 문학상, 2001년 제9회 오영수 문학상
2003년 제11회 대산 문학상, 2003년 제6회 김동리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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