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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의 소환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서...

by James 아저씨

이 글들은 여행에서 또는 일상에서 겪은 일들 중 조금 황당하고

조금은 어이없는... 또는 흐뭇했던 기억들을 되살리는 글들이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다 추억이다~~라고 하지만

당시는 꽤 어이없어하고 기분 나빴던, 달콤하고 행복했던 짧은 순간의

일들을 하나씩 소환하는 글들이다.



1992년 여름, 동해안으로 친구들과 조금 늦은 여행을 떠났었다.

8월 초순이 조금 지난 무렵 삼척의 작은 해안가 어촌마을에 도착했고 바다는 한적해서 좋았다.

날씨도 흐려 바다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약간의 파도까지 있어 그야말로 철 지난 바닷가처럼 약간은

을씨년 스런 느낌까지 있었다. 게다가 다음날부터는 비까지 내리기 시작해 우린 민박집에 갇혀 종일,

낮술로 시작해 밤까지 술을 먹었고 쉬는 시간엔 술도 깰 겸 고스톱을 쳤고 그러다 잠을 잤고 깨면

또 반복하고 그랬다. 젊음은 강했다. 그렇게 술을 먹어도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비가 철철 오는 바닷가에선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술에 떨어져 잠이 든 사흘째 새벽즈음....

"이봐요~~ 총각들... 금메달을 땄어요~ 금메달!!!"

뭔 소리야... 하며 잠결에 일어나니 문밖에서 주인아주머니가 '황영조가 금메달을 땄데요... 금메달을~~'

이라며 들뜬 목소리로 우릴 깨웠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는 시각이었고

1992년 8월 9일 새벽이었다.

saved_resource.jfif 당시 시상식 중계화면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이라고... 마지막날 메인스타디움에서 폐막식 직전에 주 경기장에서 시상식을 하는 유일한 종목이고 그래서 마라톤은 정말 영광스러운 종목인 것이고 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딴것이었다. 집으로 와 그 경기를 재방송으로 보았고 그 장면은 몇 번을 방송국마다 다시 방송했다.

그 경기에서 코스 중반 이후 일본의 모리시타와 한국의 김완기, 황영조 이렇게 셋은 선두권을 형성하며 치고 나갔다. 33k쯤이었다. 시청을 돌아갈 때까지는 일본선수가 계속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고 람블라스 거리 쪽에서 콜럼버스 동상이 있는 광장 거리를 지날 때까지 그랬다.

그리고 투우장을 지날 무렵부터 황영조는 모리시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앞에는 지금은 유명해진 당시는 악마의 몬주익 언덕을 오르는 구간이었다.

마라톤 선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구간이 35~40k라는데 이때부터 하필이면 그 구간이 언덕길이었다.

일명 지옥의 구간이었다(역대 마라톤 코스 중 최악의 코스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황영조는 모리시타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더니 거리를 벌리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마의 구간이라 하는 하필 언덕길 구간에서,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구간이라는 이 언덕길에서 황영조는 거꾸로 속도를 내며 모리시타와 격차를 벌이며 앞으로 달려 나간 것이다. 그렇게 주 경기장으로 들어온 황영조는 결승선을 100여 미터 남기고는 두 손을

번쩍 들고 관중석을 향해 손키스를 날리는 여유를 보이며 결승선을 통과...

이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마라톤 금메달이며 주경장에서 태극기를 올리며 국가가 나온 것도 최초였다.

이때가 한국시간으로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밤새 이 경기 중계를 본 것이었다. 그리고 우릴 깨운 것이다. 세상에...

GuPNSuAdm2.jfif 몬주익 언덕길에 있는 올림픽 마라톤 부조

그리고 17년 후 나는 그 몬주익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한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아래 나는 람브라스 거리를 지나고 바르셀로나의 곳곳을 돌며 황영조를 따라 걸었다. 사실 지금은 오래전이라 그 코스, 그 길이 다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 길을 따라 혼자 감격해했던 기억만 있다. 그 거리를 따라 걷고 언덕길을 오르며 그 힘든 길을 이를 물고 뛰어 일본선수를 제치고 우승을 한

황영조를 떠올려보며 그 길을 따라가 본 것이다. 몬주익 그 언덕길을...


사실 그 올림픽 시기 일본은 세계적 특급 마라토너를 여러 명 보유하고 있었고 세계적인 유명 마라톤 대회를 돌아가며 우승하는 등 일본은 마라톤 황금기였다. 그들 중 누가 우승을 해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세계최고 기록을 가진 에티오피아 선수가 있었으나 그는 컨디션 난조로 이번 대회에 출전을 하지 않아 세계 육상계에서는 일본이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경기에서 쟁쟁한 일본선수 셋을 제치고 황영조는 56년 만에 금메달을 딴것이다.

그 56년 전은 일제 강점기 시절 손기정이 '키테이 손'이라는 일본이름으로 출전하여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것이었고 이후 우리나라 국호와 국기를 달고 나가 최초로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것이었다.

그때 바르셀로나 메인스타디움 관중석에는 56년 전의 손기정선수가 앉아 있었고 그 감동적인 우리나라 선수의 우승 현장에 그도 있었던 것이다. 하필 56년 전 그날도 8월 9일이었다.

C0AQCRUe3jX.jfif 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우승의 손기정 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우승 황영조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국내 TV화면에는 잡히지 않았는데 지금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면 황영조는 결승선을 통과한 후 쓰러져 결국 들것에 실려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으면 들어와 실신을 했을까...


그런데 의아했던 건 황영조선수의 경기를 작은 어촌 마을 민박집 아주머니가 밤새 시청을 할 정도로 좋아할 일인지? 그리고 민박집 손님까지 깨울 정도로?라고 궁금해했었는데(후에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 한 녀석이

그 아줌마가 황영조 선수 엄마가 아닐까? 해서 웃은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황영조 선수는 정말 삼척출신이었다. 삼척의 자랑, 삼척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2년 후인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도 우승했으며 우리나라의 마라톤 황금기를 이끌어가며

세계적 대회에서도 입상하는 등 그는 우리나라 마라톤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기도 했었는데 은퇴를

한 후에는 부동산업으로 전향하여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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