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송년판소리

완창판소리 40주년 기념공연

by James 아저씨

이곳 글들은 문화적 열등감에서 빚어진 내 발걸음에 대한 엉거주춤한 내 감성을 기록한 것들입니다.

마치 황새 쫓아가는 뱁새 다리가 찢어지듯... 그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불나방처럼 달려든 나의 얕디 얕은

감성의 기록이고 또 그 아마추어적 감동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기억은 짧고 감동은 오래이고 싶은... 주로 공연과 전시가 될 것입니다.


2025년 12월 20일 3PM: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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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길목이다. 비가 내리는 주말 오후 국립극장 언덕길을 오르는데 숨이 찼다.

공연시간은 다가오는데 기차시간은 너무 빠듯해서

전철로 갈아타고 내리자마자 거의 뛰다시피 올라갔다.

겨울비를 맞으며...

겨우 달오름 극장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으니 땀인지 비인지 얼굴에 흘러내렸다.

숨도 차고...

그리고 숨이 차서 가슴이 뛰는 건지 설레어서 뛰는 건지

자리에 앉자 가슴도 뛰었다.

실로 얼마 만에 보는 판소리 공연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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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옛날 프로그램북과 티켓/ 우) 이번 공연 프로그램북

1984년 첫 선을 보인 <완창판소리>는 40년간 이어오다 드디어 만 40주년이 되었다. 사실 그간 판소리는 완창공연이라는 장르(?)는 없었다. 판소리 중 일부 대목을 부르는 것, 주최 측에서 요청하는 대목을 부르는 것으로 소위 명창이라 하는 분들도 판소리를 전부 다 불러 내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40년 전에 지금은 돌아가신 박동진 명창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부르는 '완창판소리'라는 공연을 처음 했고 그리하여 사그라들어가는

우리 전통 공연인 판소리는 다시 주목을 받게 되고 우리에게 전해오는 현존 판소리 5마당을 전부 완창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공연은 그간 102명의 창자가 무대에 올랐고 이는 살아있는 판소리 아카이브가 되었고 더욱 가치 있는 판소리 연구, 전수의 기틀이 됨과 동시에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박동진 명창에 의해 처음 완창된 공연은 장장 5시간 30분에 이르는 '흥보가'가였다. 이때 의의는 현대공연사에서 '완창판소리'라는 개념을 실제 무대에서 처음 성립 시킨 사례이고 이후 '완창'이 하나의 공연 형식. 미학. 기준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그전까지는 명창이다 하더라도 어떤 하이라이트 대목만 부르고 가장

유명한 부분만 불렀던 시절에서 판소리가 하나의 이야기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우르는 서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게 최소 5시간에서 심지어 8시간까지 걸리는 공연이 되자 명창이면 이런 정도는 해야 되지 않나?라는 변화에 명창들이 다시 공부, 수련을 하며 현존하는 판소리 5마당을 다 부르는 수준에 이르러 이것을 완창이라 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실로 대단한 변화였다. 그러므로 박동진 명창의 완창판소리는 우리 판소리의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을 찾아낸 것이었고 그 덕에 잊힐 뻔했던 대목들(인기 없던 부분, 하이라이트가 아닌 부분들)까지 다 알려지고 불려져 아카이브 효과에 엄청 질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완창 판소리 공연은 경험한 적이 없다. 이 완창 판소리 공연을 두 번 국립극장 무대공연을 예매를 했다가 한 번은 일이 생겨 못 가고 또 한 번은 그 긴 시간을 잘 참아 낼 수 있을까 하여 취소를 하기도 했었으니까... 아무튼 그동안은 일부 대목만, 또는 여러 소리꾼들이 나와 서로 한 대목씩 부르는 공연만을 봐 왔다. 물론 이번 국립극장에서의 공연도 그 40주년을 기념하는 송년 판소리 공연으로 특정 판소리의 완창이 아니라 현존 판소리 5마당을 부분 부분으로 유명 대목을 다 들어 보는 자리인 것이다.


또한 이번 공연은 4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는 것뿐 아니라 판소리 전승과 확장을 디지털 기술로 접목하여 새로운 보존 방식을 제시하는 자리였는데 고인이 되신 과거 명창들을 '홀로그램'으로 복원하여 그분들이 무대에서 짧은 대목을 하나씩 하셨고 총 열 세분인가가 '홀로그램'으로 복원되어 무대에 나오셨다. 감동이었다. 또한 역대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신 분들 또한 홀로그램 기술로 구현해 무대에 총출연을 하였다. 이러한

역대 출연자들의 기록영상을 무대에서 상영하며 실제 공연과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명창들의 감동적인 계승적 전승 체험을 간접으로 하게 했다. 과거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연결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번 공연은 완창 무대가 아니라 그간 현존하는 판소리 5마당의 일부씩 한 무대에서 들어 보는 자리로


순서는

'수궁가'중 '토끼 배가르는 데~ 세상에 나오는데' 대목을 김영자 명창과 조용안 고수가

'춘향가'중 '오리정 이별' 대목은 조소녀 명창과 조용안 고수가

'적벽가'중 '적벽강 불 지르는데 ~장승타령' 대목은 성준숙 명창과 조용안 고수가

'심청가'중 '추월만정~ 황성 올라가는데' 대목은 유영애 명창과 이태백 고수가

'흥부가'중 '제비 강남 가는데~ 박 타는' 대목은 정순임 명창과 이태백 고수가

'적벽가'중 '동남풍 비는데~자룡 활 쏘는데' 대목은 김일구 명창과 이태백 고수가 나왔다.


합계 3시간 30분의 대 공연이었다. 물론 판소리 한 곡의 완창공연의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판소리 12마당 중 신재효 선생이 정리하여 전승되는 현존 판소리 5마당을 한 자리에서 다 들었다. 소리하시는 소리꾼에 따라 맛이 다르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각 판소리 마당의 내용상으로도 그 느낌이 다 달랐다. 하이라이트 대목이라 알려진 대목에선 어깨가 절로 움칫 움칫했고 소리꾼에 따라 즉흥성이 가미되어 청중들에게 호응을 유도해 내고 애드리브가 적절히 가미되어 청자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예로부터 소리공연에는 '1 고수, 2 명창, 3 귀명창'이라는 소리가 있는데 판소리는 결국 뛰어난 고수가 있어야 하고 그다음 그야말로 명창이 있고 세 번째로 우수한 청중들이 있어야 그 무대가 완성된다는 것이데 이번 공연은 그 3박자가 고루 갖춘 무대가 아닐까 한다. 판소리 공연에서 열창을 하는 명창에게 무엇보다 관객의

참여=추임새가 중요한데 사실 이런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어느 부분에서 추임새를 넣어야 할지 잘 몰라 매번 기회를 놓치곤 하는데 물론, 어색해서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제일 주요한 이유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청중들은 그야말로 귀명창임에 틀림이 없는 게 명창의 부채손짓에, 어깻짓에 또는 소리 한 대목마다

"허잇~", "얼쑤~" , "그렇지~~" , "좋다~~", "잘한다~~", "헛~", "흡~" 등 다양한 추임새들이 끝없이 나왔다.

오죽하면 명창들이 중간에 애드리브로 이렇게 잘 치고 나와주니 너무 신이 난다고... 하기도 하고 아무튼 명창들은 자기가 맡은 대목에서 30분 정도 씩 열창을 해주었고 관객은 그때마다 신나게 추임새를 넣어줌으로 흥을 배가 시켰다. 6명이 30분씩이니 180분에 사회자가 대목마다 나와 소개 및 중간 정리를 하고 홀로그램 공연까지 장장 3시간 30분의 공연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흘렀다.


감동적인 것은 명창 조소녀 선생은 고령으로 걸음걸이도 여의치 않아 부축을 받고 나와 양해를 구한 다음 방석을 깔고 앉아서 소리를 하셨는데... 역시 고령이라 그런지 '중모리' 부분이나 '아니리'에선 소리가 잘 전달되었으나 '자진모리' 부분이나 빠른 고역대에선 숨이 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고령임에도 발성이나 소리의 정확도(서양식으로 하자면 딕션)에서는 아직도 정정한 느낌이 들어 평생 소리만 하신 분들... 역시 대단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수십 년을 소리만 해오신 분들인데도 중간에 가사를 까먹으니 애드리브로 무대뒤의 보조들에게 묻기도 하고 고수에게 잡담형식으로 묻기도 하며 자신의 가사를 까먹은걸 실토를 하기도 했다. 사실 판소리는 연극대본을 혼자 통째로 외워 출연자 모두의 역할을 혼자 하는 것인데 이걸 통째로 다 외워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해설자 역 또는 지문은 '아니리'로... 출연 1,2,3의 소리는 목소리도 각각 다르게 하고 또 '중중모리', '중모리'등 속도와 강약, 그리고 '발림(몸짓)'등으로 표현하며 1인 멀티 극을 풀어 나가는 것이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수십 년 그걸 업으로 삼으신 분들이니 어련하겠냐 마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데 여든이 넘은 분들이 아직도 그렇게 무대 위에서 혼을 살라내며 하시는 걸 보니 영광이었다.

이 판소리가 맥이 끊기지 않도록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도 하고 보존에 힘을 쓰고 있지만 이 예술이란 장르가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삶 속에서 유지가 되고 전승이 될까... 걱정이기도 했다.


한 해가 저무는 마당에 감동적인 판소리 공연으로 현존하는 5개 판소리를 한자리에서 한 대목씩 다 듣는 영광을 누린 시간이었다.

https://youtu.be/8Kt7YdXsWzg?t=4

그간 완창공연에 제일 많이 출연하신 안숙선 명창(32회 출연)

이번 공연의 예술감독은 유은선

연출도 유은선

작가는 남화정이었으며

각 부분별 사회는 김성녀, 최동현, 유은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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