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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볕 Mar 17. 2020

잃어버리다란 말의 다른 의미

언젠가부터 할머니는 요리하는 걸 주저하기 시작했다. 손맛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할머니. 우리 식구고 남의 식구고 간에 챙겨주고 대접하는 걸 워낙 좋아해 누군가를 집에 들였으면 꼭 밥을 먹여 보내야 마음을 놓곤 했다. 당신이 한 음식을 먹은 누군가의 맛있다는 말 한마디는 할머니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그것은 곧 엄마이자 할머니로 오랜 시간을 살아온 그녀의 몇 안 남은 자신감이기도 했다.

 

그랬던 할머니가 요리하는 걸 두려워하다니.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내게 할머니는 자꾸만 변해가는 입맛이 그 이유라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입맛이 변해 간을 잘 못 맞추겠다고. 음식 잘한다는 건 다 옛말이라며, 우리 식구 말고 남에게는 해줄 자신이 없다고 했다. “에이, 엄살은. 똑같이 맛만 있구먼.” 기운 빠진 할머니의 모습이 싫어 푸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생각해보니 아예 엄살만은 아니다. 물론 할머니 밥을 먹으며 자란 나는 그녀의 손맛에 길들어 여전히 할머니 밥이 맛있다. 할머니가 차린 밥상은 내겐 습관이자 향수니까. 그런데 옛날과 비교해보면 종종 국의 간이 맞지 않거나 할머니가 즐겨하던 반찬의 맛이 이전과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할머니가 잃어버리고 있는 건 미각만이 아니었다. 기억력도 예전만큼 못하다. 불과 몇 달 전인 작년과 비교해 봐도 확실히 그렇다. 체력도 약해진 듯했다. 항상 활기차던 할머니는 집에만 있는 걸 싫어하셨다.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잘 지치지 않았다. 어떨 땐 나보다 기운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인근 시장이나 동네 병원만 다녀와도 쉽게 피곤해하신다. 엄마가 다달이 홍삼을 보내드리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곱슬곱슬 풍성하게 얹어진 머리가 할머니의 트레이드마크였는데. 할머니는 흰머리가 정말 없는 편이라 까만 머리에 꼬불꼬불 파마를 하고 나면 가발 같은 모양새가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해가 지날수록 머리카락은 줄어들고 있다.


지금이야 이 정도지만, 할머니는 또 무언가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다. 무엇이든 빠져나갈 것 같을 땐 꽉 붙들고 놓지 말라고 떼를 쓰고 싶다. 그래서 이것저것 잔소리를 늘어놓다가도 가끔 ‘내 욕심인가’ 한다.


할머니의 손아귀에서 떠나가는 것들은 그녀가 아등바등 움켜쥐고 살아온 고난의 세월이다. 그 힘든 시대에 누군들 그렇지 않았냐 마는 우리 할머니 역시 많이 고생하셨다. 그러니 몇십 년간 지겹게 한 요리 좀 안 해도, 가끔 사소한 일 기억 좀 못해도 되는데. 그까짓 파마 안 하면 그만인데. 나는 이제야 좀 편하게 가벼워지려는 할머니를 두고 내 생각만 한 건 아닌지. 마음이 무겁다.

    

절대 잃어버리지 말란 고집 대신 나는 이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려 한다. 뭔가 잃어버린다 해도, 설령 그걸 되찾을 길이 없다 해도 괜찮다고.


우리 인생은 항아리 같은 게 아닐까. 차오르면 넘치기 전에 비워내고, 그렇게 비우면 다시 무언가로 채워지는 것. 그게 삶에 있어 어떤 순리이자 법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할머니의 항아리는 철철 넘치는데도 비워질 줄을 몰랐으니 지금은 좀 덜어내도 될 때다. 나는 그저 잃어버리는 데 익숙지 않아 헛헛해진 그녀의 마음을 구석구석 잘 어루만져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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