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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볕 Jul 23. 2020

우리의 새벽


새벽을 좋아한다.

다음날 이불 차고 싶게 만든다고 원망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많아지는 그때를

종종 일부러 기다리곤 했다.

매일 하늘의 색이 조금씩 다르듯

실은 새벽의 색깔도 제각각이다.

생각해보면 어떤 새벽을 보냈느냐는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에 달린 것 같기도 하다.

     

지난 몇 달간은 서늘한 새벽을 마주했다.

들키고 싶지 않던

조급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야 고개를 들었다.

나는 오롯이 그것과 대면해야 했다.

긴 새벽이었다.

스무 살 무렵,

친구들과 서로의 어깨에 기대 첫차를 기다리던 땐 참 짧게 느껴졌는데.

흘러간 시간만큼 길이도 길어진 걸까.

 

생각에 생각이 뒤엉키고 꼬리를 무는 짙은 밤.

밤도 아침도 아닌 그 어중간한 때.

꼭 지금의 나 같아서, 잠이 오지 않았다.

유일한 위로가 있다면

아주 늦은 새벽 혹은 아주 이른 아침

할머니와 나누는 전화 한 통이었다.

     

올해 몸집이 더 줄어든 할머니는

세상이 잠든 때 홀로 작은 몸을 일으켜

파스가 덕지덕지 붙은 무릎을 꿇고

본인이 아닌, 손녀인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

내 인생을 나만큼이나 고민해주는,

내 몫의 짐을 언제나 같이 짊어지려는 그녀.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손녀는

시계를 보다 기도가 끝날 무렵 전화를 건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혈압약 챙겨 드시란 말.

별 내용 없는 몇 마디를 주고받다 보면

뻣뻣하던 마음이 말랑해진다.

할머니는 수화기 너머로 힘껏 날 안아준다.

    

서늘한 새벽이 서럽진 않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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