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까마귀

[무지개 까마귀] 나오미 호워스, 밝은미래

by 제이미

내 스스로의 모습이 초라하고 아무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멋진 오색 빛깔을 잃은 새카맣게 타버린 까마귀같이 허탈함과 슬픔의 감정이 온몸을 휩쓸었다. 자존감이 바닥이었고, 다시 어떻게 그 빛깔을 찾을지 방법을 잃은 채 마음의 방황이 길어질 때쯤이었다. 슬픈 검은 까마귀에게 위로를 전하는 태양의 말에 까마귀는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아름답게 여기기 시작한다. 나는 그러기엔 까마귀보다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느림보 사람이다. 하지만 내 안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알록달록 빛깔의 깃털을 가진 무지개 까마귀의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한다. 일러스트가 너무 아름다워서 순간 까마귀가 까맣다는 것을 까맣게 잊을 정도였다. 나 또한 옛날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정말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끝도 없이 나의 찬란한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야 없었겠느냐마는, 나처럼 자기애가 없던 사람마저 되돌아 생각해 보면 나의 인생은 꽤나 반짝거렸다. 조용하지만 발표를 좋아했고, 말이 조금 늦었지만 글은 빨리 뗐으며, 무엇이든 꼼꼼히 해내는 팔방미인이었다. 나서지 않지만 돋보이고,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이뻐해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당연히 학습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다른 예체능도 부모님의 현명한 서포트로 다양하고 적절하게 나라는 사람을 채워갔다. 항상 학교에서도, 그리고 회사까지 뭐하나 부족함 없이 남들 부러움 받는 스펙들을 다 채워나갔다. 이제는 결혼을 했기에, 아이를 낳아서 키웠기에 나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그래서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는 마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언제부터 까만 까마귀가 되었을까.


숲속에 혹한이 찾아와서 태양에게 불을 쬐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어느 날, 동물들은 모두 모여 회의를 한다. 태양에 가고 싶은 마음이야 모든 동물이 간절했지만, 진짜 갈수 있는 것은 무지개 까마귀뿐이엇다. 상냥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빛깔을 뽐낼 뿐만 아니라, 날갯짓으로 저 먼 태양까지 갈수 있는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열심히 날아올라 태양에게 예의 바르게 온기를 부탁해서 받아온 까마귀는 오는 동안 물고 온 불씨 때문에 몸도 목소리도 바뀌게 된다. 숲은 다시 온기를 되찾았지만, 까마귀는 까맣게 변해버린 자신의 털과 목소리가 속상하고 아무도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을 거라며 절망한다. 모두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까매져버리고 목소리가 갈라져버린 까마귀는 우울해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까무잡잡한 내가 너무 싫은데, 까마귀가 하루아침에 저리 시컴 해졌다니, 너무 속상하고 불쌍했다. 꼭 그것만은 아닐 테지만, 이 부분을 읽을 때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잠기게 되었다. 아이도 눈치챘는지, 까마귀가 불쌍하다고 말을 덧붙였다.


“너는 너의 몸을 돌보지 않고 친구들을 구했어.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다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단다. 친구들 마음을 정말 모르겠니? 네가 전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할 거야!” 태양은 그런 까마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변해버린 나의 모습이란 비록 겉모습만을 말하는 건 아닐거다.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며 바뀐 나의 모습과 성격들을 문득 느끼는 날엔 왜 이리도 초라한지. 나를 전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껴주지 않을 냉정한 사람 현실에 살고 있는 나는 까마귀처럼 다시금 까맣게 타버린 나의 날개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까마귀에게 은은한 보랏빛과 환한 푸른빛이 감도는, 기품 있는 검정 털은 태양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어느새 스스로가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어있다고 느껴지고, 나의 열정들이 보잘것없어지고, 그래서 무엇이든 더 돋보이게 해 보이려고 애썼던 게 허탈할 때가 종종 있지만, 나에게도 어느새 또 다른 여러 빛들을 품은 검정 털이 있었다. 태양이 선물한 그 보물은 나의 마음에 조금 여유 공간이 생기고 내 마음속에 감사함이 슬픔의 자리를 조금 차지하기 시작하니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검정 까마귀인 것이 조금은 억울하고 아쉽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찬란한 시절이 아깝다. 온전히 여러 빛들을 소중히 대하고 인정하고 품기엔 아직 마음은 어린가 보다. 천천히 나 스스로에게 위로와 응원과 인정을 하다 보면 나도 그리고 나의 주변도 나의 여러 빛깔 검정 털을 아름다워해줄까. 나는 오늘도 경주마처럼 달리지만, 내 까만 털에 어떤 빛깔이 덧대졌나 세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머물러 본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나여야 하니까 말이다. 까맣기 싫은 까마귀는 오늘도 반성보다는 포옹이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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