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고민

[두더지의 고민] 김상근, 사계절

by 제이미

나는 고민이 생기면 정말 열심히 생각해 보다가 잠을 자버린다. 머리가 복잡할 텐데 어떻게 꿀잠을 자는지 우리 엄마는 아직도 신기해한다. 아마도 그저 잠을 자버리는 이유는 고민을 더 깊이 내 안에 담아두려고 일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답은 있고 해결은 나게 되어있으니까 하는 생각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어떻게 고민을 터놓을지 모르는, 그래서 진짜 내 친구가 많이 없던 서툰 외톨이었다.


[두더지의 고민] 김상근,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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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친구가 없을까” 고민하는 두더지는 할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얘야, 고민이 있을 때는 말이지, 고민을 말하면서 눈덩이를 굴려 보렴. 그러면 고민이 다 사라질 거야” 주먹만 한 눈덩이가 굴릴수록 더욱 커지게 되면서, 두더지는 누구보다 친한 친구들을 하나둘씩 만나게 된다. 이 책을 읽어줄 땐 나의 아이가 여섯 살이 안되었을 때라서, “할머니 말씀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그치?”, “두더지가 친구들을 만나게 되니 너무 좋다.” 이런 이야기들만 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책장을 정리하다가 다시금 생각나서 펼쳐 본 이 책. 나는 다른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두더지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건, 아마도 솔직하게 고민을 이야기하고, 이야기하다 보니 진짜 친구들을 만나 것이었구나.


어려서부터 나는 항상 불투명한 유리 같은 아이였다. 우리 엄마는 내 속을 알 수 없어서 내가 아직도 어렵다고 말을 하신다. 내 동생은 또 나와는 반대로 세상 맑은 크리스털 같은 아이라서 정말 끊임없이 모든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했다. 그게 즐겁고 칭찬받는 일이든, 혼나고 슬픈 일이든 말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엄마가 나를 동생과 비교하거나, 나를 향해 투명도에 대한 요구 섞인 비판을 하실 땐 나는 항상 불편했다. 나는 친구들에게도 뭔가 보이지 않게 선을 그어놓고 딱 어느 정도까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다. 나는 왜 그럴까. 왜 그랬을까. 일부러 숨기고 싶은 게 아님에도 다 오픈하지 않는 무언가가 더 뒤에 남아있을 거 같은 그런 사람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나는 나의 고민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어떻게 표현하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그 부분이 참으로 서툰 사람 이었는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 더더욱 못하며 자라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나란 사람은 투정을 하면, 듣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해지는게 싫다. 나때문에 누군가에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게 싫거나 공감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민이나 나의 약점, 감정을 솔직히 터놓으면 누구든 나를 싫어할 것 같다. 나는 반대로 나의 친구들의 고민이나 슬픔을 함께하는 것은 좋다. 이러니, 나도 내가 잘 모르겠는 어려운 사람이긴 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것은 아님에도, 누가 나를 싫어하고 무시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싫다. 이러다 보니 나는 주변에 친구들은 꽤나 있지만, 나의 저 밑바닥까지 보여준 진짜 친구가 없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나에게 가장 큰 콤플렉스로 자리 잡혔다. 힘들 때 부를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힘들 땐 동굴에 들어가 버리거나 잠을 자버리게 된 것 같다.


임신을 하고 나는 태어나서 제일 외롭지 않은 열 달을 지냈다. 나는 어떤 말이든 할 수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이든 무조건 내 안에서 맞장구쳐주는 아이가 있었다. 정말 이게 엄마가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이의 존재 만으로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났고, 든든했다. 배를 쓰담으며 육성으로 한 나의 수많은 솔직한 이야기들은 두더지의 고민 털어놓기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알게 모르게 그때 무엇이든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기를 배운듯하다. 마침 알게 된 새로운 육아 동지이자 친구를 통해, 어떤 이야기든 털어놓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고, 오히려 서로를 더 단단하게 하는 주춧돌이라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픔과 슬픔을 공감해 주고 함께 고민을 해주는 그 모습 때문에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보여주어도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진짜 친구가 생겼다. 그러고 나니, 친구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더욱 진실해졌고, 그 때문에 더 깊어지는 친구들이 하나둘 생겼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는 그 솔직함의 시작이 늘 어려웠는데, 우리 아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무엇인가를 남들과 잘 공유하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님에도, 어떤 감정이든 고민이든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으로 크길 바란다. 나처럼 너무 서투르고 상처받은 그런 감정 외톨이가 되지 않게 말이다. “너는 왜 고민을 터놓지 않아? 속을 알 수가 없어.” 가 아니라 터놓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겠다. 아니면 적어도 나부터 나의 진솔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겠다 생각한다. 솔직하다는 것은 정말이지 용기가 수반되는 멋진 행동이라는 것을 우리 아이가 꼭 깨달으며 크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터놓으면 터놓을수록 마음이 더 따뜻해지고 든든해지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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