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편지

[다람쥐가 보낸 편지] 고수산나, 헤르만헤세

by 제이미

손글씨와 마음이 담긴 손 편지는 여전히 값비싸고 무엇보다 묵직한 진심이 들어있어서 좋다. 짧은 몇 줄짜리 일지라도 그것을 적기 위한 생각과 준비와 시간이 귀하다. 편지는 두더지 아저씨의 어두컴컴한 마음엔 꽃향기로 물들이고, 지친 나의 마음엔 미소로 채워준다. 다람쥐의 꽃 편지처럼 나도 나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동과 용기가 될 수 있는 편지를 써야겠다.


[다람쥐가 보낸 편지] 고수산나, 헤르만헤세


알밤을 찾아 헤매는 다람쥐가 눈이 보이지 않는 두더지 아저씨를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더지 아저씨는 우연찮게 본인의 집으로 굴러 들어온 알밤이 상하지 않게 따로 보관을 해 놓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어른의 작은 배려심이 고맙게 느껴졌다. 다람쥐는 고마운 마음에 보이지 않고, 그렇기에 나가 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두더지에게 편지를 보낸다. 읽지 못하는 두더지에게 보낸 다람쥐의 편지는 꽃 편지였다. 꽃잎들이 들어있어서 편지를 열면 향기로 꽃들도 다시금 마음속에서 그려볼 수 있었다. 두더지는 다람쥐의 마음이 고맙고 매번 다른 종류의 꽃을 보내주는 수고에 미안하면서도 편지를 기다렸다. 다람쥐의 아저씨를 위한 마음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편지의 힘. 짧은 한 마디만 적혀있어도 삐뚤빼뚤 상형문자 같은 수준의 글자라도 나를 위한 그 편지엔 엄청난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기에, 꽃잎을 따며 봉투에 넣어 보냈을 그 다람쥐의 마음이 너무나 소중했다.


다람쥐가 꼭 나의 아이 같았다. 나의 아이는 제법 이른 나이에 본인의 이름보다 더 빨리 ‘엄마 사랑해요’를 그림 그리듯 외워서 쓰기 시작했다. 글자 적는 순서도 틀리고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었지만, 난 그 러브레터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메모장 한구석에 적어주던, 색종이에 적어주던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작은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아이는 본인이 어떤 글자든 쓸 줄 안다는 것, 그리고 멋지다며 칭찬을 받는 것에 뿌듯함을 느껴 시도 때도 없이 써주는 편지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은 나더러 왜 오늘은 편지를 보고 감동받지 않냐는 거다. 이 녀석은 그 짧은 편지를 보고 내가 웃는 모습이 좋아서 그렇게나 열심히 써주었나 보다 싶었다.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건 이 녀석이 나를 닮은 것 같다. 내 마음을 전하려고 편지를 쓰는 것도 있지만, 상대가 내 편지로 감동받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큰 것도 판박이 인가보다. 두더지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내던 다람쥐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겠지. 편지를 열고 꽃향기를 맡으며 살포시 미소 지을 두더지 아저씨의 모습에 그리도 열심히 마음 담아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었을까.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봄이 오고 두더지는 다람쥐의 편지를 기다린다. 한참 소식이 없자 조금 실망한 두더지는 우체부로부터 늦은 겨울 다람쥐 가족이 하늘나라에 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기다림이 슬픔으로 돌아온 순간 두더지 집에 작은 꽃잎이 바람을 타고 들어오고, 두더지는 한 걸음씩 용기 내어 문밖으로 나가본다. 벚꽃이 휘날리며 풍겨오는 꽃내음은 마치 다람쥐가 보내주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아 세상이 온통 캄캄한 사람이 문을 열고 한발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 것. 그것은 아마도 작지만 위대한 다람쥐의 마음 때문 아니었을까. 꽃잎이 들어있던 편지가 두더지에게 엄청난 위로와 감동이었다.


육퇴를 하고 어김없이 반성의 시간이 찾아올 때, 문득 식탁 위에 놓인 작은 쪽지의 아이 편지가 나에게 주는 감정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엄마, 사랑해요’에서 ‘고마워요.’로 업그레이드 된 날, ‘미안해요’가 된 날, 이 작지만 큰마음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어떤 날엔 더 큰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이래서 부모가 되어 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또 있다고 하나보다. 요즘 받은 편지 중에 울음이 터져버린 것은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요. 엄마가 아프면 싫어요.’이다. 모든 위로와 감동은 요 녀석이 다 해주려고 작정했나 보다 싶다. 문득 나는 나의 부모님께 그런 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용기도 나게 해주고, 힘도 나게 해주는 그런 존재였을까. 또 나의 사람 누군가에게 나는 다람쥐 같은 존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마을을 쓰는 그런 배려 말고, 진심 어린 마음이 누군가에겐 어려운 첫 발을 디딜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은 편지 하나인데, 그 작은 마음 전하기가 어려워진 요즘이 아쉽다. 손쉬운 연락 매개체가 아닌 간직할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아직도 더 애틋한 건 내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일까. 편지를 쓰고 전달한다는 것이 막상 어색하고 조금 멋쩍은 면이 없지 않지만 내 안에 채워지는 마음이 또 누군가에게 흐르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기에 작지만 이쁜 편지지를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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