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선생님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 강경수, 시공주니어

by 제이미

어떤 동물의 말이든 경청해 주는 고민 해결사 펭귄 선생님. 며칠 밤을 고민하던 동물들이 와서 자신들만의 고민을 재잘댄다. 상담실에서 나온 동물들은 저마다 고민이 해결되었다며 펭귄 선생님이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모든 고민들을 묵묵히 들어주는 펭귄 선생님은 오후 여섯시 칼같이 퇴근을 한다. 뽁뽁 양쪽 귀에서 귀마개를 빼며, 오늘 하루도 정말 보람 있었다는 우리의 펭귄 선생님. 엄청난 반전의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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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고민은 귀엽고 우스꽝스러웠다. 겨울이 오면 잠이 계속 쏟아진다는 개구리, 이빨이 너무 많아 고민인 악어, 기분에 따라 얼굴색이 바뀌어서 사회생활이 불편하다는 카멜레온까지. 상담소를 찾은 동물들의 고민은 사실 해결할 수 없는 그냥 걱정들이었다. 한바탕 신나게 고민을 털어놓는 부분을 읽으면서 아이와 한참을 깔깔거렸다. 당연한 듯 안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 했던 부분들이 그들에겐 그런 고민이었다니.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공감과 이런 것을 동화로 풀어내는 작가님이 내심 신기했다. 동물들은 아무런 지적 없이 잣대 없이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고민은 가벼워진다.


마지막 펭귄 선생님의 퇴근 시간 모습은 꽤나 반전미 넘쳤다. 상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지쳐 보이던 펭귄 선생님은 귀에서 이어 플러그를 빼며 오늘 하루도 보람 있었다고 말하는데, 진짜 웃음이 빵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쩔 땐 귀마개를 끼고 싶을 정도로 끝도 없는 수다쟁이 꼬맹이와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 부분이 너무 웃기면서도 펭귄 선생님의 생존 전략(?)이 멋져 보였다. 한바탕 신나게 웃는 나와는 다르게 아이는 왜 내가 웃는지 몰라 하며 나를 쳐다보아서 나름 설명해 줬더니, 펭귄 선생님한테 실망을 했다.


“그럼 펭귄 선생님은 안 들은 거야? 들어야 해결을 해주지! 친구들은 펭귄 선생님이 듣는 줄 알고 열심히 말했을 텐데…” 모든 고민은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것보다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더 소중하단 얘기를 이해시키기엔 아직 어린 나의 꼬맹이는 펭귄 선생님이 밉다고 했다. 동물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고민들은 대체로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해결하지 못하는 많은 고민은 들어주는 존재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경험도 많다. 말을 하다 보면 결국 나의 생각과 마음을 내가 정돈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흔한 육아 고민이든 연애 고민이든 결국 답은 그 어디에도 없이 스스로에게 찾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사람 사이의 고민이든 사회적인 일로서의 고민이든 어떤 고민이든 그 사람한테 머무르고 되뇌게 되면 마음과 머리가 묵직해지는데, 그걸 나의 언어로 풀어나가다 보면 나도 모를 다짐이든 깨달음은 있게 마련이었고, 어느새 조금은 가벼워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한편 과잉 공감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나는 펭귄 선생님의 귀마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고민은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오래 안고 있는 사람이 아닌 나는, 특이하게도 다른 사람의 고민은 세상 진지한 다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엄청난 감정 이입 끝엔 당사자보다 심한 가슴 앓이와 참견을 하는 나쁜 버릇이 나온다. 당연 좋은 일에 관한 고민은 누구보다 신나서 나서지만, 좋은 고민보다는 슬프고 화나는 고민이 대부분이기에 나의 리스닝 스킬은 정말 별로라고 스스로 느낀다. 함부로 남의 고민을 판단하는 것, 다른 사람의 고민에 나의 필터링을 적용하고 들어주는 것. 고치고 싶은 이런 행동들은 점점 아이를 키우며 선뜻 다른 사람의 고민과 인생에 내가 끼어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강도는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고민 리스너로썬 빵점인듯하다. 펭귄 선생님은 그저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상담 동물들과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고 집중해서 경청해 주는 태도가 필요했기에 귀마개를 끼고 있었나 싶다. 온전히 그곳에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동물들에게 위안과 사이다 같은 고민 해소들이 있었기 떄문이다.


“엄마. 엄마는 어떤 고민이 있어요? 내가 다 들어줄게.”라고 말해주는, 아직은 들어주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더 좋은 나의 꼬맹이와 함께 들어주는 것, 들어주는 태도, 그리고 나름의 거리에 대해 한 번은 더 생각해 보게 된 유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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