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의자] 고우야마 요시코, 북뱅크
이 책은 읽어 주는 내내 참 따뜻했다. 작가 특유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좋았고, 내용은 간단하지만 마음이 꽉 차 있는 이야기였다. 토끼는 귀여운 나무 의자를 만든다. 누구나 잠시 쉬어 갈 수 있게 의자를 나무 그늘 밑에 살포시 두고, 옆에는 조그맣게 ‘누구나’라는 팻말을 만들어 둔다. ‘아무나’ 의자를 보고 당나귀는 친절한 의자라는 생각을 하며 도토리 바구니를 살포시 의자 위에 올려놓은 뒤,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잔다. 그 후로 곰이 왔는데, ‘아무나’라는 표지판 옆 의자에 도토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곰은 아무나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실컷 도토리를 먹은 뒤, 빈 바구니만 놔두자니 다른 동물에게 미안하단 생각에 꿀이 든 병을 의자에 놓아두었다. 그렇게 여러 동물들이 지나며 ‘아무나’ 의자에 놓인 달콤한 간식을 먹고 다른 간식을 놓아두는 이야기가 몇 장이나 계속된다. 마지막으로 다람쥐들이 놓아두고 간 ‘아무나’ 의자엔 알밤이 가득하고,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난 당나귀는 도토리가 알밤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어어어? 도토리가 알밤이 됐네. 아하! 도토리가 알밤의 아기였구나!”
아이와 나는 동물 친구들의 ‘아무나’ 간식 냠냠과 또 다른 간식 담아두기가 너무 귀여워서 미소를 머금으며 읽어가던 책이었는데, 마지막 당나귀의 엉뚱함에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책을 읽고 나니, 한참 더웠던 지난여름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던 메모와 친절한 음료수가 생각이 났다. ’택배 기사님들, 너무 더운데 힘드시죠. 이 음료수 드시고 힘내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아이스박스에 에너지 음료와 얼린 생수 물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무더웠던 우리 엘리베이터는 참으로 따뜻하고 사랑이 넘쳤다. ‘아무나’ 벤치가 있다는 것과 천사 같은 목수 토끼가 나와 같은 주민이라는 사실이 너무 감동이었다.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용기를 익명의 주민에게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토끼의 메모 아래쪽에 ‘감사합니다’라는 답글이 작게 손글씨로 적혀 있는 것 또한 우리 아이에게 그리고 많은 어른들에게 큰 교훈이었다.
한번 먹은 이유식은 그날 두번은 먹지 않는 까다로운 입맛의 아이 때문에 나는 하루 두 번 이상 새로운 재료로 이유식을 만들어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냉동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것은 귀신같이 알아서 먹이면 도리도리 해대는 아이 덕분에 정말이지 재료사랴 손질하랴 못하는 칼질로 다지랴 (그 와중에 양 조절 실패는 번번이 내 입으로 들어가야 했다.) 한동안 스트레스와 혼돈의 시절에 있었던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나의 육아 동지의 손에 들려있던 새로운 조합의 갓 만든 이유식들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녀들 덕분에 나는 우리 아이에게 매번 새로운 이유식을 먹이며 서로의 일손을 덜어주던 시절이 문득 생각이 난다. 육수며 큐브 모양의 재료들이며 완성품들이며. 나에겐 함께 주고받고 나눈 이유식들이 ‘슈퍼 아무나 토끼 의자’였다. 그리고 다양한 재료들과 정성들과 사랑으로 나의 쪼매난 상전님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튼튼이로 잘 자라주었다.
코로나 시대에 (이제는 보기 힘들지도 모르는) 그 여름 배려의 며칠과 이유식 나눔이 문득 떠오른 건, 점점 친절이 어색해지고 배려가 부담으로 느껴지는, 신경 써야 할 것이 꽤나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을 살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냥 맨손으로 턱 캔디 하나를 건네시는 할머니도, 인사 잘하는 꼬맹이가 너무 귀여워서 안아주고 싶은 경비 아저씨도, 한 번씩은 멈칫하게 되거나, 먼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시는 요즘이 아쉽다. 맛있는 반찬이나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접시에 담아 나누는 기억이 이젠 추억으로만 남게 되는 게 슬프다. 다시 마음이 이렇게 저렇게 흘러서 도토리가 알밤이 되듯, 지나가는 동물들이 저마다 나름의 ‘아무나’ 선물에 감동하고 또 대갚음하는 그 모습처럼 사랑이 많이 흐르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색내거나 되받기 위해 하는 선의가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꽉 찬 배려와 마음이 넘치는 세상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개인의 방역과 서로의 영역이 더욱 지켜져야 하는 요즘이라 또 다른 좋은 방법으로의 ‘아무나’ 의자를 먼저 제공해 보는 어른이 되어보고 싶다. 나의 도토리가 돌고 돌아 누군가에겐 달콤한 알밤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마스크 뒤로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작은 안부 인사부터 씩씩하게 해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