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시 vs 얼라인먼트, 조직과 나의 정체성에 대한 조직심리학적 해부
김수영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문장에는 언제나 푸른 기운, 자유의 흔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폭포〉의 한 대목이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
하나의 이름이나 틀로 정의될 수 없는,
순간마다 형태를 바꾸며 자기 흐름을 만들어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규정당하지 않겠다.”
“나는 내 리듬으로 살겠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에게 조직이라는 이름의 틀은 어떤 작용을 하는걸까?
“가족같은 회사, 우리는 한가족이다.”
이 말은 따뜻하게 들리지만, 실은 정체성의 융합을 요구하는 명령문이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이를 조직 동일시(Organizational Identification) 라고 부른다.
(Ashforth & Mael, 1989,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조직동일시(Organizational Identification)
개인이 자신을 조직의 일원으로 정의하고, 그 정체성을 조직의 정체성과 융합하는 심리적 상태.
즉, 자신과 회사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조직의 가치나 규범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자신의 선택 척도로 삼는다. 연구에 따르면 조직 동일시 수준이 높을수록 업무 몰입과 충성도는 높아지고, 이직 의도는 낮아진다 (Riketta, 2005,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반면 조직 동일시가 너무 강하면 조직의 오류나 비합리성을 비판하기 힘들어지고, 조직 중심적 사고가 강해서 창의적 다양성이 억제될 위험도 존재한다.
조직 동일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얼라인먼트(Alignment) 를 들 수 있다. 이는 조직과 개인(혹은 구성원들 간) 사이의 방향·비전·가치·목표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의미한다. 정렬된다는 문자의 의미대로 조직의 미션, 문화, 핵심 가치가 개인의 신념체계나 목표와 나란히 놓인 상태로 "우리는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감각이다. 조직심리학에서는 개인–조직 적합성(Person–Organization Fit, P–O Fit) 혹은
가치 일치(Value Congruence) 개념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논쟁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화합’을 중시하는 회사보다 ‘건설적인 토론문화가 활성화된 기업’에서 훨씬 잘 정렬될 것이다.
PO fit이 높을 수록 조직 몰입, 만족도, 성과는 상승하고 이직률은 낮아진다.
두 개념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네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① 동일시↑ / 얼라인↑
동일시가 높으면 얼라인먼트가 높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동일시 높으면 얼라인먼트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② 동일시↑ / 얼라인↓ -> 이런 경우는 별로 없다.
③ 동일시↓ / 얼라인↑
감정적 몰입 낮지만 방향 일치.
④ 동일시↓ / 얼라인↓ --> 이직하십시오
③번이 요즘 세대에게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형태가 아닐까?
조직에 감정적으로 흡수되진 않지만, 일의 방향과 가치에는 정렬되어 있는 상태.
정렬되면 충분히 몰입과 성과가 가능하다.
“가족”대신 “동행자”로 얼라인먼트
요즘 직원들은 말한다.
"가족이라 하지 마이소,가족 같은 회사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 - 김다비의 주라주라 중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여러 직장을 경험해야 하는 시대,
감정적 몰입을 강요하기보다 가치와 방향의 정렬에 초점을 맞춰보자.
얼라인먼트는 의미의 공명이다. 서로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게 현대의 일하는 방식이고, 이 세대의 언어다.
참고문헌
Ashforth, B. E., & Mael, F. (1989). Social identity theory and the organization.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4(1), 20–39.
Riketta, M. (2005). Organizational identification: A meta-analysis.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66(2), 358–384.
Kristof-Brown, A. L., Zimmerman, R. D., & Johnson, E. C. (2023). Person–organization fit revisited. Annual Review of Organizational Psychology and Organizational Behavior, 10, 125–153.
Frontiers in Psychology (2025). Boosting work engagement through leader tolerance via organizational identif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