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화 강점을 키우려면 '이것'을 먹여야 합니다

Maximizer의 비밀 - 강점 사용설명서

by 제이미

최상화는 먹이가 필요하다

주도적으로 살고 싶지만 반응이 먼저인 나의 사용설명서


설 전날, 12시간 넘게 논문 작업을 했다. 잠이 쉬 들지 않았다.

그래도 5시 20분에 일어났다. 왜냐하면, 새벽 카페에서의 고요한 시간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명절이라 그런지 유달리 조용하다. 얼굴을 아는, 서로 아는 체는 하지 않는 한 분이 밤을 보내고 있었다. 나타나지 않으면 슬쩍 궁금해지는, 그 정도 거리의 공간을 공유하는 손님이다.


이 시간에 일하는 바리스타는 느낌이 좋다. 사람에 대한 인상이란, 한 눈에 결정되고 대부분 맞기까지 한다. 누구나 그런 감은 있다. 사장님도 엄청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인데,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다. 잠이 덜 깬 새벽, 끄적여 본다.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최근에 이걸 깨달았을 때, 아! 하고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 걸리고, 그야말로 창작의 고통이 따른다.

목표를 세워도 작심3일로 끝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의지가 약한 게 아니었다. 방법이 나의 Core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게는 처방전이 있다.

어떻게든 결과물을 — 완성본의 형태로 — 먼저 만들어 둔다.

그리고 수십 번 수정한다. 예전에는 퇴고를 싫어해서 이 방법도 별로인가 했는데, 막상 해보니 뭔가가 주어지면 거기에 의견을 더하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예를 들면, AI에게 초고를 부탁하고, 공동저자에게 writing 초고를 맡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최상화(Maximizer)는 최상화시킬 먹이가 필요하다.

빈 도화지 앞에서 최상화는 무력하다.

하지만 무언가가 앞에 놓이는 순간, 작동을 시작한다. 더 좋게, 더 날카롭게, 더 효율적으로.


'지랄 종량의 법칙'이 떠오른다. 이보다 정확한 법칙은 없는 것 같다(고 종종 생각했다).

이것을 '욕구 충족 총량'의 법칙으로 바꿔본다. (총량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연구분야에서 최상화가 만족되니, 사람에 대한 관심이 푹 줄었다.

10년 전에 비해 사람을 만나는 빈도와 시간은 10분의 1로 줄었다.

예전에는 사람을 최상화시키는 방식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워크숍이나 강의, 논문이 주된 대상이다.

사람이 예전처럼 고프지 않다. 이미 충족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물리학으로 풀면 이렇다:

Core(최상화)는 동일하다

맥락만 바뀌었다: 사람 → 콘텐츠

심리적 갭은 여전히 크다: 최상화하지 않으면 허전하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 표현 방식만 바뀔 뿐.


그런데 나에게는 최상화 말고도 강력한 Core가 하나 더 있다.


적응(Adaptability)


적응은 상당히 반응적이다. 갤럽 강점 설명에는 "현재의 파도를 탄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뭐 하고 싶어? 라고 물으면 —

"뭐 그냥. 아무거나. 너 하고 싶은 대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무색무취의 취향으로 보일 수 있다.

딸기를 넣으며 딸기 우유가 되고, 초쿄를 넣으면 초코 우유가 되는, 흰 우유랄까?


한때 이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어딘가에 미치도록 집중하는 사람들이 부럽고, 나또한 그런 무엇이 있기를 집착 강렬히 바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최상화보다 적응이 춤추던 시절이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던 시절, 강렬한 무엇인가가 없었다.


변화를 시작하려면 동기가 중요한데, 동기 부여 공식에서 말하듯 <중요한 무엇>을 찾고 싶었다.

심리학자 Vroom은 나를 움직이는 동기부여 공식을 이렇게 정의했다.

동기 = 기대감 × 실현 가능성 × 중요성(Valence)


중요성(Valence), 중요한 무엇이 있어야 행동을 시작하므로.

여기에 시급성까지 더하면 변화 공식이 된다.


변화 = 중요성(Valence) × 시급성

적응 강점이 춤출 때, "딱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려면 먹이를 줘야 한다.

지금 하고 싶은 게 뭐지? 뭐가 가장 끌리지?


여기서 나만의 방법이 있다.


나는 점을 본다.

사주를 보러 가기도 하고, 별자리 운세를 읽기도 한다.

점괘를 믿는 게 아니다. 그 예언들에 대한 나의 반응을 본다.

"이번 달에 여행수가 있어요." — 그렇군. "비즈니스에서 귀인을 만나게 됩니다." — 정말???


Nice to have와 really really want to have가 구분되는 순간이다.

심리적 갭을 측정하는 나만의 도구인 셈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점괘에 대한 반응의 강도로 알 수 있다. 기대와 중요성을.



점 얘기를 하다 보니, 늘 궁금했던 것이 떠오른다.


전문가들은 자기 전문성을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하고 있을까?

점을 봐주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 텐데, 그럼 제일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강점 전문가는 강점을 가장 잘 아는데, 그럼 가장 잘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글쎄.


세상의 많은 전문가들은 자기 전문 분야에서 —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 실패를 한다.

왜일까?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실망하거나 과도한 기준으로 재단하기는 그만두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게 전문성을 적용하는 것과,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것은 그냥 다른 문제다.

51점이면 긍정적이다. 절반 넘으면 괜찮다.


Valence, 즉 "이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왜? "얼마나 중요해"라는 느낌은 자주 흔들리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친구가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런가? 싶기도 하다.

결국, 내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알려면 실제 기회를 줘야 한다.


머릿속 시뮬레이션으로 가능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질문을 받거나, 실행을 해보거나, 자극과 '된장인지 똥인지 먹어보기'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이게 진짜 중요한 거 아니면 어떡하지?"를 100번 돌리기보다, 그냥 해보라.


모든 일은 언제든지 Ctrl+Z, 취소할 수 있다.

걱정되면 마지막 버전을 항상 보관해 두면 된다.


재밌는 건, 우리는 어려워하는 일에 대해서만 이 끝없는 고민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쉬워 보이거나 경험이 있으면 바로 한다.

나는 논문쓰기처럼 능력이 부족히디 느끼는 분야는 하루 종일 플래닝만 하기도 한다. 하기도 했다.

막상 해보면? 아, 생각보다 100배는 쉬웠네.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최상화에게는 먹이를 줘라.

빈 도화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뭔가를 올려놓아라. 초고든, AI든, 누군가의 도움이든. 그러면 최상화가 알아서 작동한다.


적응에게는 자극을 줘라.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면, 점을 보든, 책을 펴든, 새로운 것을 시도하든. 반응을 관찰하면 진짜 원하는 것이 드러난다.


그리고 Ctrl+Z를 믿어라.
100번 고민하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게 낫다. 모든 것은 취소 가능하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현명하고 유연해질 뿐이다.


지금 6시 50분.

아직도 한참 졸린 것이 틀림없다.

잠이 덜 깬 새벽에 강점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는 대체 뭐하는 인간인가?


조직심리학자 Jamie

사람을 바꾸지 않습니다. 일하는 방식을 디자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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