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행사 PCO(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로 일하던 시절, 많은 사공, 촉박한 일정, 빠듯한 예산, 첫 회 행사라는 부담까지 더해진 프로젝트의 PM을 맡았던 때의 일이다. 행사 종료와 동시에 에너지가 바닥이 된 나는, 무대 구석에 앉아 구두를 벗어 던진 채 철수가 한창인 행사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클라이언트 중 한 분이 옆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정은 씨는 애상이 있어서 참 마음에 들어. 고생 많았어요." 당시에는 그저 한참 어린 내가 기특해서 하는 호의적인 말로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흘러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되면서 '애상(愛想)'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애상은 본래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물에 애착하는 마음'을 뜻한다. 이를 일에 적용해보면, 단순히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넘어선다. 일에 대한 깊은 애착이 있기에 더 잘해내고 싶은 마음, 그래서 끊임없이 애쓰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일'에서의 애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애상은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몫을 사랑하기에 더욱 애쓰는 마음'이다. 맡은 일에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모르는 것이 있다면 배워서라도 해내려는 의지, 책임감 있게 마무리하려는 노력이 이에 속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자신의 성장과 성과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 자체를 사랑하기에 깊이 고민하고 애쓰는 마음'이다. 이는 개인의 성장이나 성과를 넘어, 프로젝트나 조직의 성공을 향한 애정 어린 몰입이다. 예를 들어, 무리한 요구를 하는 클라이언트를 마주했을 때 단순히 불평하는 대신 그 요구의 본질을 이해하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역할이 아닌 일도 자발적으로 맡아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로잡으려 나서는 것도 이러한 애상의 표현이다.
이 두 가지 애상이 모두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두 번째 유형의 애상은 더욱 그렇다. 개인의 성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에 애정을 쏟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인의 성과를 깎아먹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이러한 '비효율'을 감수하면서 이뤄진다. 단순히 일을 더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에 대한 애착과 그로 인한 노력의 깊이가 필요한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싶은지를 판단할 때 이 '애상'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물론 실력도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일을 못하는 것은 분명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성장의 과정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애쓰느냐가 본인의 성장뿐 아니라, 일에서의 관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믿는다.
초년생 시절 내게 건넸던 그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일에 대한 애착과 그로 인한 노력의 가치를 알아봐 준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애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도 이러한 마음가짐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때로는 힘들고 고단한 과정일지라도, 일에 대한 진정한 애상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언젠가 조금 더 내공이 쌓인다면, 나도 누군가의 노력을 잘 알아보고 그에 대한 감사와 인정의 한 마디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건넨 수많은 샌드위치처럼, 누군가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을 수 있는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