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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Jul 06. 2016

그때 그 회사에 관하여

졸업까지 시간이 꽤 있었으니까 아마 대학교 3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취업을 해야 할지 고시를 해야 할지 아니면 남들 다 간다는 워킹홀리데이라도 가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무렵이었다.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 특유의 무기력한 눈으로 학교 취업게시판을 훑어보다가 이름이 특이한 회사가 있어 게시물을 눌러봤다. 그럴싸해 보였다. 원서를 냈더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서울 시내의 레지던스 한 칸을 빌려서 무려 합숙 면접이라는 것을 했는데 그 면접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기이했다. 열 명쯤 되는 지원자들이 하나 같이 '여기가 맞나?'하는 표정을 하고 레지던스에 들어왔다. 아리까리하다는 눈빛으로, 그러나 면접이니까 일단은 웃는 낯으로 서먹하게 자리에 앉았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저녁을 먹고 자기소개도 하고 시시껄렁한 게임도 하고 티셔츠에 그림도 그리고(왜!) 그랬다. 사전에 내준 과제를 한 명씩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남들 해온 것을 보니 내가 쓸데없이 너무 열심히 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생처음 본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둘러앉아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심 있는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늦게까지 깨어 있는 타입이 아니라 제일 먼저 방에 자러 들어갔다. 갈아입을 옷을 가져가지 않아 청바지를 입고 불편하게 잠을 잤다. 바지뿐만 아니라 모든 게 불편했다.


말이 인턴이지 그냥 알바보다 조금 더 받는 비정규직 잡일러였다. 첫 출근 날, 일하는 사람이 그날 면접에 왔던 사장과 직원 딱 둘 뿐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었다. 두 명 있는 회사가 한꺼번에 다섯 명을 뽑다니. 회사라는 게 뭔지 개구리보다 감이 없던 그때에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이직률'이라는 단어를 아직 모르던 시절이었다. 어쩐 일인지 함께 채용된 다른 네 명보다 2주나 일찍 출근하게 된 나는 사장이랑 직원이랑 셋이서 대기업에 컨설팅 업무를 하러 갔다. 답도 없는 회의를 끝도 없이 했다. 컨설팅 대상 기업의 부장도 또 다른 컨설팅 업체의 이사도 기역니은도 모르고 출근한 인턴인 나도 다 함께 쳐 졸고 있는 회의를 개굴개굴 개구리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해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온 결과물은 솔직히 초등학교 상상화 수준이었다.


개굴개굴개구리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개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화를 그리는 그 2주 동안 정시에 퇴근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했다. 회사가 바쁘다 보면 이런 때도 있겠거니 하다가도 사장이 말인지 방구인지를 내뱉으면 결국 빡이 쳐 올랐다. "이렇게 실전으로 배우면서 인싸이트를 얻을 수 있으니 너어어어무 좋겠어요 제이미씨!" 늦게 퇴근하는 것보다 월급 100만 원짜리 인턴을 매일 11시에 보내는 주제에 저딴 멘트를 날리는 사장의 뻔뻔함이 스트레스의 진국이었다. 내가 2주간 배운 것은 '컨설팅'은 결국 대상 기업의 이슈를 잠깐 고민해줄 뿐이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이 업계 사람들이 빈약한 아이디어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회사들도 있겠지만 그때 그 시절 내가 얻을 수 있었던 염병할 놈의 "인싸이트"는 그 정도였다. 말끝마다 "섹시한 아이디어"를 뽑아보라는데 섹시한 아이디어어가 대체 뭔가? 들으면 막 흥분되고 기분이 좀 야해지고 그런 아이디어? 하나 같이 쟁쟁한 학벌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그 새어나오는 무식함은 도대체 포장이 안 되더라는 이야기.


사장은 사람을 진빠지게 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예를 들어 누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영화에서 얻은 "인싸이트"를 공유하자며 집요하게 굴어 결국 그 사람이 영화를 싫어하게 만들어버렸다.(인싸이트에 대체 왜 그렇게 집착했던 걸까.) 무언가에 갑자기 관심이 생겼다가 별다른 고민 없이 또 다른 것으로 고개를 돌리는,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 많고 나쁘게 말하면 벌려놓을 줄만 아는 캐릭터였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 했는지 몰라도 기초적인 매너교육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직원 중 누군가에게 현금 약간을 빌린 뒤 네다섯 번 접힌 꼬깃꼬깃한 돈을 책상 위에 툭 던져놓고 가던 게 기억난다. 악의가 있어서 그랬다기보다 세상에는 그런 사소한 순간보다 더 중요하고 대단한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그런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해 비위가 약했던 내 기분도 하염없이 꼬깃꼬깃해지곤 했다.


레지던스에서 합숙 면접을 봐서 채용됐던 다섯 명 중 나를 포함한 네 명이 3달 안에 일을 그만뒀다. 인내심이 보살급이던 한 명만 1년을 채우고 이직했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사장은 급기야 새로 뽑은 인턴의 월급까지 떼어먹었다고 한다. 그 뒤로 나는 '열정' '도전' '창의' '혁신' 따위의 단어를 보면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되었다. 전부다 사장이 좋아하는 단어였고 전부 다 '사장 꼴리는 대로'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는 단어였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그 회사는 지금도 잘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하긴 홈페이지나 기사만 보면 '혁신적인 기업' '세상을 바꿀 것처럼 생긴 기업'으로 그만한 데가 없다.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또 얼마나 쉬운가. 그 사무실에서 나는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압축적이고도 의미심장한 속담을 만들어낸 선조들의 지혜를 몸소 깨닫고 나왔다. 똥인지 된장인지 선험적으로 알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세상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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