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lighter Aug 18. 2021

도쿄에서 만난 이탈리아 본고장의 커피

외전) 자가격리 해제 후 첫 카페투어



일본 입국 후 2주가 지난 13일의 금요일,

길고 긴 자가격리 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금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 앱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동안

매일 현재 위치를 보고하라는 알림이 오고

AI로부터 걸려오는 영상통화를 받는 게 귀찮고 성가셨는데 이 다 시원하다.


그런데 막상 핸드폰이 잠잠해지니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맨날 나 좋다고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굴던 남자가 갑자기 연락을 뚝 끊어버린 느낌이다.



앞으로 더 이상 내 일상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하다.







자가격리가 끝난 금요일은 운이 좋게도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자유의 몸이 된 기념으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즐기며

디지털 노마드 코스프레를 하고 싶어 졌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내추럴하지만

은근 신경 쓸 건 다 쓴 옷차림을 하고

밖을 나섰다.


아니 그런데 호텔 바로 앞에

'파스쿠찌'가 있는 것이 아닌가.

커피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한류 열풍이 불었나 보다.

내가 묵는 호텔 근처에 있던 파스쿠찌


일본인들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파스쿠찌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져서

구글맵에 호텔 앞 파스쿠찌를 검색해봤다.


구글맵 평점이 4.2로 나쁘지 않다.

그런데 리뷰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탈리아 정통 카페!"

"이탈리아 본고장의 맛!"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요!"


같은 코멘트들이 달려 있었다.


........?


그제야 파스쿠찌가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쨌든 구글맵 평점이 높으니

이탈리아 본고장 커피의 맛 어떨지 기대됐다.

카페 직원이 이탈리아인일지도 모르니까

대학생 때 배웠던 짧은 이탈리아어를 떠올려서

'Un Cappuccino, per favore!

(카푸치노 한 잔 주세요)'

라는 문장을 열심히 연습하며 카페로 향했다.


카페 문을 연 순간..

이탈리아인을 닮긴 했으나

누가 봐도 일본인 같은 직원을 보고

살짝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일본어로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했다.

레귤러 사이즈와 라지 사이즈 중에 고민하다가

통 크게 라지 사이즈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카푸치노가 나왔다.

명색이 '라지 사이즈' 카푸치노인데

아주 앙증맞고 귀여운 크기의 잔에 담겨 나왔다.

(레귤러 사이즈를 시켰으면 에스프레소 잔에

담겨 나왔겠다.)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는데..

자리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협소했다.

이탈리아 본고장 카페지만 인테리어는 일본풍..?


본격 정통 이탈리아 커피 전문점이라는데

인테리어 쪽은 현지화가 많이 된 것 같다.


노트북과 커피를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자리도 부족해 노트북을 무릎으로 받치고

업무를 해야 할 판이었다.

노트북 배터리를 충전할 전원이 없는 건 이었다.

(참고로 일본에선 남의 가게의 전기를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 자칫 모르고 아무 데나 충전기를 꼽았다간 '전기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다.)


전원 사용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쿨하게 포기하고,

인터넷이라도 연결시키기 위해

열심히 와이파이를 탐색했다.



다행히 파스쿠찌 게스트 와이파이가 뜬다.

이탈리아인처럼 생긴 일본인 직원분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뭔지 물어봤다.


"죄송하지만 와이파이를 쓰실 수 없습니다."


....??


분명 게스트용 와이파이가 있는데

사용 불가라황당할 따름이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구글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자리도 불편하고 서비스도 별론데

어떻게 평균 평점이 4.2점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마음 넓고 쿨한 사람이고 으니까

이 정도 불편함은 감수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하지만 인터넷을 못 쓰게 되었다고 해서

노트북마저 덮어버리는 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트북을 

말 그대노트북(공책)으로 쓰기 시작했다.

빈 메모장을 켜  인생 목표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열심히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미래 계획 설계에 몰두하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덩그러니 외롭게 놓여 있는

카푸치노눈에 들어온다.


맛없기만 해 봐라.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앙증맞고 귀여운.. 라지 사이즈 카푸치노를

한 입 머금었다.


카푸치노가 입으로 흘러들어 가서

혀끝에 닿는 순간,

.

.

.

.

.


"Mamma Mia!"

이탈리아 여행 가고 싶다...



이탈리아에 있는 카페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었다.

7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로 여행 갔을 때 현지 카페에서 마셨던 카푸치노만큼 맛있었다.

요 몇 년 새에 마셨던 카푸치노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는 카푸치노였다.


모든 게 다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들었지만

커피 맛 하나에 모든 불만과 짜증이

눈녹듯 사르륵 녹아내렸다..


도쿄에서도 이탈리아 정통 카푸치노를 맛볼 수 있다니...(그것도 파스쿠찌에서...)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업무는 호텔에 가서 하면 되지

그까짓 게 뭐 대수인가 싶었다.


역시 사람은 간사한 동물다.



이 카페는 신기하게도 후불제라서

컵을 반납할 때 계산을 하는 시스템이다.

카푸치노를 맛있게 다 마신 후 1층으로 내려가

기분 좋게 지갑을 꺼냈다.


"얼마인가요?"


"700엔입니다."


...?



그 돈이면

서브웨이 샌드위치에 웨지감자+음료까지 추가해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가격이지만,


700엔쯤이야 나한텐 껌값이라는 표정으로

쿨하게 현금으로 700엔을 내고 카페를 나섰다.



카페 문을 닫고 나오면서

그날 저녁은 굶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시국에 일본 주재원 파견, 험난한 도쿄 입성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