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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Oct 10. 2021

수수하지만 굉장한 그녀가 업무에 임하는 자세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단순하고 쉬운 방법


패션 잡지 '랏시(Lassy)'의 에디터를 꿈꾸며 랏시를 만드는 출판사에 7년째 입사 지원 중인 28세 여성 코노 에츠코. 학창 시절 촌동네에 살면서 랏시를 애독하고 잡지 에디터의 꿈을 키워온 에츠코는 7수 끝에 그토록 바라 왔던 랏시의 출판사 입사에 성공한다.




#1. 주인공의 삶



한국에는 유독 '사짜' 직업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많다.

의사, 변호사, 검사 등 소위 말하는 '멋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한국에서는 인기리에 방영되곤 한다.  


나도 취준생 때 그런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멋지고 대단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멋진 일을 하려면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열심히 토익, NCS, 필기시험, 자격증 공부를 했다.


암흑 같은 취준 생활 끝에 원하던 회사에서 합격소식을 접한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커리어우먼처럼 멋지게 활약하는 내 모습을 그리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2. 알고 보니 엑스트라의 삶



막상 회사에 들어오고 보니

현실은 취준생 때 상상했던 회사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그런 멋진 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맡게 된 일은 상사 뒤치다꺼리나 잡무 같은 사소하고 궂은일뿐이었다. 겨우 이런 일을 하려고 그렇게 죽어라 스펙을 쌓았나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시답잖은 일을 하려고 여기 입사한 게 아닌데.

주인공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알고 보니 주역은 이미 따로 있고, 나는 그냥 지나가는 회사원 2 역할이었다니.


일을 할 때마다 현타가 와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취업 준비에 들였던 노력과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집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참고 다니기로 했다.


오직 주말만 바라보며

영혼 없이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덧 직장인 4년 차가 되어 있었다.



#3. 수수하지만 굉장한 그녀와의 첫 만남



최근 도쿄 주재원 발령을 받은 후, 오랜만에 일본어 공부를 할 겸 일본 드라마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운 드라마 하나를 발견했다. 이시하라 사토미 주연의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출판사 교열부 직원이 주인공인 드라마라니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설정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출처: 닛테레 방송)


주인공 코노 에츠코는 학창 시절 동경해왔던 패션잡지 출판사에 기적 같이 입사했지만, 막상 입사하고 보니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혀 엉뚱한 '교열부'라는 곳에 배치된다. 화려한 출판사의 고층 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한 교열부는 심지어 같은 출판사 직원들도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 '존재감 제로' 부서다. 패션잡지 에디터를 꿈꾸며 입사했다가 졸지에 두꺼운 원고에 줄자를 갖다 대고 한 줄 한 줄 빨간 펜으로 틀린 곳이나 고치는 따분한 일을 하게 된 에츠코.  

이건 에츠코가 입사 전 상상했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여기까진 내 직장생활과 상당히 유사했다.

심지어 에츠코의 상황은 나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 화려한 패션잡지 에디터를 꿈꾸며 출판사에 입사했는데, 현실은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교열 업무라니.

분명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고, 자칫 잘못해 실수라도 하면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는 엑스트라 같은 일이다.

내가 에츠코였다면, 한 달도 못 버티고 퇴사했을 것 같다.


그런데 에츠코는 달랐다.


물론 교열부 부장이 에츠코에게 교열 업무를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잡지 편집부로 이동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 아무런 근거도 기약도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에츠코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교열 업무에 임하기 시작한다. 유명 작가의 원고를 자기가 교열하게 해달라고 애원해서 일을 받아오고, 작가의 글이 사실과 다른 게 없는지 팩트체크를 하기 위해 작가의 고향을 방문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어느새 에츠코는 자신도 모르게 진심으로 교열 일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정신 차려보니 에츠코는 교열부의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이 되어 있었다. 기운 없이 일하던 교열부 직원들도 그런 에츠코의 영향을 받아 능동적으로 하기 시작하고 교열부에는 활기가 넘치게 된다.

에츠코의 긍정 에너지와 열정 덕분에 활기 넘치는 부서로 탈바꿈한 교열부(출처: 닛테레 방송)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도대체 나는 회사에서 4년이라는 세월을 어떻게 흘려보낸 걸까.


'일하는 거에 비해 월급이 너무 적은 것 같다'

'런 쓸데없는 일을 도대체 왜 시키는지 모르겠다'

'직장 상사 뒤치다꺼리하느라 지친다'

'고객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서 피곤하다'

'여차하면 퇴사하고 카페나 차리고 싶다'


허구한 날 직장 동료들과 모여

회사생활에 대한 불만과 푸념만 늘어놓았던 4년이었다.

4년간의 직장생활은 온통 부정적인 말과 행동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스스로가 엑스트라의 삶을 자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4. 수수하지만 굉장한 그녀가 업무에 임하는 자세



에츠코는 본인이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열심히 해봤자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알아주는 이 없는 교열 업무에 어떻게 그렇게까지 진심일 수 있었던 걸까?



1. 뚜렷한 목표 의식

교열부장의 기약 없는 약속이 진짜든 아니든, 에츠코는 그 말을 굳게 믿었다. 그녀에겐 교열 업무에서 성과를 내서 편집부로 이동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기약 없는 미래를 약속하는 교열부장 (출처: 닛테레 방송)


2.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내고 말겠다는 프로 근성

원했던 일이든 아니든 에츠코는 눈앞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였다. 남들은 사소하게 여기는 글의 형식이나 티도 안 날 것 같은 오류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원고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현장 조사를 나가 사실 확인을 하고, 작가를 직접 찾아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3. 근본에 깔려있는 긍정적인 마인드

에츠코는 기대와 달랐던 업무를 맡았다고 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푸념만 늘어놓고 있지 않았다. 에츠코는 '이 길이 맞는지는 몰라도 매일매일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업무에 임했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말이다. 드라마에서 에츠코가 일하는 걸 보고 있으면 교열 업무가 엄청 흥미롭고 재밌어 보일 정도다.


에츠코는 주인공으로 사는 법을 아는 여자였다.

무슨 일을 하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주인공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걸

에츠코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5.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단순하고 쉬운 방법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도쿄 지사로 발령받고 내가 맡게 된 업무는

공교롭게도 에츠코가 했던 교열 업무와 비슷한 점이 상당히 다.

 

내가 담당하게 된 일은 일본 시장 조사업무다.

일본의 전기차 시장, 핀테크 산업, 농업 시장, 스타트업 환경, 친환경 정책 등

업종/산업을 불문하고 온갖 시장정보를 조사해 한국에 계신 고객분들께 매주 발신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직접 자료를 조사해서 시장 현황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일본 현지 직원분들이 작성한 일본 시장정보 보고서를 교정·교열하거나 수정하는 일도 겸하고 있다.


분명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전략기획이나 홍보·마케팅처럼 눈에 는 일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니다. 혹시나 실수로 잘못된 정보를 발신하거나 한 주라도 발신하지 않으면 대차게 까이기만 하는 가성비가 좋지 않은 업무다.  

예전의 나라면 분명 이런 불평·불만만 가득 늘어놓았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매주 새로운 일본 시장정보를 발신하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최신 트렌드와 산업 동향을 누구보다 빠르게 접할 수 있다.

일본 직원분들이 조사한 다양한 산업 분야의 시장 보고서를 교정·교열하다 보면 내가 몰랐던 새로운 분야의 지식까지 습득할 수 있다.

미래의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기에도 최적의 환경이다.

월급을 받으면서 덤으로 지식과 사업 아이디어까지 얻을 수 있다니! 이런 일이 어디 흔하랴.


관점을 바꾸니 놀랍게도 일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업무를 통해 얻은 지식과 아이디어를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깝단 생각이 들어 브런치와 티스토리에도 공유하기 시작했다.

브런치와 티스토리에 유익한 콘텐츠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자료조사를 철저히 해야 되다 보니 더욱 일을 열심히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회사 일이 내 일처럼 재밌게 느껴졌다.


물론 회사 일이 전보다 재밌어졌다고 해서

매일 출근이 기대되는 건 절대 아니다.

(여전히 회사 가는 건 싫다.)

그래도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불평·불만만 늘어놓기보다 내가 하는 일에 조금 더 긍지를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업무를 임하기로 했다.


어떤 일을 하게 되든, 그게 내가 꿈꿨던 일이든 아니든, 그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멋지고 대단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에츠코가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것이 주인공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 그럼 오늘 하루도 기운차게 시작해볼까?"

수수하지만 굉장한 그녀가 업무에 임하는 자세 (출처: 닛테레 방송)



수수하지만 굉장한 모든 사람들에게
(출처: 닛테레 방송)


세상엔 꿈을 이룬 사람도 있지만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다.

튀는 직업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직업도 있다.

개중에는 꿈을 이뤘지만

내 꿈은 이게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눈앞에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 해내야 한다.

그것이 자칫하면 평범하게 반복될 일상을

의미 있고 소중한 나날로 바꿔주는 방법이란 것을.

그날까지 나는 그녀를 응원할 것이다.

언젠간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꿈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현재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세상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수수하지만 굉장한 모든 사람들에게.


-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中-

(출처: 닛테레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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