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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Jan 11. 2021

청춘만화에 나올법한 운동부 매니저가 실제로 있을까

슬램덩크 소연이 같은 운동부 매니저가 현실에도 존재할까?


농구부 매니저 소연이에게 고백하는 강백호


 <슬램덩크>는 양아치 고등학생 강백호가 농구를 좋아하는 여학생 채소연에게 첫눈에 반해

다소 불순한(?) 목적으로 농구부에 들어갔다가 농구에 푹 빠져 진정한 농구인으로 거듭나는 성장기를 그린 청춘 만화다.


<슬램덩크> 농구부 매니저 소연이


'농구는 잘 모르겠고 그쪽을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런 청초한 눈망울로 쳐다보면 여자인 나도 반할 것 같다.

소연이처럼 예쁘고 청순한 운동부 매니저가 현실에도 존재할까?


키 크고 훈훈한 운동선수들이 땀 흘리며 경기에 열중하고,

그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선배 파이팅!!!!!" 목놓아 응원하는 예쁜 매니저들,

스포츠 청춘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이런 장면을 현실에서 볼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일본 대학에서는

청춘만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장면들을

현실에서 꽤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일본 대학의 운동부 문화


일본 대학에는 축구부, 농구부, 테니스부, 조정경기부, 검도부 등등 수많은 운동부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에 주로 프로선수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운동부에 들어가지만, 일본에서는 프로가 아닌 일반 학생들도 운동부에 많이 가입한다. 운동부에 들어가면 대학 4년 동안 주 4~6회 강도 높은 훈련에 참가해야 하고, 학업보다 운동부 활동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운동선수가 되려고 대학에 온 것도 아니고 누가 제 발로 운동부에 갈까 싶겠지만 놀랍게도 상당수의 일본인 학생들이 운동부 활동에 4년 간 청춘을 다 바친다.


나도 처음에는 운동부에 들어가는 게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방과 후 운동장에서 밝고 기운찬 목소리를 내며 열심히 훈련하는 운동부 사람들을 보다 보니 뭔가 부러웠다.

중고등학생 때 공부밖에 안 해서 잘하는 운동 하나 없는 내가 문득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도 공부 외에 뭔가 잘하는 운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몇 관심 있는 운동부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여자 부원 대환영!! 선수 말고 매니저말입니다


어딜 가도 유독 '여자 부원 대환영'이라는 피켓을 내건 운동부들이 많았다. 어느 동호회나 모임에 가도 항상 여자 멤버가 부족한 건 국룰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캠퍼스 안에서 운동부 잠바를 입고 돌아다니는 여학생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녀들의 옷차림이 꽤 흥미로웠는데, 운동부 잠바를 입고 있긴 했지만 풀메이크업, 탱글탱글한 머리컬, 레이스 치마에 뾰족구두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셋팅을 한 모습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운동부원 이미지와는 좀 거리가 멀어서 당황했다. 일본에서는 운동하는 여자분들도 평소에 화려하게 잘 꾸미고 다니는구나.. 일본 여자들은 자기 관리를 정말 철저히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나는 운동부 잠바를 입은 예쁜 언니들 손에 이끌려 어느 운동부 신입생 환영회에 가게 되었다.

맛있는 밥과 술을 얻어먹은 후, 운동부에 들어가면 어떤 훈련을 하게 되는지 물어봤다.

나를 신입생 환영회에 데려온 그 예쁜 언니들은 활짝 웃으며

여자 부원은 훈련을 하지 않고 남자 선수를 케어하는 매니저를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

??

매니저..?

설마... 이거??

슬램덩크 농구부 매니저 소연이와 한나. 자세히 보면 둘 다 풀메이크업이다.


운동부 중에 여자가 플레이어로 활약할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축구부, 농구부, 아이스하키부 등등 대부분의 운동부에서 선수는 남학생들만 할 수 있다. 드물게 여자 운동부가 있긴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여자 부원은 운동부에 들어가면 선수가 아닌 매니저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운동부 매니저가 하는 일


실제로 내 대학 동기 중 운동부 매니저였던 친구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면

매니저의 역할은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다.

(※주의 : 모든 대학 운동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대학 운동부 매니저의 역할

선수 부상 관리 (팔목에 붕대 감아주기)

선수 식단 관리(매니저가 밥해주는 운동부도 있음)

운동 경기 자료 수집 및 분석

선수 대신 수업 대리 출석해주기

선수들 경기할 때 큰 소리로 응원하기

경기 중간 쉬는 시간에 물 갖다 주기

경기 도중 필드 밖으로 나간 공 주워오기

선수들 유니폼 세탁

비품 구입 및 관리

선수들의 컨디션, 몸상태 체크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그 외 모든 걸 케어


운동부 매니저가 되고 싶은 이유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일본인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대략 아래 이유 중에 있을 거라고 한다.


운동부 매니저가 되고 싶은 이유

운동에 대한 열정 (여자부가 없어서 선수로는 못 뛰지만 매니저로서라도 지켜보고 싶어서)

운동부에 있는 지인한테 부탁받아서 어쩔 수 없이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이 투철하고 누군가를 서포트하는 게 좋아서

단체 활동을 통해 팀워크 정신을 배우고 싶어서

잘생긴 남자 친구를 사귀기 위해

남자들한테 주목받고 관심받고 싶어서

그냥 궁금해서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운동부 매니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경기 자료 수집/분석, 부상 관리, 컨디션 체크는 뭐 그렇다 쳐도, 그 외의 일들은 솔직히 내가 보기엔 선수들 뒤치다꺼리로 밖에 안 보였다. 매니저가 물통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선수한테 물을 갖다 주고, 경기 도중에 공 주우러 다니고, 심지어는 선수들 대리 출석까지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충격적이었다.

더 놀라운 건 매니저들 스스로가 그런 일을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누가 선수 팔목에 붕대를 빠르고 정확하게 감아주는지, 누가 선수들을 더 잘 케어해주는지 서로 경쟁을 할 정도였다. 그게 그들 사이에선 매니저로서의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인 동시에 본인의 여성스러움을 어필하는 척도인 것 같았다.

상당수의 여자 매니저들은 항상 풀메이크업에 풀셋팅을 하고 다녔다. 목소리도 진짜 본인 목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기 같은 목소리를 내며 뭐만 보면 '귀여워~~(카와이이~~)'라는 말을 남발하는데 솔직히 보고 있기 힘들었다. 절대 나랑 친구가 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드라마 '가십걸'처럼 선수와 매니저끼리 같은 운동부 안에서 돌려 사귀는 일도 빈번했다.

그래서 나는 남자들의 관심에 목마른 여자들이 운동부 매니저를 하줄 알았다.


자기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왔으면서 남자 선수들 뒤치다꺼리를 왜 자진해서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굳이 '매니저'라는 역할을 따로 두고 별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게 솔직히 이상해 보였다.

게다가 인터넷 검색창에 '운동부 매니저'라고 검색하면 온갖 선정적인(?) 사진들이 나오는 걸 보고

매니저라는 역할 자체가 다소 성차별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내 안에서는 운동부 매니저에 대한 안 좋은 인식만 쌓여갔다.


대학교 3학년 때 한 수업에서 팀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는데 나랑 같은 조에 농구부 매니저여자애가 있었다.(슬램덩크 소연이와 머리 스타일은 똑같았다.) 그 친구는 자기가 농구부 매니저라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내가 매니저에 대해 상당 부분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일본 운동부에서는 '매니저'가 하나의 중요한 역할로 자리잡고 있었다. 매니저는 선수가 경기에만 집중해서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경기 외의 모든 전반적인 것들을 관리한다.

회사에 비유하자면 경영지원, 재무회계, 인사, 총무와 같이 회사가 잘 돌아갈 수 있게 제반사항을 지원하는 일을 매니저가 담당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니저도 선수와 감독 못지않게 꼭 필요한 역할 중 하나다. 실제로 일본 대학 운동부에서 매니저가 없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본 청춘만화에 여리고 청순한 여자 매니저가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매니저가 꼭 여자여야 할 필요도 없다. 드물긴 하지만 남자 매니저도 존재한다고 한다. 매니저는 훈련에 직접 참가하진 않지만 선수들과 똑같이 주 4~6회 운동부 활동에 참가해야 하며, 선수들의 훈련을 계속 지켜보며 케어를 해줘야 한다. 따라서 운동부 매니저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체력과 정신력이 받쳐줘야 한다.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남을 서포트해주는데서 큰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매니저에 잘 맞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부 매니저 일이 웬만한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고

대단히 수고스럽지만 보람된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을 위해 헌신할 수 있을 정도로 착한 사람은 못되기 때문에

죽었다 깨나도 운동부 매니저는 못할 것 같았다.

경기장 밖에서 응원하기보단 경기장 안에서 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여자도 플레이어로서 활약할 수 있는 운동부를 찾아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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