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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er Jan 06. 2021

일본 대학의 독특한 동아리 문화

일본 대학 생활의 꽃, 동아리 활동 : 서클 VS 부활동(부카츠)




스무 살 봄,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 대학 입학식이 4월 중순으로 연기됐지만 다행히 별 탈 없이 입학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대학 캠퍼스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 

몰려드는 엄청난 인파에 깜짝 놀랐다.

처음엔 대규모 시위를 하거나 학교에 유명 연예인이라도 온 줄 알았다.


그러나 학교 안으로 들어갈수록 이 사람들의 타깃이 학교 관계자나 연예인이 아닌 신입생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가지각색의 단체복을 맞춰 입고 이상한 피켓을 손에 든 채 신입생처럼 보이는 사람만 있으면 붙잡고 호객 행위를 해댔다. 뭐하는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붙잡히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한 시라도 빨리 캠퍼스를 빠져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신입생 환영 시즌의 대학 캠퍼스 안 광경


알고 보니 이 엄청난 인파의 정체는 신입생들을 자기네 동아리로 끌어들이기 위해 몰려든 

대학 동아리 사람들이었다.



일본 대학의 독특한 동아리 문화


일본 대학에서는 신입생들이 입학 후 한 달 정도 시간을 들여 자기가 4년 동안 몸담을 동아리를 찾는다. 

이 기간을 '신칸(新歓) : 신입생 환영 기간'이라고 하는데 온갖 동아리에서 신입생들에게 맛있는 밥과 술을 공짜로 사주며 치열한 신입 쟁탈전을 벌인다.

강당 앞에서 죽치고 입학식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 동아리 사람들


일본 대학생들은 학업보다 동아리 활동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학 4년을 동아리 활동에 전부 다 바치는 사람들도 꽤 많다. 대부분 한 번 동아리에 가입하고 나면 웬만하면 대학 졸업할 때까지 활동하는 편이다.


4년 동안 한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가 처음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유를 마음껏 누려도 모자랄 판에 왜 다시 스스로를 새장에 가두려고 하는지 의아했다. 취업에 도움되는 거라면 또 모를까.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별의별 희한한 동아리를 다 봤지만 취업 동아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가입했다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아마 있어도 활동을 안 하거나 아예 없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일본 학생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또는 의미 있는 대학생활을 보내기 위해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학생들도 졸업 후 대부분 취업을 한다. 다만, 한국 학생들처럼 저학년 때부터 미리 취업 준비를 시작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취업하면 어차피 평생 일해야 하니까 대학 4년만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거 원 없이 하고 살겠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많다.


이런 마인드가 용납이 되는 이유는 대학생 때 좋아하는 걸 원 없이 하고 살아도 취업에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은 대졸 채용 시 학점, 영어 점수, 자격증 같은 스펙보다 지원자의 인성과 자질, 조직 생활 경험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본 학생들은 학점 관리나 스펙 쌓기에 연연하기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동아리 활동에 몰두하는 편이다.




일본 대학의 동아리 활동 : 서클 VS 부활동(부카츠)

일본 대학의 동아리 활동은 크게 '서클(サークル)'과 '부활동(部活)' 두 종류로 나뉜다.



1. 서클(サークル)


서클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아리로, 학생들이 만든 과외활동 단체를 말한다.

보통 활동 주기는 주 1~2회 정도로 물리적으로 크게 구속받지 않는다. 취미가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학업, 연애, 아르바이트 등과 병행하며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즐기고 싶은 학생들은 주로 서클 활동에 참여한다. 한국 대학의 동아리와 다른 점은, 

한국의 경우, 주로 취업이나 학업을 위한 동아리가 많다면 일본에는 취업과는 거리가 먼 별의별 동아리가 다 있다. 스트릿댄스, 스탠딩 코미디, 아카펠라, 애니메이션 연구,  철도 연구(일본에는 철도에 미친 철도 오타쿠가 많다.), 오케스트라 등등 순수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걸 즐기고 싶은 사람끼리 모여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이다.


(왼쪽) 공개 코미디를 하는 개그 서클 / (오른쪽) 스트릿댄스 서클
(왼쪽) 지역사회 활성화를 돕는 창업서클 / (오른쪽) 뭔가 엉성해보이는 아카펠라 서클


참고로 위 사진에 있는 서클들은 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 실제로 존재하는 역사 깊은 서클이다. 특히 'Cherish'라는 스트릿댄스 서클 사람들은 매일같이 학교 매점 앞 길바닥에서 춤 연습을 하곤 했다. 잘 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다른 사람들 신경 안 쓰고 길바닥에서 춤추는 모습이 힙하고 멋있어 보였다. 'The first cry'라는 아카펠라 서클도 종종 학교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곤 했는데 잘 부른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열심히 서로 합을 맞춰 부르는 모습이 보았다.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The first cry'라는 아카펠라 서클의 신입생 환영회에서 갔을 때의 일이다. 선배들이 직접 아카펠라 공연을 선보였는데 다들 생각보다 노래를 너무 못 불러서 깜짝 놀랐다. 명색이 학교를 대표하는 아카펠라 서클이라는데 하모니는커녕 불협화음만 들려왔다. 진지한 표정으로 정말 열심히 부르는데 너무 못 부르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같이 갔던 한국인 유학생 친구들끼리 입을 틀어막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식겁했다. '여기 아카펠라 서클이 아니라 개그 서클 아니냐', '야 완전 개그콘서트가 따로 없네ㅋㅋ', '웃음 참기 너무 힘들어서 나 좀 나갔다 와야겠다ㅠㅠ'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한국인 친구들끼리 조용히 키득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제외한 다른 일본 사람들은 초지일관 진지한 얼굴로 노래를 감상하고 공연이 끝나자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게 아닌가. 

처음엔 이 사람들이 공연자를 놀리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노래를 잘 부르든 못 부르든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서 노래를 불렀다는 것 자체에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순간 친구들이랑 시시덕거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서클 활동을 하는 일본 사람들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사람들은 잘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는 데에 더 큰 의의를 둔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걸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일본에선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 가짐을 더 중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일본 사람들을 보면서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2. 부활동(部活) : 부카츠


부활동(부카츠)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아리 활동과는 많이 다르다. 서클과는 달리 부활동은 대학에서 정식으로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공식 단체로, 학교의 명예와 대외 위상 제고를 목적으로 한다. 부활동은 조직원들이 전국 대회 출전 등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고, 철저히 성과와 실력 위주로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회사생활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활동 주기는 주 4~6회가 일반적으로, 서클에 비해 구속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평소 강도 높은 연습에 더해서 대회 시즌이 되면 단체 합숙 훈련을 시행한다. 짧게는 일주일(더 길 수도 있다) 동안 새벽, 아침, 점심, 저녁, 하루 4번 강도 높은 연습량을 소화해야 한다. 눈 뜨고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밥 먹고 운동만 하는 셈이다. 그래서 부활동에 가입하면 마치 내가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 대학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부활동의 대표적인 예가 운동부로, 일본어로는 '체육회(体育会) : 타이이쿠카이'라고 한다. 쉽게 생각하면 고등학교에 있는 유도부, 축구부 같은 운동부를 떠올리면 된다. 프로 선수 육성을 위해 운동부를 운영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프로 선수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방과 후 운동부 활동을 하는데, 그 활동이 대학까지 이어진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왼쪽) 응원부 / (오른쪽) 보트부(조정경기부)
(왼쪽) 궁도부 / (오른쪽) 아이스하키부


마찬가지로 위 사진에 있는 운동부들도 내가 다니던 대학에 실제로 존재하는 역사 깊은 운동부다. 특히 응원부와 보트부(조정경기부)는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간판 운동부다. 실제로 보트부에 있다가 졸업하고 보트 선수로 아예 전향한 졸업생들도 있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힘들기로 유명한 보트부의 경우, 부원들이 학기 내내 아예 수업을 결석하고 도쿄 근교 훈련소에서 합숙 생활을 하며 졸업할 때까지 조정 연습만 죽도록 한다. 학교 수업은 보트부 소속 여자 매니저들이 대리 출석을 해준다. 대리 출석뿐만 아니라 남자 선수들의 식단 관리, 부상 케어까지 도맡는다. 보트부처럼 대다수의 운동부에서 선수는 남학생만 할 수 있고 여학생은 남자 선수를 케어하는 매니저 역할을 한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부활동은 구속력이 강한 만큼 학업, 아르바이트, 연애 등과 병행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대학생활에서 부활동을 최우선시할 수 있는 사람이 들어가는 게 좋다. 누가 대학까지 와서 저런 생활을 할까 싶지만 놀랍게도 상당수의 일본인 학생들은 부활동에 4년 간 청춘을 다 바친다.


나는 우연히 어느 운동부 신입생 환영회에 갔다가 부활동의 실체를 처음 듣고 충격에 휩싸였었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대학까지 와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같은 대학의 한국인 유학생 선배들도 부활동만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호기심에 잘못 발을 들였다가 시간은 있는 대로 다 뺏기고 영혼까지 털리고 대학생활 다 버리니까 절대 들어갈 생각 말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나는 선배의 말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부활동은 쳐다도 안 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관심 있는 창업, 환경, 경제 분야의 서클에 가입하기 위해 몇몇 서클의 신입생 환영회에 참가했다. 


그런데 뭔가 애매하다고 할까.. 사람들이 매가리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동아리 활동도 지루해 보였다. 뭔가 확 와 닿는 서클이 없었다.



그렇게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신입생 환영 시즌이 다 지났고, 

나는 어디에 가입할지 정하지 못한 채 그대로 5월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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