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

영화 '데몰리션'을 보고

by 담조


데몰리션 (2015)


Demolition

1. 파괴, 폭파; (특권 등의) 타파

2. 폐허; (전쟁용) 폭약


감독 : 장 마크 발레

음악감독 : 수잔 제이콥스

출연 : 제이크 질렌할(데이비스),

나오미 왓츠(캐런), 헤더 린드(줄리아)

크리스 쿠퍼(필)


요약 : 데이비스와 줄리아는 부유한 부부.

데이비스는 장인의 회사 근무. (투자사)

부족함은 없지만 삶이 무료한 듯 한 데이비스.

어느 날 교통사고로 줄리아(아내) 사망.

그리고 일어난 데이비스의 변화.




Check point 1

1. 감독 : 장 마크 발레 (Jean Marc Vallee)

2. 1963년 3월 9일, 캐나다

3. 작품 : 데몰리션(2015), 와일드(2015),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 카페 드 플로르(2011), 영 빅토리아(2009) 외 다수


Check point 2

1. 배우 : 제이크 질렌할 (Jake Gyllenhaal) (데이비스 역)

2. 1980년 12월 19일, 미국

3. 작품 : 투모로우(2004), 브로크백마운틴(2006), 조디악(2007), 브라더스(2009), 러브&드럭스(2010), 페르시아의 왕자 : 시간의 모래(2010), 소스코드(2011), 프리즈너스(2013), 데몰리션(2016) 외 다수

4. 참고

조디악(2007) 출연 : 제이크 질렌할, 마크 러팔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브라더스(2009) 출연 : 토비 맥과이어, 제이크 질렌할, 나탈리 포트만

러브&드럭스(2010) 출연 : 제이크 질렌할, 앤 해서웨이

프리즈너스(2013) 출연 : 휴 잭맨, 제이크 질렌할




영화가 시작하면서 노래가 흐른다. 쇼팽의 야상곡이다.(Nocturnes No.2 in E flat Major Op.9-2) 데이비스는 아내와 함께 차 안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내는 운전 중이다. 평안한 배경음악과 함께 대화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고가 닥친다. 교통사고다.


데이비스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아내와의 단편적인 기억들.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장인이 소식을 전한다. 아내가 죽었단다.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기도 전에 배가 고프다. 자판기에서 M&M을 뽑아 먹으려고 했다. 돈을 넣고 초콜릿이 나오는 중에, 초콜릿이 걸렸다. 나오질 않는다. 짜증이 났다.


아내가 죽었는데 슬프지가 않다.


아내가 죽어도, 하루는 시작된다. 평소와 같은 무료한 삶이 계속된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회사에 간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슬픔에 잠겨있는데, 데이비스만이 동떨어진 사람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같이 살아간다.


가끔씩 아내가 생각난다. 그러나 자판기에서 나오지 못한 M&M이 더 생각난다. 짜증이 난다. 데이비스는 자판기 회사에 편지를 쓴다. 처음에는 자판기에 걸린 M&M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왜인지 그는 그의 그동안의 삶과 결혼생활에 대해 쓰기 시작한다. '환불 요청과는 관계없을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를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편지 속에 그의 삶을 조금씩 되짚어가며, 데이비스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출근길 기차에서 말을 걸던 노동자를 만난다. 이전의 데이비스는 헤드셋을 끼고, 그가 하는 말을 무시했었다. 그에게 말을 건다.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 남자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불쑥 데이비스는 말한다. '전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녀가 죽었는데, 괴롭거나 속상하지도 않아요.' 그가 묻는다. '그럼 어떤데요?' 생각하던 데이비스는 벌떡 일어나 그의 머리 위에 있던 긴급 기차 멈춤 레버를 내려버렸다. 기차가 멈췄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그는 스스로 무엇인가 잘 못 되었다고 느낀다. 장인어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그게 자네를 더 강인하게 해줄 것이네. 심장(마음)을 고치는 것도 차를 고치는 것과 같아. 철저히 검사한 다음, 다시 끼워 맞추는 것이지."

집에 고장 나 있었던 냉장고를 분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분해하고 부수기 시작하는 데이비스. 분해하는 행위를 통해 데이비스의 감정도 하나하나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끼워 맞춰간다. 그렇게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나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화제가 된 영화들 중에서도 보지 않은 영화가 대다수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던 도중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대수롭지 않게 읽고 넘겼지만, 한 번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쉬는 날 나도 모르게 영화를 찾아서 보고 있었다.


아마, 아내가 죽었다는 내용에 끌렸 던 것 같다.


결혼 2년 차에 아직 아이는 없다. 오래 사신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직 꼬꼬마 같은 신혼부부일지 몰라도, 우리는 나름의 부부관이, 가치관이 있다. 비록 부유하지도 않고, 미래도 불확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부부는 서로 무척 사랑하고 지금이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서로가 있어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힘들어도 함께 손잡고 기도할 수 있기에 위로가 된다. 수많은 대화를 통해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그 나눔 속에 우리가 조금씩 온전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가 함께이기에 하나구나.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결혼은 선물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자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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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이 있다. '데이비스는 왜 아내와 결혼했을까?'. 데이비스는 영화에서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아마, 쉬워서?' 줄리아는 부유한 집의 딸이었고, 착했고 예뻤다. 그녀는 데이비스를 좋아했다. 줄리아와의 결혼으로 데이비스는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부유한 삶을 얻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직장. 그것이 그가 결혼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나 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데이비스는 자신에 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집이 싫어요.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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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늘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많은 것을 누리는 것, 좋은 것을 먹는 것, 좋은 곳에 사는 것, 좋은 옷을 입는 것.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비록 부유하지 못해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며 지내는 것.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데.


데이비스는 참 쉬운 삶을 살았다. 그는 대학교 4학년 때도 친구들에게 레포트를 대신 쓰게 하는 대신 엑스터시(일종의 마약)를 제공했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했다.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했고, 결혼을 통해 직장을 얻었다. 우리가 아등바등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너무도 쉽게 얻어 버렸다.


쉽게 얻은 것들은 시시하다. 어렸을 때 오락실에서만 하던 게임을 처음으로 컴퓨터에 깔아서 했었던 적이 있었다. 오락실에서는 죽으면 돈을 넣어야 했고, 이는 돈이 없어지면 게임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컴퓨터에 깔아서 하니, 이게 웬걸 게임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충격) 처음에 게임을 하면서 나는 이 게임을 끝까지 다 깰 줄 알았다. 그렇지만 얼마 안 가서 게임을 그만두었다. 게임이 시시해졌다.


이것이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집도, 직장도 데이비스에게 의미가 없었던 이유이지 않을까.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 일하고 얻으려 노력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삶에 필수적인 것이다. 다만 좋은 직장을 얻고, 큰돈을 벌고,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사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고, 만나고, 그들과 교감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출했던 것은 언제였을까.


가장 최근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시선과 상관없이, 아무런 목적과 계산 없이, 억지로 억누르고 아닌 척하려 하지 않고 오롯이 느꼈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조카에게 세뱃돈을 주던 날이 생각난다. 오빠보다 2살이 어렸던 조카는 오빠보다 세뱃돈을 덜 받았다는 이유로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조카를 보며, '떼쓰고 어른들을 곤란하게 하면 안 돼.'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조카의 서러운 감정에 대해 먼저 이해하기보다, 그의 행동의 당위성에 대해 먼저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그의 감정에 대해 동의해주고,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그 감정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대개의 경우 우리는 이것을 놓치고 만다. (이것은 그의 행동이 무조건 적으로 옳았다고 인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인 것이다.)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더더욱 감정은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것. 그보다는 성과를 비롯한 결과나 남들에게 보이는 시선들이 더 중요하다 여겨지기 때문에, 감정을 올바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은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도. 슬픔과 그로 인한 눈물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때로 겪는 우울과 좌절은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적 지위가, 가정에서의 역할이, 나의 나이가. 이것을 점점 가로막게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아내의 죽음에도 슬픔을 느끼지 못했던 데이비스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투자회사 사장의 사위로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늘 그를 준비시켜 회사에 입지를 세우고자 했던 장인어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의 원함보다는 해야 하는 의무와 역할이 강조되었던 그가 스스로의 감정에 점점 무뎌져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그의 표출할 길이 없는 감정들이 쌓여간다. 데이비스라는 자신과 외부 사이에 하나씩 벽돌을 쌓는다. 벽은 성이 되고 성은 더욱 견고해진다. 그 성에 아내의 죽음이라는 폭탄이 한 번 쾅. 보통은 자신이 흔들려야 하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성 안에서부터 성을, 벽을 부수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며 그려본 이미지다.) 감독은 데이비스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마음의 벽을 부수는 것을 건물을 분해하고 물건을 분해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 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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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느끼는 기쁘고, 즐겁고, 슬프고, 우울하고, 좌절하고, 애쓰는 감정들은 중요하다. 즐거움을 느꼈을 때 그것을 잘 나누고, 슬픔을 느낄 때 그것을 온전하게 표출하고 그 슬픔을 잘 해결하는 것이 삶을 좀 더 윤택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일일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나는 언제 자유롭게 감정을 표출했었는가. 남편에게의 서운함을, 직장에서의 억울함을. 기쁨을, 즐거움을 언제 자유롭게 표출했었나. 데이비스처럼 견고한 성이 되기 전에, 조금씩 쌓여가는 벽돌을 한 번씩 치워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인 지위와, 가정의 역할에 지친 어른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른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비 오는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찬찬히 영화를 감상하기를.



#데몰리션 #Demolition #장마크발레 #제이크질렌할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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