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의 유언, 인류의 발걸음
나의 나머지 실현 가능한 모든 자산은 다음과 같이 사용한다.
집행인들은 자산을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전환하여 기금(fund)을 조성하고, 그 기금의 이자는 매년 “전년도에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금(prizes)으로 수여한다.
이자의 총액은 다섯 부분으로 나뉘며 다음과 같이 배분된다: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화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개선을 이룬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문학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의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제 평화를 증진하고, 상비군의 폐지 또는 축소, 평화회의 개최에 크게 기여한 사람
각 상은 다음 기관이 수여한다:
물리학 및 화학상: 스웨덴 왕립과학원, 생리학·의학상: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 문학상: 스웨덴 아카데미, 평화상: 노르웨이 의회(Storting)가 선출한 5인 위원회
나는 명시적으로 바란다. 수상자의 국적은 고려하지 말고, 그가 스칸디나비아인이든 아니든, 가장 가치 있는 사람에게 상을 수여해야 한다.
— 알프레드 노벨, 〈유언장〉, 1895년 11월 27일, 파리 작성
나는 오래전부터 알프레드 노벨이라는 인간이 흥미로웠다. 가장 큰 이유로는 우선 내 기준에서 가장 완벽한 유언을 남긴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의 인생이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벨은 폭발물 제조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 전쟁에서 지뢰를 개발하며 부를 얻었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실험실의 냄새와 불안정한 폭발음을 들으며 자랐다. 1860년대 초반, 당시 폭발물이었던 니트로글리세린을 다루다가 폭발사고로 알프레드의 동생 (에밀 노벨) 이 사망하고 1867년 알프레드는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충격, 온도, 진동에 극도로 민감했던 반면, 다이너마이트는 이 액체를 규조토에 흡수시켜 고체 형태의 안정된 폭발물로서 인간이 안전하게 운반가능하고 폭발 시기를 조절할 수 있어 산업현장에서 정밀하게 사용 가능한 '통제 가능한 폭발물'이었다. 이를 통해 터널, 철도, 운하, 광산, 도로건설 등이 대규모로 가능해졌고 인간은 '지형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이 발명품만 놓고 보자면 알프레도 노벨은 인류에게 '파괴의 발명품'을 줬다기보다는 '통제의 기술'을 전달한 것이지만, 다이너마이트는 산업의 발전뿐 아니라 전쟁을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다만 노벨은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기술이 남긴 그림자를 끝까지 바라봤고, 결국 그가 평생 모은 재산을 인류의 진보와 평화를 위해 남겼다. 그가 세상을 떠나며 만든 노벨상은, 자신의 발명이 불러온 결과를 바로잡으려는 시도이자, “나는 파괴를 막지 못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우리 대부분은 특정한 환경 속에 태어나, 주어진 자원과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가 항상 선한 방향으로 이어지진 않고 때로는 우리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선택, 다시 방향을 정하는 그 행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선한 의지를 증명할 수 있다.
매일 세계와 한국의 뉴스에는 사건과 이슈가 넘쳐난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경제난 속에서, 때로는 인간의 미래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매년 가을,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질 때면 묘한 설렘이 찾아온다. 인류는 수없이 흔들렸지만, 결국에는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그 순간만큼은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노벨상을 통해 인간이 걸어온 여정을 다시 바라보려 한다. 1901년 첫 번째 노벨상부터 2025년까지, 매년 선정된 수상들이 인류의 삶과 생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따라가 본다. 그 여정을 기록하며 한국사를 함께 놓은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의 감각으로 “그때 인류는 어떤 걸음을 내디뎠는가”를 조금 더 생생히 느끼기 위해서다. 이 작은 시도가 독자들에게도, 인류의 의지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조용한 위안으로 다가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