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행복했을까
보이지 않는 행복을 찾아서
앨리스 씨는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요? 라는 의사선생님 질문에 답을 하기란 어려웠다.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진짜로 행복하지가 않았어서. 내 인생은 가시밭길 같았다. 나는 폭력가정에서 자랐고, 엄마는 내 앞에서 자살기도를 했으며, 집구석엔 정상으로 보기 힘든 자들이 가득했다. 부모님은 어떤 면에서는 훌륭한 부모였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실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 분들이었다. 집안은 평온한 날이 거의 없었고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불안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밤마다 어두운 방에서 혼자 떨었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 어른들에게 덜 거슬리게 행동하고, 본분에 걸맞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도록 노력했다.
어느 집단에 가더라도 험한 소리 듣지 않을 만큼 내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다. 그것만이 내가 정상인 범주에 들어가 보이도록 나를 꼭꼭 숨기는 유일한 길이었고 나중에는 남들 눈에 안정적이고 좋은 조직의 일원이 되는 길을 택했다. 다행히도 그것은 성공적이었으나 지금에 와서 보면 나의 불행함을 안 보이게 하려고 포장하기에 급급했을 뿐 행복하지는 않았다.
나의 남자친구들은 하나같이 문제가 있었다. 오래 사귄 이들은 양다리거나 폭력적이었다. 집안의 소개로 만난 남자조차도 폭력적이고 사기성이 짙었다. 돈이 한 푼도 없는데 결혼은 하자하고, 새벽 네 시에 여자한테 전화가 오고, 그런데 자신 앞으론 무슨 일인지 빚을 못 내서 본인 남동생 이름으로 2천만원 얻어서, 그것도 이자만 월 20만원씩 남동생한테 보내라고 했던 놈이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내 부모가 그렇듯 사람은 다 장단점이 있어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그래, 저 친구가 좋은 친구인데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겠지.’라며 헛된 낙관과 믿음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고 그 믿음을 쉽게 버리지 못하던 나는 끌려다니며 죽을만큼 힘들었다. 나는 옷걸이를 보며 저기다 목을 매면 어떨까 나도 모르게 생각한 적이 있다.
이쯤 되면,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쟤한테 문제가 있겠구나. 저런 데서 자란데다 남자보는 눈도 없고 더럽게 박복한 팔자구나. 나는 나의 겉모습만 보고 다가왔다가 어두운 실체를 보고 내게 동정심을 갖는 절친들을 차례로 손절했다.
기분이 더럽다. 그 기분을 또 느끼느니 이제 나는 함구하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지인들에게 이런 어두운 일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나는 그때 상담실을 찾았다. 그냥 입 다물고 살기에는 속이 터져 죽을 것 같으니 차라리 돈을 내고 얘기를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문가의 의견도 듣고 말을 하면서 스스로 정리가 되거나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들여다보기 싫었던 나의 내면을 마주하고 힘들었지만 차츰 나아질 수 있었다.
나의 어두운 그림자를 모르는 주변 사람들 눈에 나는 그냥 적당히 좋은대학 졸업하고, 공부 좀 열심히 하다가 별 문제없이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자라 밝고, 조용하고, 돈도 좀 있어보이고 이런 느낌인가보다. 종종 이유없이 이런 나를 시샘하는 사람들이 접근해서 친해지고 나서 내 뒷얘길 하고 다니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알지만 모른척하기도 하고 모르다가 당하기도 하고 그랬다. 언제 행복하냐고? 내 인생은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가시를 안 밟는 날이 운 좋게 몇 번은 있었겠지만 거의 없었다. 행복이 아니라 조금 덜 불행한 날이 언제였는지 찾는 게 그나마 빠를 것이지만 그것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인정한다. 나는 겉으로만 멀쩡했지 정신적으로 매우 취약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인간이었다. 나는 집에서부터 길들여진 부분이 있어 나쁜 관계에 빠지기 쉬웠다.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던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나는 나쁜 마음을 먹은 자들에게 먹잇감이 되기 쉬운 타깃이었다. 그것은 가족이든 누구든 가리지 않는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는데 어쨌든 지금은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조심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방어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면서 겪어온 온갖풍파로 바보같던 나조차도 조금은 단단해진 부분이 물론 있다. 그럼, 산전수전 공중전에도 살아남은 건데. 그래도 사람에게 그렇게 데여서 그런지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평온하고 편안하다.
어떻게 인생사의 고충을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라도 그 무게감이 다를지언정 인생에 어두운 부분은 분명 있다. 그리고 그걸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 무게감은 주관적인 것이어서 어느 누구에겐 가벼울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도록 버거운 것일 수 있다. 나의 것도 아마 누군가에겐 별거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겐 무거웠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온 것 인정한다. 그렇다고 재벌집도 아니고, 그냥 아주 조금 유복했다. 굶지 않고 어린시절부터 해외여행도 자주 다녔던. 그만큼의 여유도 쉽지 않다는 것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이 행복했을 거라고, 쉬웠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엔 동의하지 않는다.
나를 정의내려 본다면 잡초같은 인간이라고 하겠다. 질긴 생명력의 잡초. 예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고 그런데 질기게도 살아남는다. 지독한 적응력과 생명력. 이건 내 장점이다. 성격은 안좋고 못됐게 얘기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부모 밑에서 자라나 웬만한 성질머리 못된 인간 옆에서도 잘 견딘다. 나도 한 성질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DNA 도둑질은 못했을 거라고 본다.
잡초에게 행복한 적은? 생각해보니 아주 짧은 순간들은 있었던 것도 같다. 그 모든 핸디캡을 잠깐 잊을 정도로 뭔가가 있던 순간들. 아주 애를 써서 만들어낸 아주 짧은 순간들. 하와이에서 노을이 내려앉은 한 고급호텔 야외 카페에 들어갔는데 그 아름다움과 분위기에 매료되어 힘든 상황임에도 그것들을 잠깐 잊고 한동안 행복하다고 느꼈다. 물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힘들 때 그때가 가끔 생각이 났다. 그래서 하와이에 가서 그 때 그 카페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칵테일 한잔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이유도 없이 뭔가 위로가 되곤 했다.
그런 아주 짧은 시간들. 근데 완벽하게 행복해 본 적은 없다. 난 사랑도 모르고 그렇다고 업무적으로 엄청난 능력도 없는. 그냥 평범도 못 가는 불행한 인간이다. 그런데 내 불행을 안주삼아 위안삼아 사는 인간들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함구했다. 나에게 행복했던 순간은 딱히 없었다. 자주 웃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하지만 행복한 척 했던 거지. 그게 내 인생에 가장 큰 슬픔이다.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한 적이 없다. 그래서 뭘 해야 행복한 지도 모르겠다. 젠장. 행복해봤어야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