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동생과 사촌들은 사회적인 지위로 따지면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친동생은 미국에서 MBA석사와 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글로벌 회계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사촌오빠는 미국 변호사이며, 사촌 여동생 둘 중 하나는 미국의 전문의, 하나는 누구나 알만한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는 재원이다. 추측대로 넷다 세계랭킹 탑급 대학을 나왔다. 한국의 중위권 대학을 간신히 졸업하고 이름도 없는 소규모 회사에 다니는 나와 그들의 스펙은 객관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럼 우리 부모가 나를 그들과 비교하며 모자라는 자식이라고 한심하게 대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전혀 아니다. 다른 면에서는 내게 나쁜 부모일 수 있겠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비교하지 않고 나를 키우셨다. 조부모님 역시도 그랬다. 그저 예뻐하시고 잘한다 소리만 하셨지 누가 더 낫네 모자라네 비교하지 않으셨다. 그런 성장환경이 아마도 이러한 조건 속에서 내가 열등감이나 비교에 빠져 콤플렉스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 데 많은 일조를 했을 것 같다. 실제로는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한 번도 그런 비교의 표현을 하신 적이 없다.
어릴 땐 좋은 대학을 누가 갔다고 하면, 나도 갈 수 있을텐데 하며 조금은 배 아파하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일단, 나는 내가 안다. 천재, 명석함, 이런 것과 거리가 멀다. 적당한 지능에 적당한 노력, 적당한 결과를 가지고 대학에 갔고 취업을 했다. 그렇다고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아 정말 죽어라 했다고 보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나름 노오력을 했다. 나의 혈족들만큼의 결과를 내려면 아마도 난 운도 좀 따라줬어야 했겠지만 노오력을 겁나 빡세게 해도 힘들었을 것 같다. 물론 출발선도 좀 달랐다. 나의 부모는 동생에겐 미국대학 편입을 포함해 총 8년간의 유학생활을 책임지고 허락하셨지만 내겐 아니었다.
그때 나도 반항하거나 고집을 좀 부렸다면 유학생활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때 나는 안 그랬다. 난 K장녀다. 부모가 안된다고 하면 싫어도 따르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뭐 과거로 돌아간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 저들처럼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겠다 이런 생각은 없다. 내가 생각보단 현실감을 갖고 있긴 하다. 그렇게도 그런 지위에 오르고 싶었다면 사실 지금이라도 뭔가 조치를 취했을 거다. 그런데 난 그냥 사회적 신분상승 이런의지나 욕망이 없이 이대로가 좋은 게으른 사람이다. 그게 나다.
(물론, 나의 장래희망은 영원한 퇴사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적응의 동물이고, 그러한 성향을 나는 특히 많이 가진 것 같다. 사실 남들에 대해 크게 시기 질투를 못 느낀다. 물론 아예 안하지는 않겠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다. 나는 주변사람들이 잘나가는 사람에 대해 부러움을 넘어 시기와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게 잘 이해가 안 가고 공감이 안된다.
기본적으로 내가 남에게 관심이 적은 것도 있다. 나는 나한테 관심이 있지 남이 내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 아니면 별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고충도 있겠고 나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지만 그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들 마음속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면서. 내 성격의 장점 중 하나는 남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거나 이렇거니 저렇거니 말을 잘 안한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얘기를 듣고 귀찮아서 그냥 대충 그래그래 맞장구나 쳐주지만 속으로는 아무 감정의 동요를 못 느낀다.
그런데 생각해본다. 사람들이 시기 질투하거나 부러워하는 이유는 뭐지? 그냥 막연하게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들의 삶이 더 좋아보여서. 왠지 내가 초라하거나 좀 낮아지는 것 같아서거나 저런 삶을 살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요소를 더 가지는 것 같아서겠지. 그럴 수 있다. 사람들은 교회도 성당도 절도 잘만 나가면서 그들이 하나같이 제일 중요하게 설파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믿지 않는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또 너무 의식한다. 그게 곧 객관적이고 사회적으로 내가 어느 위치쯤에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니까 그럴 것이다.
행복은 멀리있지 않다는 뻔한 소리를 하고싶지는 않다. 그냥 나는 안타깝다. 비교를 정 하고싶다면 그럼 나보다 못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랑 비교하면 차라리 행복할텐데. 그럼 내가 생각할 때 나보다 잘난 것과 나보다 못난 것을 결정짓는 지표가 뭘까. 그 요소를 갖추면 나는 행복해질까.
내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보았다. 여러 가지가 생각난다. 일단 돈. 건강. 인간관계. 시간. 자유. 등등. 여기에 사회적 인정이나 명예, 권력 이런 건 없다. 그럼 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까. 돈을 적당히 벌면서 건강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친분과 유대를 쌓고,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음 좋겠으며 어디에 구속되고 싶지가 않다. 특히 사회적 인간관계, 조직에 매여있는 게 싫다. 예전 무소속 시절엔 그게 참 자존감이나 안정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힘들었었다. 안정적인 소속을 가진 지금은...무소속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만약에 내가 원하는 행복의 조건을 충만하게 갖춘 사람을 어디선가 만난다면? 부러울 것 같긴 하다. 근데 그런 감정에 빠져있긴 가성비가 떨어지잖아? 나는 저질체력에 신경쇠약자이며, 중년을 향해 달려가는 여자다. 내 인생만 다듬기에도 체력이 달린다.
직장선배에게 이런 친척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어릴 땐 그들의 스펙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더니 놀라며 내가 지금 다른 세상 얘길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냥 그들의 직업이 그런 것뿐이지 나는 내 친척들과 내가 다른 세상에 산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든다. 이게 자의식 과잉일까. 아님 내가 너무 둔하고 자기합리화를 잘 하는 것일까. 그냥 난 그들의 노력도 능력도 인정한다. 그건 근데 그들일 뿐이고! 난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가 더 궁금하다.
승부욕의 제왕들 혹은 비교가 습관이 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새로운 제안을 하고 싶다. 정히 승부를 봐서 이기고 싶다면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1. 풍성한 메뉴의 배달음식을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압도적 1등이다.
(배달음식이 얼마나 삶의 질에 중요한지 다들 동의할거다)
2. 나는 아이를 키우는 행복과 즐거움을 결코 모르겠으나 언제든 하와이로 떠나고자 할때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와 깡(?)이 있다.(돈은 물론 그들보다 적다) 이 기준도 압도적 1등이다.
3. 무한 비경쟁의 세상에서 살고있는 나. 경쟁에 대한 피로도 측면에서 볼때 가장 우수한 삶을 살고 있다.
결론 : 최소한 세가지 기준에선 내가 가장 행복하다.
미국의 피터지는 로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촌오빠가 얼마나 빡빡한 스케쥴을 견디며 살지 상상도 안 된다. 머리가 그닥 좋지는 않은 나의 동생이 세계적인 회계법인에서 안 잘리고 일하려면 남들 10시간 일할 때 15시간은 일해야 조금 따라가는 수준의 아웃풋이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9 to 6를 고집스럽게 고수해도 잘리거나 면담신청이 들어오지 않는 워라밸 좋은 직장에서 4차원처럼 산다. 적긴 하지만 그래도 월급은 꼬박 들어온다. 업무시간엔 일 반 놀이 반으로 유튜브 컨텐츠를 섭렵하고 있으며(담당업무) 주말에 일하러 나오라는 상사도 없고 그럴 생각도 의지도 없다. 워커홀릭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미친 경쟁의 세계에서 살고싶지 않다. 그게 내가 딱히 부럽거나 질투하지 않는 이유다.
분명 사회적 지위에선 내가 서열 꼴찌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들이 연봉은 더 높겠지만 그들도 무한경쟁 속에 생존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난 연봉은 좀 낮아도 안정적으로 정년이 보장된다. 직장의 복리후생을 놓고 비교해 보면 내가 압도적 1위는 아닐 수 있지만 최소한 그들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시댁도 처가도 없이 혈혈단신 하고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자유를 놓고 보면 내 삶은 그런대로 괜찮다.
내가 비교를 하란 뜻으로 예를 든 것이 아니라, 굳이 다른 주변사람과 비교를 해야 겠다면 분야를 잘 선정하자는 것이다. 행복의 기준점에 따라 그렇게 부럽던 마음도 사라질 수 있다. 꼭 우열을 가리고 싶다면 기준점을 좀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
그런데 정말, 정말로 우리 솔직해져보자. 먹고싶은 닭발에 소주 한잔 걸칠 때 행복하지 않던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차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때 행복하지 않던가?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으며 별 의미도 없는 대화를 나눌 때 즐겁지 않은가? 운전하는데 계속 내가 달리는 길마다 파란불이 될 때 짜릿하지 않은가? 물론 그게 밥먹여주지는 않는다. 정신승리라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세속적이고 객관적인, 혹은 본인이 부족하다 느끼는 기준을 가지고 남을 끝도없이 부러워할 거면 그럴 시간에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노오력에 집중해보는 게 어떻겠는가? 그런데 그것도 끝도 없을텐데 그렇게 살면 인생이 언제쯤 행복해지겠는가? 이젠 좀 행복도 개척적으로 생각해볼 때도 되지 않았는지? 그냥 지나치던 일상의 행복들을 발굴해보면 꽤 많다. 하나하나는 소소해보일지 몰라도 그것들을 모아서 한번 적어보면 부러워하던 그들이 못 느낄법한 행복의 요소들이 많이 있을거다. 그걸 알고나면 적어도 비교질 할 때보단 행복해질 것 같다. 어디선가 봤는데, 행복은 크기보다는 빈도가 영향이 크다고 한다. 그렇게 행복감을 자주 느끼다 보면,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라도 내 인생이 좀 더 근사하게 느껴질거다.
오늘도 옆사람과 비교하며 불행을 버는 당신, 언제나 정답인 치맥이나 한판 때리면서 당신의 숨겨진 행복도 발골해보시기를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