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젠 내가 나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
by
길 위의 앨리스
Jul 5. 2022
지난 어느 토요일 아침.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느날처럼 아침을 일찍 드시고, 잠시 눈을 붙이셨는데 아무래도 내려오시질 않아서
집안일 도와주시는 여사님이 올라가셨다가 발견하셨다고 한다.
주무시며 비교적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가셨다.
꼬박 아흔 해를 사시는 동안 할아버지는 행복하셨을까.
누군가는 호상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후손에게 참으로 상을 주셨다고 하고,
누군가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평소 말씀하시던 형태로 돌아가셨으니 어찌보면 좋은 죽음이라고 할수도 있지만
100살을 노리시던 할아버지의 욕심엔 많이 못 미친 세월이라고 하겠다.
솔직히 우리 할아버지는 독선적이고, 엄하고, 까탈하고, 독설과 갑질의 대마왕 이셨지만,
금전적으로는 그 그늘 아래서 많은 이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도록 해주셨고,
특히 내겐 한번도 찌푸리거나 짜증, 호통, 잔소리 없이 인자하기만 하셨다.
우리 부모님께는 특히 가혹하고 매정하셨지만 말이다.
손주를 안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없겠지만 주변 이들에게 여러모로 고통을 주셨던 것을 비교한다면
나와 내 동생에게만큼은 100퍼센트 후하셨다.
바깥에서 악명이 높으셨던 그분조차도, 손주인 내게는 만사 오케이이시기만 했다.
몇년전 돌아가실뻔한 적이 있었는데 제대로 뵙고 대화를 나눈 건 그때 중환자실에서
가 마지막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가까이 부르며 손을 잡고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 항상 웃으면서 즐겁게, 건강하고, 너 하고싶은거 다 하면서 살거라.
그럼 됐다. 그럼 된거여"
나는 여러 이유로 가족들과 제법 오랜시간 거리를 두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단한번도 쓴소리도 욕도 하지 않았다.
원망의 말도 전하지 않으셨다.
그 성격 대단하신 분이 말이다.
숨을 깊게 헐떡이면서 힘이 든 와중에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며 내게 말씀하시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3년전 그때 할아버지가 내게는 유언을 하셨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입관식을 지켜보며 그때를 떠올렸다.
그런데 난 단 한번도 할아버지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부모님께는 가혹한 분이셨지만 그분에게는 내가 가혹한 손주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 되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나는 몇년간 만나지 않았던 가족들을 어쩔수없이 만나게 되었고,
사람들은 내게 그 세월을 묻지 않았다.
사람들은 물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코로나로 힘든 와중에도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 저마다 잘났다고 떠들어 댔다.
사람들을 관찰하며 죽음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침묵밖에 할 수 없음을 실감했다.
2년전 점을 보러 무당을 찾아갔을때 내게 올해는 좋은 게 들어오는 해라고 들었었다.
그때도 힘든 나날을 보내던 때라 기대했다. 그런데 올해는 그때보다도 안좋은 일들이 많았던 해였다.
그 해의 마지막날을 지나보내며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안타깝게도,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분노. 였다.
분노.
척척이 쌓아두고, 체계적으로 눌러두고 모른척 했던 분노.
생각해보니 틈틈히 조금씩만 분출해가며 폭발하지 않게만 두었던것 같았다.
휴직 직전 나를 힘들게 했던 직장 동료들은 별로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회에는 그런 인간들이 아주 많겠지. 하지만 나는 카르마를 믿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인간들도 상응하는 고통을 겪게 될거라 확신한다.
거기 동조했던 인간들도.
그들도 이미 고통많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대도 분노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 분노를 처리하는 방법을 찾아 멋지게 처리하자.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할 숙제이고 목표다.
그리고. 단순하게 살자.
힘들고 복잡했던 지난날을 잊을 순 없다. 남들이 어떻든간에 나는 내 속도대로, 내 방식대로 내 인생을 살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며 맞춰보려 아둥바둥 살던 그 날들 속에서도 미움은 받을만큼 충분히 받았다.
아니, 눈치를 본 것도 아니고 안 본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미움만 죽실나게 받았다.
그렇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뭐가 있나. 심플하게 내 방식대로 살면 되지.
삶과 죽음은 참 가볍다. 그리고 너무 가까이에 있다.
인생을 남의 기준대로 맞춰살기엔, 내가 너무 아깝다.
누구나 자신이 제일 소중하다. 그런데 그런 남을 존중하느라 나를 존중 못한다면 그건 바보같은 일이다.
올 해는 정말 내 인생을 크게 바꾸는 한 해가 될것 같다.
코로나 와중에도 장례식장을 찾아주신 나의 대부님은 내 손을 잡고 네가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온몸으로 전하시는 진심이 느껴져서 할아버지의 장례식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내가
눈물이 나려 해서 혼났다. 그런 걸 보면 이기적인 유전자는 어쩔수가 없나보다.
이 이기적인 것, 하지만 그런 나를 부정하지 말자.
분노를 슬퍼하지 말고 꼭 이기적으로 잘 사용할 것.
그리고 단순하게 살자. 하루하루 즐겁게.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게.
keyword
직장
휴직
죽음
Brunch Book
휴직을 했다 퀵서비스로2
02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하여
03
노무와 법률 공부를 시작했다
04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05
나는 언제 행복했을까
06
행복을 발골해보자, 치킨먹을 때처럼.
휴직을 했다 퀵서비스로2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13화)
이전 03화
노무와 법률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언제 행복했을까
다음 0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