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와 법률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받은 고통은 누구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by 길 위의 앨리스






나는 공부를 싫어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공부를 해서 알아가는 맛을 한번 보고 나면 누구라도 이런 재미에 분명 빠질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공부는 단지 시험을 위한 학습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는 배움이다. 배움은 나를 더 똑똑하게 해주고, 시련이나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아준다. 배움이 바로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언제 어딘가에서 그걸 써먹을 기회는 반드시 생긴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머리 속에 남는 게 있다는 점에서 나는 공부가 좋다.


몇년 전 억대 전세금을 떼일 위기에 처해 나홀로 소송을 해본 일이 있었다. 소송과정에서 법규와 소송절차, 판례 등을 찾아보면서 나는 은행의 대출담당자보다 전세금 반환보증 기관의 담당자보다도 분야 실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나중에는 전문가인 그들에게 역 문의 전화를 받은 일이 몇번 있다. 나는 매우 헐렁한 사람인데, 어떤 땐 너무 치열하게 파고들어서 내가 바라는 것들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별다른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던 평범한 내겐 어쩌면 어쩔수 없는 후천적인 재주가 아니었을까.


나는 알고싶었다. 회사와 나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고 어느 정도의 보호를 내가 받을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혹시 앞으로도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벌어질 수 있는 불상사에서 나를 보호하고 싶었다. 그리고 좀더 나아가서는 나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일단 노무사 1차 시험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시험에 붙어보겠다는 마음보다는, 노무관련 법규 등 기초를 알아보겠다는 마음이었다. 1차 시험은 노동법 1, 2, 민법, 사회보험법, 그리고 선택과목1의 과목들을 객관식으로 시험을 치러 당락을 결정한다. 과락없이 평균 60점을 넘기면 되는 시험이므로 공부젬병이 아닌 사람들이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충분히 붙을만한 시험이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실망감이었다. 노동관련 분쟁 판례도 그렇고 법규자체가 노동자를 위한다기보다는 사업자 위주였다. 가령 내가 회사에서 부당한 고과를 받았다고 주장해도 그 입증책임은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에 있다. 분쟁에 들어가면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그 고과의 근거를 찾아 둘러댈 수 있다. 내 업무적 퍼포먼스가 김연아급으로 특출나지 않은 이상 아무리 평가가 바닥을 깔아도 부당하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매우 힘들다. 직장 내 괴롭힘도 마찬가지다. 내게만 특정 불이익을 주었다는 것은 제3자 등 회사 내 동료들이 적극 협조해주지 않는 이상 입증이 매우 어렵다. 어떻게 입증한다 해도 사업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만 물고 끝날 확률이 높았다. 우리 회사는 조단위의 사업을 쏟아내는 회사다. 3,000만원이 뭐 큰 대수겠는가. 하지만 나는 온 힘을 다해 싸워도 될까말까다. 이게 현실이었다. 전혀 실익이 없는 싸움이 될 것이 뻔했다.


그러고 나자 힘이 빠졌다. 차라리 민법을 근거로 특정 직원에게 위자료나 그들의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편이 더 위협적일 것 같았다. 허위소문을 낸 사람들을 대상으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방법도 있었다. 기소처분이 내려지는 것만 해도 심리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허위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나는 인트라넷쪽에 IP를 추적해달라고도 할 심산이었다. 익명신고자를 들춰내지 않고 신고자 IP가 나와 관계가 없단 것만 입증하면 되니까. 추적이 안된다는 디스코드나 텔레그램도 추적해낸 수사력을 가진 대한민국 경찰에서 그정도는 해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 학습에 소득이 있다면 그런 결론을 냈다는 것? 고민을 좀 해보자. 나에게는 물리적 증거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내가 얻고자 하는 건 뭘까? 돈? 내가 받은 고통을 돌려주는 것? 그들이 직장을 잃고 그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 나도 꼭 그런 주사위를 던져 남의 피를 보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가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그들은 너무 쉽게 남의 등 뒤에서 쌍욕을 하고, 신나게 알지도 못하는 남의 신상에 대해 떠들어 댔다. 내가 힘들지 않았다면 그냥 재수 없다고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넘기지 못했으니. 그래서 고민이란 걸 해보기로 했다. 어떻게 할 것인지를. 어떠한 방법을 택하든 나는 내 마음이 풀리고 편안해진다면 무엇이 되었든 선택을 할 것이다. 퇴사도 각오한 마당이었으니까.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g e o r g i a 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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