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대하여

흐린 눈과 밝은 눈

by 길 위의 앨리스



나에겐 근시가 있다. 먼 곳을 바라보면 온통 뿌옇게 보인다. 처음엔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점점 가까운 곳의 것도 뿌옇게 흐려진 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밤 운전은 하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날 저녁에도 일찍 귀가하곤 한다. 직장에서 누군가와 마주칠 때면 내가 그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인지하던 하지 않든 간에 그냥 인사를 먼저 한다. 어떨 땐 전혀 관계없는 외부 방문객에게도 인사하기도 하고, 동기한테도 안녕하세요,라고 했다가 가까이서 알아보고 멋쩍게 웃은 기억도 많다. 거울을 볼 때면 잡티가 잘 보이지 않아서 아주 가까이서 얼굴의 변화를 관찰해야만 깨끗이 닦아낼 수 있지만 웬만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연 눈의 뽀샵 효과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게 안경을 쓰는 게 어떠냐며 제발 안경점에 가거나 라식 수술이라도 하라고 권한다. 밤 운전을 매번 피할 수 없는데 위험하지 않냐며 말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세상을 그렇게 꼭 정확하게 볼 필욘 없지 않냐고 응수했다. 흐리게 본 세상이, 내 얼굴이 더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다. 세상을 다 현미경으로 보듯 정확하게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살다 보면, 보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고 보게 되는 부조리가 있다. 사실 어떤 것을 볼 때 그것이 꽃이야, 쓰레기야. 이런 정의를 내리지 못하면 그것이 좋은지 나쁜 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정의가 내려질 만큼의 배경지식이 쌓이면 아무리 아둔한 사람이라도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가 자동으로 구분되는 순간이 온다. 혹은, 오랜 시간의 경험과 지식의 축적으로 판단하기 아주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생각 없이 지나치기에는 매우 중요한 어떤 일의 한가운데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판단에는 부당한 일 같은데, 나보다 더 경험이 많고 지위가 높은 이들의 너무도 당연한 듯 처리되는 관례적이거나 암묵적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야하는 일처리 같은. 그런 것들.

처음에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리송한 어떤 일 속에서 나는 그냥 지나쳤다. 때때로 벌어지는 이상하지만 자잘한 일들은 내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어도 나만 불편하면 되는 일이라면 참았다. 나만 참으면 모두가 편안하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나 역시도 내 뒤의 누군가에게 참음을 전가하게 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불편해졌다. 그때부터는 조금씩 나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혹시나 들지라도, 불편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에 솔직한 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성격이 좋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에서 점차적으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돌하고, 성격(깔) 있으며, “의외인” 직원이라는 평을 듣기 시작했다.


신입시절 성희롱을 일삼았던 멘토직원에게 느꼈던 불쾌함을 몇 달간 참다못해 폭발했을 때도, 그리고 또 그 직원과 함께 손을 맞춰 일해야 했을 때에도 나는 그 직원에 대한 불편함을 공식화하지 않았었다. 물론 난 그 직원에게 그간 벌어진 일과, 내가 느꼈던 점, 상식적인 선에서 이것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 6하 원칙에 따라 쓴 장문의 사내 메일을 전송했고 두 차례의 사과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 대 개인 두 사람의 문제로 남겨놨었다. 처자식을 생각해서 봐달라는 그 경멸스러운 선배 직원에게 응당한 벌을 내리고는 싶었지만 두려웠고 공식적으로 불편해지기가 싫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묻어둠으로써 몇년 만에 겨우 들어온 나의 소중한 후배들에게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학습되지 않은 조직원들로부터 관례적인 비극을 다시금 겪게 하는데 일조 혹은 방조를 했다는 것이 뒤늦게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애가 참 뾰족하다는 평으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정의되는 것은 두려웠지만, 사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잘 못 사는 것이라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학습되어왔던 나의 잘못된 의식이 문제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뒤늦게 그 사건을 공식적으로 문제 삼았고 가해자를 밝히지 않고 처벌을 불원하는 대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성폭력 교육을 주기적으로 받도록 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했다. 그리고 1년 후, 회사에 또다른 사건이 터졌고 가해자“들”은 감봉부터 파면까지 응분의 대가를 치렀다. 이제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성 비위 문제는 아주 예민하다. 그렇기에 혹여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다들 엄청나게 몸을 사린다. 그것이 더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조직 내 먹이사슬의 최하점에 있는 신입들이 그래도 나보다는 그러한 성적 범죄에는 조금 더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유난스런 사람이 되었다. 유난스러워서 회사에 일을 키우는 짓을 했다고 믿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잘한 것일까?





몇 년 전 내가 판 아파트용지에서 오염물질이 나왔었다. 우리 회사는 토지를 원주민으로부터 대가를 주고 강제수용을 한다. 그런 다음, 울퉁불퉁한 땅을 평평하게 바꾸는 작업을 하여 반듯한 모양으로 토지를 다시 갈라 새로운 사람에게 판매를 한다. 그다지 언덕도 없는 오래된 구도심의 한복판인데 우리 회사가 어떤 작업을 어떻게 해서 상품이 만들어지고 그 상품을 판매하게 되었는지 나는 기술적으로는 잘 모른다. 그런데, 일단 판매한 땅에 문제가 있다면 거기에 대한 매도 책임이 발생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판매를 한 부서의 담당자이고, 땅을 조성하는 작업을 한 부서의 담당자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땅에 오염물질이 나왔을 때 이것을 처리하는 부서도 따로 있었다. 나는 땅을 재조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오염물질이라는 것이 왜 발생되며 누구의 잘못인지 잘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을 책임지고 처리하는 부서는 부지를 조성하고 처리를 하는 부서에서 하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세일즈맨이 리콜을 책임지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그 부서는 말이 없었다.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부서에서 너네가 판매담당이었으니 책임을 지라고 했다. 돈을 얼마나 줄지 오염물 처리를 어떻게 해줄지 말이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하는 결정을 내리라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상대방이 부담해달라고 한 비용 전액을 책임지는 방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물건에 하자가 있으니까.


그런데 관련부서에서 클레임이 왔다. 비용을 다 지급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 회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그럼 자기들이 결정해서 알려주던가!) 사실 상식선에서 생각해보면 토지는 상품이고 판매를 할거면 건물을 지을땅이니까 그 행위에 적합한지 알기 위해서도 환경조사는 당연히 하는 일이고, 우리회사가 원래주인에게서 토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이루어졌었어야 한다. 그래서 쉬쉬하지만, 이걸 당연히 물건을 만든 부서에서 했을 것이다. 오염물질의 존재도 알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것을 그냥 눈을 감고 팔라고 넘겼던 것일까? 거기서부터가 문제였으며, 결국 그런 책임을 덮은 부서에서 책임을 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담당 기술부서들은 자신들은 용역을 감독하기만 했다며 그냥 운이 없었던 거라고만 했다. 어이가 없었다. 고질적으로 이 회사는 윤리의식이 없구나. 나는 실망했다.


목소리를 높이던 나에게 팀장은 조용히 불러다가 참을 인 자를 노트에 쓰셨다. 참으라고. 나도 네 나이 때는 화가 났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들에 조금은 초연해지게 된다며. 하긴, 참는 것 외에는 그렇다고 내가 어디에 제보를 할 능력도 없고 (기술적으로 잘 모르니까!) 그런 내게 사람들은 모르면 배워서 일하면 될 거 아니냐고 비아냥댔다. 아, 문학을 전공한 사무직도 폐기물 처리반에 보내면 화학적 폐기물 처리 방식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 맞지. 폐기물 처리반에 왜 보냈냐고 하면 안 되는 거지.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며, 받아들이기에 따라 너의 발전도 쓰임도 결정되는 것이라고. Everything's up to you. 이게 우리 회사의 상식이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럴 거면 전문직종은 왜 따로 뽑겠는가.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러려고 팀을 나눠서 일을 하는건데. 내 생각은 그랬으나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매우 비상식적인, 일을 미루는 비호감 직원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부의 재분배와 함께 주거안정에 기여한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에게 터전은 소중한 것이다. 내가 어릴 적 놀던 시골 할머니 댁은 큰 은행나무와 야트막한 대추나무, 앵두나무 등 나의 어릴 적 친구들이 모여 있던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는 대문 옆으로 뻗은 대추나무를 타고 옥상 위로 올라가서 동네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연두색 대추열매가 열리는 계절이 되면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따기도 해서 한데 모아 할머니께 드리기도 하고, 붉은 앵두가 열리면 오다가다 따먹기도 했다. 특히 설익은 연두 대추는 참 달고 맛있었다. 나무들 근처로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집에 부가 들어온다고 엄청 큰 비단잉어들을 풀어놓았었다. 입을 뻐끔거리는 잉어들을 구경하느라고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엄청 좁은 구름다리 같은 곳에서 한참을 연못만 바라보다 물고기 밥을 한알씩 떨어뜨리기도 했었다. 동네 친구들을 모아놓고 소꿉장난도 하고, 우리 집 마당에서 한참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그런 소중한 추억이 있는 나의 고향도 우리 회사가 강제수용을 한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땅을 뺏어서 주는 보상금은 사실 터전을 빼앗기는 선택밖에는 여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터무니없이 적다. 몇십 년 된 구옥이지만 전용면적 30여 평의 단독주택 그것도 마당이 큼지막하게 딸린 오래된 할머니댁 평가액은 고작 4천만원이다. (물론 토지의 가치는 별도이고 그 가치가 크기 때문에 이견이 있을수 있다) 3층짜리 신축 단독주택의 평가액은 더 기가 막히다. 확실한 건 그 돈으론 15평짜리 인근 아파트 전세도 구할 수 없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그런 인간적 의리로 돈을 많이 줄 수 있냐 하면 이해관계상 그것도 안될 일일 테다. 왜냐면, 보상금을 많이 주고 땅을 재조성하는데 또 돈을 쓰면 우리 회사에는 남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다 떠나서, 추억이 있고 삶이 있는 터전을 내 의지와 달리 돈을 받고 나온다면 얼마 주면 없애도 괜찮은건지 환산할 수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용지 조성이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그냥 땅 짚고 헤엄치는 것 같다. 헤엄을 치는 데 여러 가지 용역이 들어가고, 그 기술적으로 복잡한 용역에 꽤 비싼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래서 내가 지금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내가, 백몇 대 일을 뚫고 어렵게 어렵게 취업한 회사고 일하고 월급 받는데 여기서 먹고사는 게 무슨 문제냐고 묻는다면 그건 흐린 눈이다. 또렷한 눈으로 보면 나는, 내 고향을 빼앗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머저리 같고 능력 없는 인간이다. 몇 년 전 그 사실이 확정된 이후로, 그리고 그놈의 우라질 토양오염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이후로 계속 마음속에는 죄책감과 무력감이 아른거렸다.


그렇다고 내게 어마어마한 돈이 있다거나, 뛰어난 머리나 빼어난 외모, 빛나는 재주가 있어서 다른 먹거리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내 생각을 내려놓고 닥치고 일하는 게 어때?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길고 긴 정년까지 말이다. 닥치고 일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이 이미 존재하는데 그 생각이 지워질지는 잘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지우려고 노력은 하겠지. 남의 집에 들어가서 난도질하고 나와 번 돈으로 살면서도 모두 잊고 살 수 있다면 어쩌면 행복한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앞에 누군가 그런 짓을 하고도 양심이라는 것이 작동을 하지 않는 인간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를 싸이코패스라고 부를 것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흐린 눈이어야 하는가. 정확한 눈이어야 하는가. 난 사실 답을 알 수 없었다. 지금은 흐린 눈으로 살고 있으니까.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계절의 바람을 쐬며 커피를 마시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향해 나는 출근 안하지롱 메롱을 외치며 순간순간에 감사함과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휴직중이다) 오늘 먹은 순대국밥에도, 건강한 부모님에게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이미 타고난 나의 저 깊은 속 어디선가에 암덩어리처럼 죽지도 않고 끈덕지게 붙어있는 이 빌어먹을 세포놈이 내게 자꾸 말한다. 이 무능하고 비열하고 멍청하고 치사스러운 것아. 등신처럼 그러고 살고 싶냐? 진심이다. 그게 내 진심이었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깨닫게 된 거다.



나는 등신인데, 나도 등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몇 년 전 읽은 책 중에 “남아있는 나날”이라는 책이 있는데 정말 그 주인공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양심의 소리에 자신 있게 소신을 외치며 이 세상을 밝히는 먼지처럼 아주 비루하지만 꼭 필요한 소금이 되고 싶었다. 나치의 앞잡이 주인을 위해 그 주인의 충성스럽고 프로페셔널 한 집사로 살며 자신의 사랑도 삶도 없이 자신의 소명이 아주 대단한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평생을 살아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미래를 위한 그 어떠한 자아성찰도 없었던. 그런 집사.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러고 살고 있다.



죽고 싶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나는 약을 먹으며 흐린 눈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나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며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답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고 살기에 나란 존재는 너무도 약하고, 보잘것없다. 그리고, 나를 비아냥대는 세상을 쌩 무시하며 살 용기도 별로 없다. 그 답을 철저히 모른척하며 가면을 쓰고 웃으면, 사람들은 나의 병이 나아간다고 착각한다. 나조차도 그 가면에 잘 속고 있다. 그래도 문득문득, 내 안의 내가 튀어나와서 다시 각성시킨다. 열심히 나은 척하면서 살다가 보면 약을 끊게 되겠지. 그렇게 평온한 척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또 내 안의 양심의 소리가 커질 때면 나는 다시 같은 병에 걸릴 테지. 내 인생이 엄청나게 뒤집히지 않는 한 이 루트는 무한 반복되며 늙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음이 두려워서 계속 살고 싶어 할까? 잘 모르겠다.






언젠가 밝은 눈으로 살아도 밤에 자려 누울 때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왔으면 정말 좋겠다. 그때가 되면 진심으로 삶이라는 축제의 한 순간순간을 의미 있고 소중하다고 마음속 깊이 느끼고 생각할 것이다. 그냥 삶 자체를 축복으로 여기라는 말에 속을 만큼 순진하지도 어리지도 않은 나이가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냥 하루하루 신나고 즐겁게 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뜨셨지만. 그러기엔 삶은 복잡한 숙제 투성이다. 그 숙제를 오롯한 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풀어낼지 결정하는 것은 말이 쉽지 엄청난 용기가, 죽음을 뛰어넘는 각오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흐린 눈인 척 사느라 긴 세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 버렸다.


핑계 같겠지만 정말이지 피곤하다.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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