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꼬박 채우며 다닌 남들이 말하는 '신이 내린 직장'에서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회사는 나를 마치 삐거덕거리는 선반에 임시로 받쳐 둔 나사나 볼트 쯤으로 여기는 듯 했다. 눈엣가시 같지만 필요는 해서 억지로억지로 구겨넣어야 하는 자리 쯤에 넣어두고, 뭔가 튀어나올거 같으면 망치로 후려쳐서 안보이게 숨기는 그런 존재. 회사는 나를 그런 못난이 나사못 취급했다.
그렇다고 내가 연예인이 되고싶거나 빛나는 회사의 스타급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게 아니었다. 그냥, 나는 나사못이 아니었다. 처음 취업했을 땐 그냥 나도 얼레벌레 회사에 파란 목줄 차고 당당하게 다닐수 있는 프리패스를 얻은 것 마냥 뭔가 막연한 프라이드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막내라서 간식거리를 6년 7년간 담당했을 때도 그래, 내가 이 회사 사람들의 빡침지수를 내려주는 중요한 존재야 라며 정신승리를 했었다. 힘들고 아무도 안하고싶은 설거지같은 일만 시킬때도 언젠가는 내게도 순서가 오겠지 하며 기다렸고 참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정신승리가 먹히지가 않았다. 회사가 나의 숨겨놓고픈 단점이나 흑역사를 뻔히 안다면 나 역시도 회사의 부조리와 바닥에 대해 잘 아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애사심으로 내 밥벌이가 되는 직장을 수호한다는 그런 마음이 들기보다, 그냥 이곳은 쓰레기구나. 라는 실망이 쌓여만 갔다. 마치 바닥을 보아버린 위기의 부부처럼. 그렇게 나를 나사 취급하는 회사가 싫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연명하는 나도 싫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던 어느날, 터질 게 터졌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하면서 말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침대 위였다. 그리고 더 정신을 차려보니 정신과 였다.
“안 죽어요.” 라고 의사는 말했다. 솔직히 말해 한 대 치고 싶었다. 안 죽는게 더 짜증나거든? 왜냐면 죽지도 않는데 죽어가는 고통을 갑자기 느끼고 자빠져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데 죽지도 않아봐라.
그리고 또 의사는 말했다. “그럴 땐 심호흡을 하세요.” 죽을 때 심호흡이 되는거면 죽는 거란 생각도 안 든다. 그리고 의사는 또 말했다. “잠깐 근처 커피숍이라도 들어가서 시원한 거 시켜서 앉아계세요.” 저기요 선생님. 그게 되면 여기 안 왔거든요.
나는 절망했다. 전문가인 의사를 찾아왔는데 의사가 이런 말을 하면 내가 미쳤거나 나는 어디서고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았다. 몸뚱이는 살아있는데 산 게 아닌.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정신이 죽은 채로 나는 그냥 회사를 위태롭게 왔다, 갔다 했다. 어느날은 운전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운전석에서 내가 졸고 앉아있었다.
가족들이 이런 내가 너무 위태로워 보였는지 시시때때로 회사를 쉬라고 말했다. 이건 아닌 거 같다고.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나의 부모님 두 분 다 공황장애를 앓아본 사람이어서 이런 나의 상태를 의사보다는 더 이해해 주었다. 조금만 더 버텨볼게. 나는 말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예 상황 판단 자체가 안되는 상태였던 것 같다. 정말로 정말로 죽는 것보단 낫겠다 싶을 때. 진짜 쥐어 짜낸 에너지가 다 소진되었을 때. 나는 진단서를 첨부해서 휴직계를 냈다.
저. 그만하겠습니다.
그런 내게 회사는 종합병원에 다시 가서 소견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내가 진단서를 받으려면 예약을 해야하고, 그 예약은 하루이틀 만에 되는 곳이 없을 정도로 예약이 꽉 차있는 곳이 정신과였다. 그리고, 나를 3개월이상 진찰한 의사보다 종합병원 의사가 나를 더 잘 진단할수 있을까? 그러려면 나는 또 몇달을 기다려야 한다. 사규에는 진단서라고만 되어있지 종합병원 진단서라고 되어있지 않았다. 그 말은, 너를 못 믿겠으니 버티든 말든 더더더 증명해봐. 이거였다. 정말 끝까지 더럽게 나오는 곳이 회사구나 느꼈다.
나는 인사팀에 물었다. 그런 사규가 어디 있을까요? 나는 그럴 기운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으니 규정대로 하시지요.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휴가를 냈고, 짐도 가족들을 동원해 빼 왔다. 그리고 휴직계는 퀵서비스를 시켜 인사팀으로 보냈다. 인간이 돌아버리면 진짜 뒤를 돌아보지 않게 된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겠는데 휴직계가 대수며 인수인계고 나발이고 니들이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난 그런 걸 신경 쓸 체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인생의 중환자실로 혼자 기어 들어갔다.
정말 토할 거 같이 울렁거렸던 몸의 상태가 갑자기 좋아지진 않았지만 회사를 안 나가고 멍하니 누워있다 보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화장실 문도 못 닫고 사람많은 곳엔 갈 수가 없었다. 현재의 내가 돌아보았을 때 상태가 그쯤 되면 산재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회사가 아닌 다른 요인이 얼마나 포함이 될지 모르지만 나는 안다. 내 몸속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있다면 그건 회사였다.
내가 아는 노무지식을 총 동원하면 회사를 상대로 소송도 걸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너도 박살나봐라 마음먹고 죽어라고 소송할 수 있겠지만 그 큰 조직이 나 하나 정도로 뭐 박살이나 나겠는가. 현실적으로 내 인생이 박살나겠지. 나는 그냥 내 몸 하나 추스르는 데에만 당분간은 집중하기로 했다. 소송은 그 다음에 고민하도록 하자. 그것조차도 내 자신이 죽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