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후 7년차에 처음으로 부서를 옮기고, 머리아픈 업무들에서 벗어나 가벼운 업무를 맡고 있을 때
한달쯤인가 지나서 새로운 부서장이 나를 따로 불렀을때가 기억난다.
그는 내게 전 부서에서 무슨일을 했냐며 물었고 나는 내가 했던 프로젝트들을 설명했다.
내가 했던 일은 민관 합동 프로젝트로 공공개발과 수익개발 프로젝트를 연결해서 개발수익금으로 공공개발을 하는 중장기 사업들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전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법인이 업무를 진행하기 위한 의사결정 및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는 역할이었다.
부동산개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사업규모는 최소 몇천억에서 크게는 조 단위 사업도 있었다.
그 몇천억이 되는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법인의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되는데 그들이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현안별 기초 검토 및 1차 판단은 내 손 끝에서 나온다. 물론 기초 안건에 대해서는 법인의 직원들이 사무처리를 해 오지만 인력, 회계, 건설, 계약, 금융 등 오만가지 분야를 어느수준까진 습득을 해야 최소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 검토할 수 있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업무였고 이걸 입사 2년차 대리시절부터 6년차 과장시절까지 했는데 그 연차에는 조금 버거운 업무였다.
하지만 새로운 부서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일들은 그저 이사회에서 찬성, 반대 이것만 위에서 결정해주는대로 자료 대충 만들고 하면 되지 않냐며 그게 큰 일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네가 입사하고 나서 한게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너는 6년동안 놀았다. 그 말이었다.
한달동안 지켜본 결과 자네는 어떤 것이 부족하고, 내가 어떤 부분을 더 채웠으면 한다는 지적이었다면
그렇게 오래 힘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평가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내게는 그 말이 내 시간과 열정을 바쳐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의 지난 6년을
통째로 모욕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 후 나는 근무평가에서 부서 내 꼴찌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몇년 후, 그는 그가 별 일 아니었다고 한 그 업무들을 담당하는 임원이 되었고 나 역시 그 프로젝트 담당부서로 다시 이동하여 그와함께 일을 했다. 지금에 와서 그때 당신이 내게 그런 말을 했는데 지금도 똑같이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그때같은 헛소리는 못할 것임에는 확신한다.
다만, 그런 망언을 해댄 전력을 고려할 때 그는 본인의 위치에서 하는 업무만 힘들지 실무자들은 안 힘들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생각은 다 각자의 몫이다. 내게있어 문제는, 그런 편협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의 상사이며, 내 인사권을 휘두른다는 사실이다.
꼭 특정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멋모르는 신입시절을 지나고 나서부터 어느시점부턴가 내가 죽도록 노력하는 것이 회사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내 삶을 갈아 포기하면서까지 희생하는 게 하찮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생각하게 된 후로, 나는 회사가 고맙고 좋기보다는 나를 좀먹는 장소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과 객관적으로 잘 구축된 제도적 복지는 인정한다.
그런데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존재는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삼시세끼 따뜻한 밥과 안정적 급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장
구성원이라는 객관적 스펙만으로도 만족해야 정상 아니냐고 할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 꼬박 매일10시간 정도를 보내야 하는 장소에서 매 순간
모멸감을, 자존감의 상실을 경험한다면 좋은 직장이라고 할수 있을까.
상사들은 모두가 다 한결같이 너는 일을 잘하지만 넌 같은 급에서 나이가 어리고 그래서 평가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이런 말뿐이다.
다 좋다. 평가점수가 연공서열에서 밀려서 어쩔수 없다면 그것도 받아들이겠다.
그렇지만 제발 좀 드라이하고 담백하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명확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갖춘 evaluation을 한번이라도 받을 수는 없었을까.
왜 늘 술자리에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평가는 상사의 공식적 업무인데 말이다.
심지어 인턴 때도 한달에 한번 이루어졌던 그 평가는, 이 회사에서 십수년간 단 한번도 받지 못했다.
내가 했던 프로젝트는 부동산 개발분야라 정치인들과 정치생태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정치적인 이유로
시작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마무리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회사 내에서 많이 꺼려하는 일들이었다. 골치아프고, 잘해야 본전이며, 시끄러워지면 잔뜩 욕을 먹어야 해서 윗사람 입장에서는 갖다버리고 싶은 그런 업무. 속칭 "똥치우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일을 꽤 오랜 시간 했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이 일은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내게는 익숙한 일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있었어도 일 자체가 두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계속 하고싶지는 않았다. 쓰레기 치우고 똥치우는데 익숙해졌다고 그 일만 하고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회사가 내게 바라는 건 너에게 익숙해진 그 모두가 꺼리는 일을 처리하는 것,
신경도 쓰고싶지 않으니 조용히 처리하라는 것.
그저 너는 별로 달갑지도 않고 그러나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은 네가 오래 했으니
주구장창 그거나 닥치고 계속 때우라는 것.
그렇지만 너는 꼴찌라는 것.
회사는, 그리고 내 윗사람들은 그렇게 내게 몇년간 모멸감을 주었다.
진단서를 내미는 내게 안그래도 두달 뒤 업무를 바꿔주려 했다며 그제서야 다 안다는 식으로 말을 하던 상사에게 송장이라도 치우고 그 소리 하지 그랬냐고는 하지 않았다. 직장이란 그런 것인가보다. 볼트도 너트도 과한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삐걱거린다. 알았을때 제때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면 완전히 망가져버린다.
하물며 아무리 말단 직원이라도 조짐을 알았다면 적절한 조치는 취해졌어야 맞다. 그런데 그들은 알고서도 침묵했다. 물론, 하찮은 직원 한명의 안위보다는 시급하고 긴요한 일들이 많다. 하지만 내게는 내 안위가 최고로 중요하다.
내 질병의 원인을 묻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한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떠오르는 얼굴 몇몇은 있다.
지난 넉달동안 여러번의 공황발작을 겪으며 미련하게 참아온 나의 문제도 있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웠어도 그래, 나 아픕니다. 어떻게 해주겠냐고 진작 말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30년 이상 살아온 미련한 성격으로 등신처럼 눈치만 보며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아 웃었다. 내가 나를 업신여긴 것이다. 남들이사 그렇다 치더라도,
회사따위가 나를 볼트 취급해도,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상황 상 마땅히 그 직장을 벗어나야 이 병이 치유되는거라 해도, 지극히 평범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시험보는 재주로 겨우 직장생활하는 백면서생같은 내가 바로 이직할만한 특출난 재능이 딱히 있는것도 아니어서 당장 사직서를 날릴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배부른 돼지로 정신적 학대를 당하며 회사를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때론 존버가 헬게이트 오픈의 지름길일 수도 있어요 아저씨.
처음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을때, 3개월까지를 데드라인으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3개월을 버텨보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모든걸 그만두리라.
솔직히 처음보단 많이 나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단서와 약의 종류로 봤을때 중증 이상이었다.
처음엔 내가 왜 , 뭐때문에 이런 고통을 겪는지 알수 없었다.
휴직계를 내밀었을때 그들의 반응도 그랬다. "원인이 뭔가?"
그들이 그걸 알았다면 지금껏 아팠을까?
이유를 찾자면 나의 오랜 경험이 크지 않겠는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다가 급작스레 낸 휴직계는 다행스럽게도 모두 결재가 났고, 빠르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