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아 나는 출근 안하지롱!

목적없는 삶이 주는 회복

by 길 위의 앨리스

휴직을 한 후에 나는 조금씩 좋아졌다. 거의 누워만 있기도 했지만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아프고 나니 부모님이 내가 무슨 짓을 하건 그냥 있는 그대로 놔둔다는 것이다.


나의 부모는 30년 동안 그래본 적이 없다.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엄청난 참견과 잔소리와 제재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누워만 있고 집안일도 안하고 어떤 날은 생전 하지도 않던 게임을 하루종일 해도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게 신기했다. 어린 아이일 때에도 나는 눈치를 보느라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아주 어릴 적 내가 친척들과 먹는 밥상에서도 눈치를 보며 맛있는 반찬을 조금만 먹었었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가 아파도 아프단 소릴 안 하고 혼자서 끙끙 앓기만 해서 엄마는 내가 열이 펄펄 끓어서 정신을 잃을 때쯤 되어야 애가 아픈 걸 알아차리곤 했다고 했다. 내 어릴 적 기억에 부모님은 늘 화가 나 있거나 신경이 날카로웠다. 그러니 내 입장에선 눈치를 안 볼래야 안 볼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혹여라도 실수로 밥상에서 소리를 잘못 내거나 상을 조금만 흔들어도 밥그릇이 날라오곤 했었으니.

그렇게 자라온 내게 이런 꿀은 생전 처음이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내 상태가 그 정도로 안 좋아 보였나 보다. 어찌됐든, 나는 근 40년만에 처음으로 정말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진정한 휴식기를 맞이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업이 있었다. 졸업 후엔 취업이 있었다. 취업 후엔 직업이 있었다. 그때도 휴식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 휴식은 늘 시한부였으며 본업을 잘 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었다. 물론 지금도 휴직이기 때문에 직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내 맘속에서 직업에 대해서는 지워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담이 없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휴식시간은 내가 기억하는 한은 생애 처음 맞는 것 같다.


숨을 돌리고 나니 그제서야 출근하는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꾸역꾸역 출근하고 있을 저 회색 차도의 차가운 차들. 나는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메롱, 나는 출근 안하지롱~!” 부모님은 그런 내게조차 미친년이라고 욕하지 않으셨다. 나는 기쁨의 외적 댄스와 함께 기타를 쳤다. 노래제목은 백수의 기쁨. 요양휴직을 낸 내게는 기본급의 70퍼센트의 봉급이 나왔다. 큰돈은 아니고 겨우 먹고 살 정도였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나는 부모님께 거의 기생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피할 수 있었다. 정서적인 안정도 많이 되찾고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집의 대왕 늙은이 멍멍이의 공도 컸다. 그 녀석도 많이 늙어서 귀찮아 했지만 내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그 친구를 쓰다듬으면 정말 정서적인 안정이 오는 것 같았다. 촉촉하고 까만 코에다 뽀뽀를 할 때면 살면서 정말 한번도 나온 적 없는 옥시토신이 나오는 것 같다. 정말 친구처럼 우리는 서로 으르렁 거리기도 하고 뭐하나 기웃거리기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 사람보다 동물이 낫다 싶었다. 적어도 우리 강아지는 남들하고 내 뒷담화도 안하고 상처주는 말도 안 하니까.


증상이 조금씩 호전되고 공황발작이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들다 보니 정말 살 만했다. 공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상황이나 일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황이 찾아오고 극한의 공포를 경험하고 나면 그때 그 장소나 상황을 극도로 두려워하며 피하게 되는데, 나도 그런 경험으로 사람이 있는 트여있는 공간이나 물건이 많은 매장을 피했었다. 하지만 발작이 좀 적어지면서 약을 먹고 누군가와 동행해서 가 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혼자 운동도 하러 상가를 출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가는 내 집에 비해 저층에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는 공포감도 많이 적어졌다.


생전 안가던 백화점 매장에도 가 보았다. 사람들에겐 사소한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데 못하다가 하니까

그게 그렇게 좋더라. 아, 나도 살 수 있구나, 하는 엄청난 기쁨이 밀려왔다. 그러니까 조금은 행복한 것도 같았다.





회사가 나의 문제였다면 그만두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시간이 남아도니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특성과 분위기 이런 것들이 맞는건가? 내가 함께하고 싶은 미래에 있는 직장인가?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동료가 있어도 아닌 건 아니었다. 그 좋은 동료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사람들은 내가 돌아올 직장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거라고 말했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생애 처음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백수가 어쩌면 체질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철없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렇대도 상관없다. 내 시간을 저당잡히지 않고 누군가의 눈치보지 않고 어딘가에 누워 게으르게 보내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아왔는가 싶었다. 그렇게 안 살면 죽는 것도 아닌데. 굶어 죽을 땐 굶어죽더라도 하루라도 좀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면 안되는 걸까. 꾸역꾸역 또 퇴근하는 차들이 아파트를 지나간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구나. 내일이 무슨 요일이더라. 무슨상관. 난 내일도 출근하지 않는다. 내일도 나는 아주 푹 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