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한번 해보세요."
우울증과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의사가 처방하는 건 약뿐만이 아니다. 나의 주치의는 필라테스를 추천했다. 요가의 경우 호흡을 하다 과호흡이 와서 발작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차라리 개인강습 필라테스를 해보라고 권했다. 필라테스도 호흡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데 괜찮을까? 의문이었지만 해보기로 했다.
학원에 가보니 수강생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이것저것 기록하도록 종이를 내주었다. 지병이나 몸상태, 개선하고 싶은 부분 등을 적게 되어있는데 지병에 “우울증”과 “공황장애”라고 썼다. 약을 먹고있는지도 체크했다. 나는 선생님이 놀라거나 뭘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부분은 보질 못한 건지 전혀 묻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그런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건가. 싶었다.
나는 운동신경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어릴 적엔 거의 밖에서 살다시피 했었고 초, 중학생 때는 매일 운동에 따로 1~2시간을 투자했다.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쉬는 시간에 줄넘기 등 가벼운 운동을 했었고 방학 때는 수영도 다녔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았었다가 첫 남친과 이별 후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새벽요가를 다녔다. 요가만 다녀오고 나면 숙면에 빠져들어 불면의 밤은 귀신같이 사라지는 마법같은 운동이었다. 운동의 순기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다 공황이 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 병을 인정하고 차츰 나아지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했다.
나는 찔 대로 찐 몸뚱이에 맞는 필라테스복을 구입했다.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살을 내놓고 쫄쫄이를 입은 채 다리를 벌릴 생각만 해도 너무 부끄러웠다. 게다가 필라테스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키는 나보다 크고, 머리통은 작았으며 특히나 이 몸통이 나의 거의 반 정도의 수준일 정도로 가녀렸다. 운동을 그렇게 잘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가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의 전담 선생님은 연예인을 닮은 예쁜 여자분이셨다. 몸이 잔뜩 굳어있는 내게 맞게 스트레칭을 주로 시켰다. 제일 먼저 가르쳐 준 것은 흉통으로 하는 호흡법이었다. 코로 들이마시면서 갈비뼈를 잔뜩 늘려 숨을 채우고, 입으로 내쉬면서 갈비뼈를 최대한 수축시켜 몸통을 줄이는 방법으로 이 호흡만 해도 몸통의 근육을 쓰는 것 같았다. 이런 호흡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별 운동 안한 것 같은데도 땀이 비오듯 흘렀다. 그리고 동작에 집중을 하다보니 시간가는 것도 잊었다. 50분의 레슨은 거의 대부분 순삭이었고 움직이지 않을 때는 잘 씻지 않던 나도 운동하고 돌아오면 어쩔 수 없이 씻게 되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 정말 중증이었던 게 맞는 거 같다. 한없이 누워있었고 먹는 것도 귀찮았다. 배불리 먹으면 꼭 30분 후에는 불안증세가 나타났고 심하면 공황발작이 왔다. 그러니 먹는 게 두려웠다. 당연히 씻는 것도 귀찮았다. 내가 씻는 걸 귀찮아할 사람이 아닌데도 그렇게 무기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빨리 시작하게 된 건 어떻게든 그 공황발작의 공포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약도 꼬박꼬박 먹고 일정한 시간에 눕는데도 증세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의사의 운동하라는 말 한마디에 얼른 운동을 등록할 밖에.
운동을 하고나면 근육통으로 몸이 아프기는 했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좌골신경통 증상이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운동 시간만큼은 잡념이 사라져 머리가 맑아졌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무엇인지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제일 좋을 때는 분명 처음엔 되지 않던 동작이 될 때였다. 아, 되는구나. 나같이 몸이 굳은 사람도 계속 하다보니 되는구나 하는 작은 성취감.
그리고 더 좋은 것은 운동을 하면서 살이 눈에 띄게 빠졌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를 나가지 않으면서 스트레스에서 오는 붓기가 차츰 사라지고, 당류 등 군것질을 일절 하지 않는 식이 습관의 영향도 있었지만 잔근육이 붙은 몸의 변화를 보는 것이 우울증 완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수시로 전신거울로 몸을 살폈다. 몸의 라인이 눈에 띄게 변화하는 것이 보였다. 회사에서 다 깎아먹은 자존감은 조금씩 운동으로 다시 차곡차곡 채우고 있었다. 상사와는 달리 필라테스 선생님은 나의 몸 상태에 맞게 운동강도를 서서히 늘렸고 또 수시로 잘했다는 칭찬도 해줬다. 별 것 아닌 거 같지만 그 상태의 나에게는 그 시간들이 정말 필요했다. 누군가에겐 그냥 운동일 뿐이었지만 내게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치료의 시간들이었다.
어떤 상사가 내가 휴직계를 내겠다고 했을 때 그랬다. 너의 병은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우울증 같은 신경정신과적 질환을 의지나 노력여부로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말은 당사자에겐 이렇게 들린다. 네 정신력이 약해서 생긴 병이야. 그런데 걷다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진 환자에게 ‘네가 부주의하고 뼈가 약해서 생긴 병이야’ 라고 생각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런데 왜 유독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그런 험한 말을 해대는지 모르겠다. 노력해서 뼈가 붙지 않는 것처럼, 우울증과 공황장애 환자들도 정신력을 키워서 낫는 게 아니다. 안정과 시간, 그리고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같았으면 그런 말 하는 인간에게 "그건 니 생각이고" 라고 하면서 "그딴 소리를 위로라고 할 거면 차라리 닥치라고" 할수 있는데 그땐 그럴 기운이 없었다.
운동얘기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지만 모든 환자에게 운동하라고 말한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좋은 것도 다 때가 있고 그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도 버거운데 운동하라고 말하는 건 또다른 폭력이다. 내가 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지만,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누군가에게 또다른 스트레스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냥 난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성취감도 좋았고, 몸의 변화도 좋았고, 다 좋았지만
몸 한번 움직이는 걸로도 잘했어요. 잘 하고 있어요.
해주던 그 한마디가 나를 일어서게 했다는 걸.
나는 지금도 그 필라테스 학원에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