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신생아를 지향했으나 욕심많은 베짱이가 되었다
나는 태어나서 학생 때도 취준생 때도 이렇게 목적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거린 적이 없다. 갓난아기 때 빼고는 이렇게 뒹굴거리며 빈둥대는 거는 기억력이 허락하는 저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중 최초다. 공허감이나 어색함 따위는 1도 찾아오지 않았다. 내 마음은 그저 편안하기만 했다. 너무 지쳤으니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볼테다. 신생아로 돌아간 것처럼 살 테다. 나는 하루종일 배가 조금 채워질 만큼만 먹고, 다시 자고를 반복했다. 지루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생애 가장 만족스러운 나날들이었다.
우울증이라고 신체증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골반 오른쪽 안쪽 신경이 욱씬거려서 그쪽에 찜질팩을 대고 앉았다 일어났다 해야했다. 좌골 신경이 찌릿한 고통과 함께 척추신경도 쑤시는데 그 기분나쁜 신경 찌릿함이 힘들어도 회사 안가서 너무 좋았다.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여기서 꼭 한마디 하고 싶은 게, 우리가 배가 고파서 일하는 거지 배가 안 고프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해도 전혀 허전하지도 지루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난 그랬다. 사주볼 때마다 나는 개미같이 살면서 끝까지 일할 팔자라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나의 본성은 개미가 아니라 베짱이다. 정말 확실하다.
약을 먹으면 조금 둔해져서 찌릿하던 골반의 통증도 잠시 잊을 정도가 된다. 신체증상도 정신과 약으로 통제가 되는지 몰랐다. 통증도 가시고, 잠도 안 올 때는 강아지랑 놀았다. 우리 강아지는 강아지란 말이 무색하게 늙은 개다. 16살. 하지만 여전히 이빨도 튼튼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해서 귀찮을 때 부르거나 만지면 으르렁 거린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지. 노즈워크용 판에 간식을 숨겨놓거나 집안 곳곳에 간식 조각을 숨겨놓고 보물찾기를 시키면 그 늙은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번쩍 뜨여서 신나게 킁킁거리며 간식탐험을 떠난다. 그러고 나서 배가 부르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사라지기 전에 잽싸게 이 녀석을 쓰다듬으며 애정표현을 해준다. 그럼 녀석도 마음이 좋아져서 생전 안하던 벌러덩 재끼기도 보여준다.
나의 친구 강아지. 나잇값 하느라고 좀처럼 안하는 벌러덩을 보여주고 있다.
아. 넌 좋겠다. 존재만으로도 사랑받는 강아지가 무척 부러웠다. 그리고 나도 녀석처럼 눈이 번쩍 뜨일만큼 즐겁고 신나는 뭔가가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누군가 명화 따라그리기 세트를 시켜서 그림을 그린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쿠팡을 켰다. 나는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왠지 직접 그리다 보면 잡념도 사라지고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 검색해보니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그래서 명화 따라그리기 세트를 시켰고 그날부터 나는 무념무상의 태도로 그림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림마다 다르긴 하지만 칸이 조그맣게 나눠져 있어 어릴 때 하던 색칠놀이 수준이 아니었다. 눈이 나빠질 참이었지만 재미가 있었다. 이게 그 모양이 나올까? 싶은데 계속해서 시키는 대로 칠하다보면 정말 얼추 그 명화가 된다. 그렇게 한 2-3일에 1작품씩 완성하다 보니 한 30개 정도 그렸다. 고흐, 클림트, 르누아르...비록 따라 칠하는 것이었지만 내 손으로 그런 명화들을 만들어낸다는 게 신기하고 뿌듯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내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냥 빈 캔버스를 시켰다. 내가 기억하는 행복했던 어느 순간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내가 웃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저 색칠 좀 하고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짓을 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재밌지? 아무튼 난 그냥 재밌는 일을 했다.
얼핏 보면 나쁘지 않아보이는 그림 따라그리기. 하지만 누구나 끝까지 하면 이정도는 할수 있다.
휴직하기 전부터 직장 선배가 권유해서 한 취미생활이 있다. 바로 꽃꽂이다. 나는 꽃을 좋아해서 원데이 클래스로 몇 년 전에 꽃꽂이를 배워본 적이 있고 기분전환을 위해서도 주기적으로 화원에 들러 꽃을 사서 집에 꽂아두곤 했다. 그래서 꽃꽂이 자체는 너무 좋았는데 한가지 망설여지는 지점이 있었다.
문제는 그 꽃꽂이 강의 장소가 백화점 문화센터였단 점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선배에게 나의 공황장애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선배는 그 사실을 몰랐다. 충분히 친하고 내가 많이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이 사실을 그냥 거리낌없이 말하기는 좀 어려웠다. 다행히도 이 꽃꽂이 강의실은 주차만 하면 바로 그 강의실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번잡한 매장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휴직을 하고도 선배와 함께 꽃을 꽂으러 다녔다. 주1회이고 1시간 남짓이라 내게는 정말 그나마 힐링할 수 있는 활동이었으며 병원과 운동 외에 외부인과 교류하는 유일한 활동이었다. 살아있는 알록달록한 꽃을 보고 만지다보면 신나고 활기찬 기분이 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우울한 기분이 누그러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예쁘니까. 잘 꽂든 못 꽂든 가져와서 집안에 놓아두면 생기가 돈다.
재미도 있고 좋았는데 재능은 확실히 없었습니다.
휴직을 하고서야 내 상태를 알게 된 선배는 당황하셨지만 언제나처럼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소중한 연차를 내고 자주 나를 보러 우리 집 근처까지 와서 차 한 잔 하고 가곤 했다. 휴직 초기의 내겐 그렇게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오는 거 자체가 모험이었다. 대인기피도 심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라도 나도 마음 단단히 먹고 나가서 맛있게 밥도 먹고 차도 마셨다.
내가 내 주변의 누군가가 마음이 아플 때, 이렇게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내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각자의 삶이 있고 내 역할만도 버겁기 때문이다. 정말 바닥까지 내려왔다 싶게 무기력할 때, 나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신기하게도 내 주위의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고 연락을 해왔고 품을 내어주었다.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신생아의 삶은 얼마 가지 않았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나는 또 회사에서 그랬듯이 뭔가를 하고 배우고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엔 사람도 조금씩 만나게 되었다. 물론 회사일과는 비교도 안 되게 즐거운 삶이었고 만나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사람이 무서워졌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내 곁에는 나를 지지해주고 염려해주고 배려해주는 좋은 사람들과 동물 한마리가 있었다. 결국 그들이 나눠주는 따스함과 정에 나는 상처받은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상태가 좋아졌고 일상을 서서히 회복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