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로 돌아간 지 7개월이 넘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입사 이래 가장 편안한 업무를 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지랄같은 사람이 문제로다.
언제나 사람, 사람, 사람이 문제였다. 지위가 낮을 땐 그냥 참았다. 시키는 일 잘 해내고 부당한 일은 참고 그랬다. 그때는 언제나 허드렛일은 내 몫이었다. 승진을 하고 후배가 생기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그런데 그렇게 되고나니 또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딱지만한 회사에서 뭔 부귀영화를 보려는지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살겠다고 바둥거린다.
그냥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 때로는 너무 좋은 동료들이 남에게 닥치는 불행은 없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니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모자람 없이 편하고 해맑게 사는 나는 그들의 먹잇감으로 딱이었다. 행복해보이거나 긍정적이거나 남들처럼 아등바등 하지않는 나는 그들이 보기에 그냥 재수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실제 나의 선배가 들려준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런 곳은 남이 보기엔 천국같아 보여도 지옥이다. 그만두지 않은 내가 선 이 자리가 지옥이 아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마디로, 지옥불에서 타죽지 않고 생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그들과는 다른 세계에 와 있어야 한다. 유체이탈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아니고 신경을 끊는 것이다. 첫째로, 그들을 내 일상에서 지워야 한다. 계속 부딪히는데 어떻게 지우느냐. 그것은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 모든 세상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은 철저히 나 자신이 되는 연습이다. 억지로 밝은 것만 보라는 뜻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반사하는 것이다. 들리는데 흘리는 것이다. 보는데 지나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기분과 텐션의 주도권을 남에게 주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내가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만 받아들일 것.
둘째, 나는 그 누구든, 어디든,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죄책감이 필요 없다. 살아있으므로 내가 가장 귀하고 소중하다. 그것은 누군가가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온전히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나의 행복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다.
셋째, 힘듦에서도 얻을 것이 있음을 항상 기억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므로 그 고통도 훗날 언제 어디서 나의 맷집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이것은 지나간 수십년의 생에서 얻은 경험의 결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엿같은 일도 조금은 의연하게 견딜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꼭 현재 그자리에서 꾹 참으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련을 만났을 때 돌파하는 과정에서 피할수 없었던 고통들이 결코 무쓸모는 아니란 것이다.
완벽하게 다 좋은 삶은 없다. 어려움은 늘 있고 그런 것들을 처리해나가는 지혜를 키워가는 것이 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주변에 얼마나 좋은 사람이 많은가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 같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지만 먹이를 찾는 이상한 자들도 좋은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러하니 이상한 사람을 분별하고 거리 둘 줄 아는 능력이 인간관계에서는 더 중요하다.
버티는 자가 이기는 것일까. 아니다. 탐험하고 찾아내는 자가 승자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이 버티는 삶에서 탐험하는 생으로 흘러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