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가 깨지기를 기다리며

나의 퇴사는 진행중

by 길 위의 앨리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대사에 따르면 평균수명 40년의 고래도 수족관에서는 채 4년을 채우지 못한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생각했다. 회사 밖으로 나가 살던 자가 회사 안의 조직세계에서 몇년이나 생존할 수 있을까? 10년이면.. 1년? 1n년이니까....1년 남짓?


내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알에 있는 새는 사실 새가 아니다. 외부의 침입이나 균 등의 해로운 것들로부터 보호해주는 단단한 보호막이었던 알의 껍질이 깨져야지만 비로소 새라는 종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또 있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 애벌레가 나비라는 아름다운 존재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고치를 짓고 한참을 웅크리고 그속에서 매달려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이 끝나면 그 허물을 반드시 벗어야지만 나비가 될수 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자기파괴적 과정이 탄생에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말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틀을 깬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와 무모함으로는 어렵다. 퇴사도 마찬가지다. 퇴사 이후의 삶을 퇴사 전에는 알지 못한다. 똑같은 일상과 똑같은 일들, 그 작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의미없는 버둥거림 속에서 벗어나 새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우리는 과감할 필요가 있다.


파괴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을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보내야 할지는 의문이다. 그 과정이 어떤 형태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달라진다. 노력과 성실함이 성공을 담보한다고 믿던 시대는 오래전 지났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기본으로 기회나 행운이 왔을때 그것을 잡아채는 능력이다.


나는 한번 새장 밖을 나온 새다. 1년의 시간동안 나는 직장 밖에서도 또다른 세계가 있음을 보고 경험했다. 물론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아니다. "어떻게든" 되기 위해서는 시도를 해야한다. 나는 목적이 있든 없든 수많은 시도를 했다. 내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포인트는 그것이었다. 이제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시작하고 그만두고 시작하기를 반복했지만 의미없는 뻘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내가 새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했던 궤적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쓴다. 글을 쓸때 나는 자유롭고 즐겁다. 그리고 공모전에 내 작업의 결과물들을 낸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언젠가 내 알이 깨지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나는 직장인이지만 퇴사 진행중이다. 알을 깨기 위한 시도는 벌써 시작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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