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8개월차, 내겐 엄청난 변화들

by 길 위의 앨리스


1. 식이습관

내가 휴직을 하고 찾아온 큰 변화 중 하나는 식이 였다. 처음엔 거의 먹질 못했다. 내가 먹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데, 배가 부르면 불안해서 살수가 없었다. 그래서 먹을 수 없었다. 거의 본능적인 식욕감퇴였다. 살기 위해서 한의원에서 식사대용으로 판매하는 효소식 가루를 물에 개서 조금 먹고, 배가 너무 고프면 또 몇모금 먹고를 반복했다. 조금 증상이 호전되고 나서는 운동도 제법 하고 있을 때라 이 김에 체중을 좀 감량해보자 하고 당분섭취를 줄이고 (당분은 자연식을 하면서도 충분히 섭취한다)지방,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며 쌀밥이나 밀가루를 끊었다. 내가 좋아하던 라떼도 이때는 몇달동안 마시지 않았다. 커피를 끊진 못했고 아메리카노만 하루에 두잔 정도 마셨다.

일단 몸이 가벼워졌다. 가벼워지자 기분도 나아진다. 배가 그득하게 부르지 않으니까 속도 편안해졌다.

밀가루는 맛있었지만 안 먹는 것을 습관화 하니 먹고싶단 욕구가 없어졌다. 쓸데없이 많이 먹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 가벼운 상태를 한동안 유지하다보면 폭식욕구도 없어진다. 짜장면, 라면도 다 끊었다. (나중에 유통기한이 지나서 라면류를 다 버렸다) 머리도 맑아진다. 입맛이 오히려 예민해지면서 달고 짜고 느끼한 맛 대신 담백한 음식을 찾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건강에도 플러스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꼬박 지키게 된 16:8 공복시간. 16시간을 공복을 하고 8시간동안 식사를 하는 습관이다. 공복을 지키는 일이 회사다닐 땐 조금 힘들지만, 집에 주로 있다보니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공복을 지켜줌으로서 몸에 축적되어있던 안좋은 지방들을 에너지로 연소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주아주 가끔은 나도 탕수육 같은 밀가루와 단맛이 잔뜩 든 음식을 먹기도 했는데 저 공복 규칙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배가 허하거나 입이 동해서 충동적으로 음식을 찾는 습관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굶으면 나중에 폭식을 하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오히려 쓸데없는 군것질이나 야식 욕구가 사라져서 몸의 붓기가 많이 사라지게 된 것 같다. 피부알러지 증상도 호전됐다.


2. 체중 8KG 감량

식이를 유지하다보니 처음엔 자연스럽게 붓기가 좀 빠져서 3킬로정도 감량이 되었지만, 나머지는 아주 서서히 빠졌다. 나는 주2~3회 필라테스를 했고 잠은 규칙적인 시간에 잤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아서인지는 몰라도 식탐이 사라지자 당연히 요요도 없었다. 체중이 빠지자 얼굴라인이 몰라보게 달라졌고 옷 사이즈는 66에서 44반까지 내려갔다. 허벅지가 갈라진다거나 배에 초콜릿 복근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근력운동을 하면서 선이 살아났다. 지방이 많이 빠졌고, 또 중요한 건 그 와중에 근육량은 늘어났다. 실제 감량효과는 10킬로 이상이었다. 필라테스 선생님도 도대체 어떻게 관리를 하면 그렇게 되냐며 물어보셨다. 그리고 나중에 회사를 가니 사람들이 몰라볼 정도였다.

외모적인 변화는 자신감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칙칙했던 옷들도 조금 밝은 옷들로 바꿔 입게 되었다. 의사선생님도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칭찬을 해줄 정도였으니. 드라마틱한 변화라고 조금 자랑해도 될것 같다.


3. 성격변화

좋게 말하면 밝아졌고, 나쁘게 말하면 똥꼬발랄해졌다. 이 나이에 발랄이 뭔 주책이냐 싶을수도 있다. 나는 부모님께 한번도 뭘 사달라고 졸라본 적이 없었다. 집안 분위기가 너무 엄하고 날카로워서 나는 발끝을 들고 걸어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많이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일까 아님 이렇게 된 내가 본인들의 잘못이라 생각해서인가 어릴때와 비교해서 부모님은 지나치게 내게 관대하셨다. 뭘 먹고싶다고 말하면 바로바로 사주시고, 심지어 본인은 만원짜리 구두로 10년을 버티던 아버지가 "백화점에 가고싶다"는 말에 벌떡 일어나서 나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 명품지갑을 사주셨다. 집에 처박혀서 쭈그리고 있는 딸래미가 그런 말 했다고 백화점따위에 갈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런 부모님의 영향도 상당했던 것 같다. 뭘 해도 받아주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을 처음 겪었던 것 같다. 용돈도 받았다. 그러자 나는 마치 유기견이 새가족 찾아서 사랑받은 개로 재탄생하듯이 피어났다.(오해 마시라. 우리집 막내도 유기견 아들이었다) 무엇을 해도 날 지지해주는 내편이 가족이란 것을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온전히 내가 하고싶으면 하고 하고싶지 않으면 안 하는 자유인의 생활은 행복한 삶이었다. 누군가 노예처럼 나를 부리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마도 직장생활에 길들여진 샐러리맨들은 그만두기 전까지 모를 것이다. 그냥 회사만 벗어나도 얼굴에서 윤기가 난다. 밝아지면 당연히 표정도 좋아질 테고 얼굴색도 좋아지지.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4. 혼자서도 잘해요

전편에 서술했지만 나는 8년동안 초보운전자였다. 운전공포증을 이겨내고, 서울에 한번 운전해서 다녀온 후 내가 가고싶은 곳에 운전을 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이 혼자 장시간 운전한다는 건 되게 큰 도전이다. 성수동이나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더현대 서울 같은 복잡한 백화점도 잘 갔다. 미술관도 가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운전해서, 그것도 나 혼자 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큰 변화. 드디어 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동안 내 집에서 두번이나 공황발작을 경험한 후로 집에 가지 못하고 본가에서 지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잘 타게 되었고 운전으로도 자신감이 붙어서 집에 갈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내집인데도 들어갈 때 빈집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겁나서 다른 사람을 꼭 대동하고 들어갔다. 당연히 정상인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을 행동일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공황발작이 그만큼 공포스럽다. 30층에 바람에 흔들리기까지 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증상이 많이 호전된 그때는 이제는 집에 돌아가 내 일상으로 돌아가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본가에서 다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기까지 1년이 걸렸다. 무려 1년. 공황장애와 불안증세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같은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 힘든 여정이었다. 1년만에 집에 돌아온 나는 집에서 살림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일상을 회복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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