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한 알 줄여볼까요?
공황장애와 우울장애 진료 1년의 소회
약을 한알 줄여볼까요?
의사선생님이 드디어 약을 줄이자고 하셨다. 정신과에서 약을 줄인다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 우리 주치의 선생님에 따르면 3개월 이상의 안정기 (환자의 일상에 큰 이슈가 없고, 공황발작이 찾아오지 않은 시간)를 거치면 약을 한알 혹은 반알정도씩 줄이는 것을 환자와 논의한다고 한다. 이건 의사마다 병증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약을 줄인다는 건 나의 병이 조금은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당시10알의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약의 종류는 주로 신경안정제. 그리고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이다. 어떤 약이든 장기 복용하는 것은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좋지는 않다. 병원에 다니면서 얼굴이 좋아보인단 말은 꾸준히 들었어도 약을 줄여보자는 말은 근 1년만에 처음이었다. 마음은 뛸 듯이 기뻤지만 솔직히 두려움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나는 고민했다. 내게 마지막으로 공황발작이 온 때가 언제지? 생각해보니 꽤 오래된것 같았다. 운전을 할 때 공황이 살짝 올려다 만 것은 카운트 안하고 계산해보니 약 4개월정도 된것 같다. 그리고 잠을 얼마나 자는지를 생각해보니 하루에 거의 한 12시간 정도는 잠을 자고 있었다. 잠이 너무 와서 아침 낮잠 점심 낮잠 오후 낮잠까지 자고 있었다. 정말 선생님 귀신같다.
하지만 무서웠다. 내게 3개월은 너무 짧은 기간 같았다. 약을 줄이고 싶은 마음은 나도 크지만 내게는 나의 안정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약은 다음부터 줄이면 안 되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그러라고 하셨다.
신경정신과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분들은 궁금할 것이다. 저 병은 완치가 가능한 병인가? 치료는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들이 말이다. 나도 궁금했다. 이 이전에 엄마의 약을 타기 위해 한번 정신과에 대신 간 것을 제외하면 나도 진료를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 분들을 위해 몇자 적어본다.
처음 병원에 가면 진료 전에 상태를 체크하는 서면 테스트를 한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신체적인 리듬을 체크하는 물리적인 테스트도 했다. 발목과 손목에 맥박체크기같은 것을 달고 몇분동안 검사기로 체크를 했다.
그런 후에 의사와 약 1시간 정도 자세한 증상과 현재 상태에 대해 면담한다. 그리고 나서 약을 처음 처방하는데 그 약이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기 때문에 복용 후 1~2일간 상태를 보아가며 혹시라도 부작용 등이 있는지를 유선이나 방문을 통해 체크한다. 그렇게 맞춰가는 기간이 나에게는 약 2달 전후로 소요됐다. 그 기간동안 나의 약은 계속 늘어났고 3개월차가 되자 약이 지금과 같이 10알로 늘어났다. 그만큼 나의 상태가 심각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1주일에 1번씩, 조금 상태가 좋아지자 2주일에 1번으로 면담의 텀이 길어졌다. 약을 줄이자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병원을 1년정도 다녔을 때였다.
그렇게 다니면서 차도를 보이면 의사는 환자와 상의 하에 약을 한알, 혹은 반알씩 줄인다. 줄이면서도 환자의 상태를 본다. 이 사람이 평소처럼 잠을 자는지, 컨디션은 잘 유지를 하는지를 말이다. 아, 우리 의사선생님이 말하는 약을 줄일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있는데 환자가 평소와 다르게 같은 약을 먹고도 잠을 너무 많이 잔다던가, 가라앉는다던가 하는 변화가 나타나면 그것이 신호라고도 한다. 그만큼 회복이 되었기 때문에 같은 약에도 그렇게 반응하는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반 알, 한 알, 쭉쭉 쉽게 줄일 것 같지만 그 기간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는 이 글을 쓰는 현재도 한알 반을 줄여서 8알 반을 먹는다. 그리고 정신과에 다닌지 2년이 넘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약을 마지막 반알을 줄이는데 6개월이 걸린 환자를 봤다고 했다. 그렇게 다 줄여서 투약이 필요없을 상태가 되면 완치가 된 것이다.
아마도 긴 투약기간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망설이는 분들이 분명 계실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중증이었던 거고, 아마 경증일 때 찾는 분들께는 그렇게 많은 투약이나 투약기간을 권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문제는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도 병원을 찾지 않다가 정말 심각해져서 찾으면 그땐 나처럼 된다는 것이다.
또하나 일반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신질환"에 대한 선입견일 것이다. 너무 안타깝게도 정신질환자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것이 폭력, 범죄다. TV나 매체에 나오는 분들은 대부분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누군가를 해친다던가 하는 일을 벌인 사건사고의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우울장애나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럴만한 기력이 없다. 누굴 해치거나 피해를 주기에 너무 무기력하고 본인 몸 하나 건사하기가 버거워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우울장애가 있다고 사람을 죽이고 그런 건 아니다. 우울장애가 심한 사람은 그만 살고 싶은데 죽을 기운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그런 우울장애가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데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다. 기분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니까. 기분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 이해할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뜻은 결코 없다. 하지만 감기환자가 감기로 짜증이 난 상태에서 사람 죽였다고 감기환자들이 모두 그렇고 그런 놈이 아니듯이 정신적인 질환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고 그런 놈은 아니라는 것은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다.사실 내 증상도 그렇고 우울증이라는 말보다 무기력증이라는 말이 증상과 더 어울린다. 무기력한 사람이 타인을 해치는데 적극적일 확률이 얼마나 높겠는가.
병원에 다니면서 한번도 정말 단 한번도 그런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사람과 정상적인 소통이 어렵다거나 그런 분들을 보질 못했다. 내가 못 봤다고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겠지만. 분명 회사나 길에서 분노조절장애나 번아웃이 있어보이는 사람은 많이 봤는데 의사선생님 말론 그런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병원을 잘 찾지 않는다고 한다. 주된 이유는 자기는 정상이라고 생각해서다. 사회에서 치료가 시급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인데 병원을 찾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정신에 병이 깊이 깃든 사람이 많단 얘기겠지?
그런 선입견 때문에 정신과 문턱을 밟는 것조차 꺼리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많다. 지인 중에 내가 정신과에 다니는 것을 알고 자신도 가야 할까? 라며 상담해오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들어보면 나보다 더 심각한 거 같아 조심스레 병원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런데 한 명도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투약이나 선입견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상담을 해온 지인들은 병원보다 심리상담이나 운동 등 자연요법을 선호하는데 그건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기위해 정신과를 찾는 사람도 엄청많다. 코로나시국이 시작되면서 그 수가 더 많이 늘었다고 한다. 내가 다니는 병원만 해도 몇 달 후의 예약을 미리 받는다. 그만큼 정기적으로 찾는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비용의 측면에서는 심리상담보다는 병원이 좀더 저렴하다.(내가 다니는 병원의 경우 약 45분 내외의 상담에 2만원대의 진료비를 받는다) 투약에 대해서는 의사와 상의가 가능하다는 점도 알려주고 싶다.
내가 병원에 가고 약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삶의 질이 높아져서다. 불면의 연속과 날카로운 신경은 정말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장애요인이다. 약물을 투여해서 그런 예민함을 낮춰주고 편안하게 만들어서 잠을 푹 자게 해주니 당연히 삶의 질이 높아진다. 그리고 전문가가 주기적으로 내 상태를 상세히 체크해주는데 이만큼 안전한 치료가 어디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많이 궁금해하는 것. 정신적인 질환은 완치가 가능한가. 가능하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라서 확언까진 어렵지만 최소한 신경증적인 질환들은 가능하다고 들었다. 우울장애, 공황장애같은 증상이 그러한 병증이다. 그렇게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며 충분한 안정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반복적 상황에 노출되지 않으면 충분히 나을 수 있다. 나는 아직 다 낫진 않았지만 충분히 좋아지고 있고 더 좋아질 것이다.
정신적인 질환이 있다고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생각까진 내가 어쩔수가 없다. 아픈 내가 아니라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지만 적어도 이건 말할 수 있다.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사람들이다. 세상사 별별 사람들 다 만나는데 그나마 내 탓이오 하면서 내 안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병원까지 다니는 종족들은 그래도 남탓만 하며 나는 정상이라고 우기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