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불재의 시작
‘퇴사하고 아이랑 둘이서라도 유럽 미술관 여행 갈 거야!‘ 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으나 사실 나는 n개월의 코로나로 인한 격리 생활이 그리 힘들지 않았던 극강의 I력을 자랑하는 우주최강 집순이이다.
아니, (한국인 국룰 모든 대화를 시작하는 마법의 단어).. 걸(어서) 세(계속으로)와 세(계)테(마)기(행) 같은 훌륭한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뭐 하러 21세기에 왜 멀리까지 가서, 사서 몸 고생 마음고생을 하나!!!!! 항상 여행은 테레비로!!! 고화질로!!!!!! 라고 했던 사람이 나다.
그런 나에게 여행이란 언제나 같은 집돌이이긴 하지만 ‘비행기 덕후, 사람시러 but 자연조아맨’인 남편에게 강제 이끌림 당해 울면서 실려가는.. 출발 하루 전 비행기랑 호텔만 해놓고 떠나는 해외여행, 그것도 왕대문자 P 모드 – 마음 내키는 대로, 삘 꽂히는 대로, 계획성 1도 없는 – 여행을 즐겨했던 나지만..
마침 그 시기에 부모님은 비지니스 출장이 예정되어 있어 유럽 가신다고 하고, 독일에 있는 동생도 그 시기에는 강의가 없어서 프리하단다. 우와, 같이 여행할 수 있겠는데?
오오… 이게 무슨 일……… 좋긴 좋은데 일이 엄청 커진 거다…… 버킷 리스트 실행, 퇴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눈사태가 되어.. 이런 걸 두고 스불재 - 스스로 불러온 재앙 - 이라고 한다지.
그렇게 아이와 둘이서라도 떠나려고 했던 미술관 여행은 갑자기 스불재.. 아니, 유럽 가족 여행이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모까지 함께하는 여행이 되었으니 아이를 나 혼자 케어하는 것보다 좋을 터였다. 훨씬 더 안전하고, 아내와 아들을 유럽에 둘만 달랑 보내야했던 남편도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그래, 여러모로, 오히려 좋아.
뭐 하고 싶냐, 어디 가고 싶은 곳 있냐 물어보았더니 상관없다고, 다 맞춰서 따라다닐 테니까 철저히 퇴사자 ㅎ 하고 싶은 대로 하란다. “알아서 잘.."
나야말로 유럽 알못에 파리며 런던까지 몽땅 처음인 사람이건만, 파워 인싸 MBTI EEEP 인 아부지와 슈퍼 기동력을 가진 엄마, 아예 유럽에서 1n년째 살고 있고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 동생을 두고 왜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을 하는지...
흠… 그렇단 말이쥬??? 오케이, 접수.
그래요, 제가 십 수년간 별러왔던 유럽 박물관•뮤지엄 뺑뺑이가 뭔지 제대로 보여드리릿!!!!!
그리하여 성사된 16박 17일의 유럽 대장정! (심지어 20일 정도로 더 길어질 뻔한 것을 줄이고 쳐낸 것이 17일..) 그런데 이제 거기에 엄빠 (시니어), 아이 (여섯 살), 동생까지 네 명을 곁들인.. 거기에 동생 남자친구 및 남편까지 급 합류해서 6명 구간 다수!
1. 기간도 길고: 시상에나 16박이라니....!!! 파워 집순이니까요; 이렇게 긴 기간 동안 해외 여행 해본 적 한 번도 없음;
2. 사람도 많고: feat. 노•약자..
3. 이동도 많고: 이왕 갔으니 뽕 뽑아야 된다는 생각;
4. 각자 취향 및 식성 다양.........
자동으로 주경야독 모드가 되었다.
낮에는 아이 데려다 놓고 출근해서 퇴사 준비 및 인수인계를 빡세게 하고 밤에는 몇 날 며칠을 내리 세가며 나라별 구간별 여행 동선 짜고 교통편, 호텔, 뮤지엄 예약하고…… 내 맘대로 하랬으니 여행지마다 1일 1~2 뮤지엄 ㅋㅋㅋㅋㅋㅋㅋ 매일 다른 여행 컨셉 및 테마가 있도록..
P형 인간이지만 갑자기 다섯 명 (+a)의 여행 일정을 도맡게 된 K장녀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계획을 잘 짜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