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5세에서 다시 1세대로
사는 곳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혼자 사는 사람도 이사 한 번 하려면 고생인데, 나라를 바꾸어 사는 일이라니.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런데 나는 이미 세 번의 이민을 경험했다.
처음은 만 15살 때였다.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했고, 12년 뒤에는 혼자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작년 여름, 남편과 아이와 함께 다시 캐나다로 왔다. 세 번째 이민이자 두 번째 캐나다에서의 정착이다.
왜 여러 다른 나라들 중 다시 캐나다였냐고? 글쎄, 언젠가 나 혼자 산다의 키가 고향인 대구를 두고 자신의 뿌리, 라고 한 것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겠다. 나에게는 캐나다가 ‘뿌리’나 다름없으니까. 내 정서를 빚어낸 곳이면서 지금의 나를 나일 수 있게 만들어준 곳이라서.
무엇보다 부모님이 계셨고, 미국이나 호주는 잘 알지 못해 망설여졌다. 심적인 부분뿐 아니라 법적으로나 행정과 관련해서도 가장 편한 곳이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다시 돌아왔다.
캐나다에서 오래 살던 친구들은 “잘 돌아왔다!”며 반가워했다. 지금은 한국에 살지만 해외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잘 됐다, 부럽다”라고 응원해 주었다. 하지만 그 뒤엔 꼭 같은 질문이 따라왔다.
“왜 다시 캐나다로 간 거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만 복잡하다. 세 번째 이민, 그리고 두 번째 캐나다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역이민’이나 ‘재이민’ ‘역역이민’ 대신, ‘두 번째 (캐나다) 이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소 뻔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의 교육이었다. 나는 아이가 자유롭게 뛰어놀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키우고, 다양한 배경과 문화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라길 바랐다.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언어가 있다. 요즘 AI 번역 기술이 뛰어나고, 외국어가 꼭 필수는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몸으로 부딪혀 자연스럽게 익히는 언어는 다르다. 무엇보다, 예전의 내가 겪었듯, 언어 장벽으로 인해 아이가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기를 바랐다. 사춘기와 정체성 혼란이 겹친 시기에 언어 문제까지 더해지는 건 피하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늘 치열했다. 불안도가 높은 성향과 완벽주의적인 기질이 맞물려 늘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10년을 살다 보니 결국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특히,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달아 겹치면서 몇 개월 만에 몸무게가 15kg 이상 급격히 찌고, 건강 지표는 악화되었으며, 기존에 앓고 있던 질환들도 더 심각해졌다.
휴직도 해보고, 퇴사도 했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주었다. 마치 가만히 있으면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물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도 맞지만, 적어도 개인의 삶과 일을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숨이라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남편 역시 오랜 시간 한 회사에서 다양한 직무를 맡아 성실하게 달려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일에만 몰두해 왔고, 능력을 인정받고, 몇 년마다 승진을 하고, 고액 연봉을 받고..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쉼이 절실해 보였다. 그 역시 건강을 돌보고 한 템포 쉬며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계획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더욱이 예전 대기업의 분위기와는 달라진 점도 크게 한몫했다. 정년이라는 개념은 희미해졌고,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이 남편 기수와 큰 차이가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걸 보면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닌 듯 보였다.
한국에서 중년이 되어 커리어를 전환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캐나다라면 조금 더 다양한 기회가 열려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기에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여겨졌다.
다시 돌아와 보니 이곳이나 저곳이나 사는 건 결국 비슷하다. 어디에 있든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불편한 점도 있기 마련. 부모님이 계셔서 좋은 동시에 본가가 너무 가까워져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다니거나,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는 일도 많아졌다. 일주일에 두어 번씩 계획에 없던 가족 모임도 생긴다. 좋기도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피로감도 결코 없지 않다.
어느덧 8개월쯤 살았다. 다시 외국의 시스템과 나 때와는 또 다른 다름과 낯섦에도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 크게는 캐나다의 정치적 변화부터 아이 친구 생일 파티 같은 사소한 일들까지, 문화적 차이 역시 몸소 체감한다. 그러다 보면 ‘과연 잘 한 선택이었을까’ 같은 의구심이 스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이민을 결정한 핵심 질문은 ‘어디에서 더 나답고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것 하나였다. 이 선택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차차 알게 될 테다. 원래 인생이란 “옳은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무언가를 선택한 후 옳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니, 적어도 지금은 조금 더 여유롭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다.